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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거짓말"이 있다고 해요. 듣기 좋도록 하는 거짓말이라고 해요. 이를테면 "너 참 예쁘네" 하는 말을 "착한 거짓말"로 한다지요. 그런데, "너 참 예쁘네" 같은 말을 "착한 거짓말"로 한다면 썩 들을 만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안 예쁘다고 여겨서 예쁘다고 거짓말을 하는 셈이니까요.

거짓말하고 참말을 가르는 잣대라면 한 가지가 있으리라 느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인가 아닌가에 따라 다르리라 느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면 참말이 될 테고, 마음에 없는 말이라면 거짓말이 되겠지요.

겉그림
 겉그림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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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는 엄마한테 이야기하는 걸 아주아주 좋아한다. 엄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동생 기저귀를 갈아 주는 동안, 그러면 어떤 때는 엄마가 토마 이야기를 잘 들어 보려고 하던 일을 멈출 때도 있다. 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말하는 거다. "너, 그 얘기 굉장하다!" (7쪽)

크리스 도네르 님이 글을 쓰고, 필립 뒤마 님이 그림을 그린 <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비룡소, 2003)를 읽습니다.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는 '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즐기지 않습니다. 그저 '이야기'를 즐길 뿐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차츰 이야깃거리가 줄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처음 학교를 다닐 적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서 이 새로운 이야기를 집에서 어머니한테 들려주며 기뻤는데,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새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늘 똑같은 일만 벌어지고, 늘 똑같은 것만 가르친다고 여겨서,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즐거움'이 사라져요. 이제 이 아이는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풀리기'를 떠올립니다. 아주 조그마한 일을 크게 부풀립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났다고 하기로 합니다.

"아, 그렇겠구나." 엄마는 알아들은 척한다. 하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엄마는 토마가 황당한 이야기를 꾸며대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19쪽)

아빠는 엄마하고는 다르다. 토마는 아빠한테는 엄마한테처럼 이야기를 해 드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빠는 점수에만, 그것도 좋은 점수에만 관심이 있다. 아빠는 여자 애들이 화장실에 갇혔었다는 이야기 같은 건 전혀 재미있어 하지 않을 것이다. 아빠는 "굉장하네!" 같은 말은 하는 적이 없다. (22쪽)

아이 어머니는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아이가 그동안 '이야기 즐기기'만 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부풀리기'를 곁들이더니, 이제는 온통 '부풀리기'만 있거든요. 게다가 이 부풀리기는 차츰 '거짓말'로 가지를 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아이가 부풀리는 이야기는 참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지 않은 일을 말하고, 스스로 보지 않은 일을 말하며, 스스로 겪지 않은 일을 말하니까요.

아이 아버지는 이녁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여깁니다. 부풀리든 거짓이든 이렇게 '꾸미는' 이야기가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아이 아버지는 아이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에만 좋아했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이 아이 아버지는 '아이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일'도 좋아한다고 해요.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거짓말을 자꾸 키우면서 걱정스럽다 하고, 아이 아버지는 '시인이 될 낌새'라면서 좋다고 합니다.

"저거 봐, 토마! 네가 거짓말을 하니까 엄마 아빠가 어떻게 되는지 봤지? 결국 거짓말 때문에 싸우게 되잖아." "나 때문이 아니에요." 토마가 말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돼.""거짓말 안 했어요." "거짓말쟁이!" "저 봐, 또 거짓말하잖아!" "시인이라니까!" "거짓말쟁이야!" "시인!" (51쪽)

아이가 그림을 그립니다. 이 그림에 흐르는 이야기는 아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꿈'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짓는 그림이나 글을 마주하면서 이를 '거짓말'이라 할 수 없어요. 언제나 '이야기'이면서 '꿈'이라고 말하지요.
 아이가 그림을 그립니다. 이 그림에 흐르는 이야기는 아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꿈'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짓는 그림이나 글을 마주하면서 이를 '거짓말'이라 할 수 없어요. 언제나 '이야기'이면서 '꿈'이라고 말하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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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인은 삶을 사랑으로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에요. 시인은 삶을 꿈으로 짓는 사람이고, 시인은 삶을 기쁨으로 그리면서 웃음꽃하고 노래잔치를 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에 나오는 아이는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이 아이한테는 이야기가 없으면 '사는 보람'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두 어버이는 아이를 놓고 한참 다투고야 마는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끝에 훌륭한 실마리를 하나 찾아냅니다. 무엇인가 하면, 아이더러 '글을 쓰도록' 해요. 어머니는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거짓스러워서 못마땅하니, 이를 글로 쓰되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쪽으로 가자고 마음을 맞춥니다.

아이는 먼저 글로 제 이야기를 마음껏 지을 수 있겠지요. 학교 운동장에 우주선이 내려앉았다고 하든, 학교 선생님 머리에 새똥이 비오듯이 떨어졌다고 하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땅이 쩍 갈라져서 땅밑 깊은 곳까지 빠졌다가 '지구 내부 세계'를 구경하고 돌아왔다고 하든, 아이는 마음껏 이야기를 지어서 쓸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이야기에서는 무엇이 참이거나 거짓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이야기라고 하면 헷갈릴 만하니, "사는 이야기"하고 "생각 이야기" 이렇게 나누어야지 싶어요. "꿈꾸는 이야기"하고 "재미난 이야기"로 나누어 볼 수도 있어요. 마음에 밥이 되는 이야기요, 생각에 날개를 다는 이야기입니다. 삶에 고운 꽃을 피우는 이야기요, 즐거운 사랑으로 자라나는 이야기입니다. 온누리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새록새록 흐를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크리스 도네르 글 / 필립 뒤마 그림 / 최윤정 옮김 / 비룡소 펴냄 / 2003.10.2. / 65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

크리스 도네르 지음, 필립 뒤마 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2003)


태그:#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 #크리스 도네르, #필립 뒤마, #어린이책, #어린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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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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