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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인권 포럼 HRC(The Human Rights Campaign)에서 커밍아웃한 할리우드 배우 앨런 페이지
 2014년 2월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인권 포럼 HRC(The Human Rights Campaign)에서 커밍아웃한 할리우드 배우 앨런 페이지
ⓒ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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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6일 낮 12시 17분]

저는 올해 나이 서른한 살의 이성애자 남성입니다. 주 5일 근무를 하고, 집안일이 취미이며, 독서를 즐기고, 가끔 친구를 만나 밥을 사는 그런 소박한 삶을 살고 있지요. 남다른 점이라면 진보적 가치를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 정도일 겁니다. '좋은 나이 듦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나이가 되니, 자연스레 그리되더군요.

처음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은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 사회에서 진보를 외치는 이들이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수자에 대해 주창하는 바를 새겨듣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 것입니다.

나름의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혐오엔 지역 혐오·여성 혐오 등의 다른 혐오와는 다른 점들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그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합니다.

공론화조차 되지 않는 혐오

먼저, 사안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에 비해 국내에선 성소수자 혐오에 관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스웨덴·노르웨이·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에 이어 작년엔 미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습니다. 바로 지난달엔 한 중국인 남성이 자신의 남성 연인과의 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후난성 창사 지방 정부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이 소송을 받아들여 그는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고요.

근래엔 애플의 CEO팀 쿡과 할리우드 스타 엘렌 페이지 등 수많은 유명인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 매번 엄청난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스타들의 커밍아웃이야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근 몇 년간은 커밍아웃하는 이들의 수나 그들의 영향력이 정말 엄청났죠.

UN의 반기문 사무총장은 공식석상에서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의 앞글자를 딴 용어인 'LGBT' 인권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심지어 재취임 연설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범세계적이고 거대하며 급진적인 이 추세에 대해 대한민국은 아예 이야기조차도 없다는 겁니다. 마치 누가 입이라도 막고 있는 것처럼, 절대 꺼내서는 안 되는 주제인 것처럼 우리나라는 이 사안에 대해 너무나 조용합니다.

국내 동성커플 최초로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영화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지난 2015년 7월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가족관계등록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 사건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김조광수 감독은 재판에 앞서 "오늘은 저희 부부에게도, 대한민국 성소수자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날이 될 것 같다"며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대한민국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이 법원에 의해서 밝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김조광수·김승환 커플, 국내 첫 동성혼 재판 국내 동성커플 최초로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영화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지난 2015년 7월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가족관계등록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 사건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김조광수 감독은 재판에 앞서 "오늘은 저희 부부에게도, 대한민국 성소수자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날이 될 것 같다"며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대한민국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이 법원에 의해서 밝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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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볼까요. 앞서 여러 나라의 동성결혼 합법화 추세에 관해 이야기했죠. 동성결혼 합법화는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이들을 제도적 차원에서 끌어안고 보호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선진국들이 이 흐름에 함께하고 있고요.

대한민국 역시 2013년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자신들의 혼인 신고서를 수리하지 않은 서대문구청을 상대로 불복 소송을 제기해 둔 상태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느 공중파 언론도 이들의 소송이 가지는 상징이나 의미를 깊이 있게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영역에서조차 불거지는 성소수자 혐오

성소수자 혐오가 다른 종류의 혐오들과 다른 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가장 정치적으로 공정해야 할 장소에서조차 거리낌 없이 이루어지는 것 역시 성소수자 혐오의 특징입니다. 비교해볼까요. 현재 한국 사회엔 엄연히 지역 혐오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공식석상에서 스스럼없이 이야기하지는 않죠. 만약 지역차별적인 발언을 어느 정치인이, 혹은 유명 연예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내뱉었다면 그는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성소수자 혐오는 다릅니다. 공적인 영역에서조차 혐오발언이 터져도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매우 미미합니다. 가장 최근의 일은 새누리당 서초갑 예비후보인 이혜훈 전 의원의 발언일 겁니다. 그는 바로 지난달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신년하례회에서, 동성애와 종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의 입법을 '하나님의 나라가 무너지는 위기'라 묘사했습니다. 또한 남성 동성애자 간 성접촉이 에이즈의 '주요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한 언론사가 통째로 나서서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한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CTS기독교 TV의 '동성애 STOP 대국민 캠페인'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왜곡된 이해가 드러난 대담 프로그램을 연속 기획으로 방송했죠. 작년 여름의 일입니다.

혐오의 원인, '무지'

노동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 또한 함께 이야기되기를 희망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또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일터를 희망합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 또한 함께 이야기되기를 희망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또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일터를 희망합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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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공론화는 되지 않으면서, 공적인 영역에서마저 혐오가 자행되는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권의 현실은 척박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저는 '성소수자 혐오는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어떻게 다른가'를 짚은 이 글을 시작으로 총 12회에 걸쳐 연재를 시작합니다.

모든 혐오가 그러하듯 그 원인은 무지입니다. 그 무지에서 비롯된 갖은 '혐오의 근거들', 이를테면 '에이즈를 퍼뜨리기 때문에', '기독교 정신에 맞지 않아서', '고칠 수 있는 정신병이기 때문에' 따위의 주장들을 하나씩 하나씩 반박하며, 무지의 극복을 통해 혐오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연재의 목표입니다.

다만,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늘은 이 점까지만 말해두고 싶군요. 가장 흔히 언급되는 동성애자 혐오의 근거, '에이즈'에 대해서 말입니다. 정말 남성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로 신음한다면, 남성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것이 옳을까요, 엄연히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인 그들의 건강권을 위해 지역사회와 국가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옳을까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면 비유를 해 보죠. 미국과 같은 다인종 국가에서, 특정 인종의 사람들이 특정 질병으로 신음한다면 어떨까요. 그 국가는 그 인종의 사람들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정책을 펴야 할까요, 그들의 건강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것이 옳을까요? 다시 만날 다음 글까지 함께 생각해봅시다. 저도 제 대답을 준비해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태그:#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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