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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0주년을 기념해 아이들을 포함해서 가족들과 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왔다. 하필 그 시기에 폭설로 인한 대규모 결항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경험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안전과 관련한 문제점들을 볼 수 있어서 이를 적고자 한다.

손님 몰리자 비상 계단에도 침대 놓던 호텔

최강 한파로 제주공항에서 항공기 운항이 잠정 중단된 지난 1월 24일 오전 제설차량이 활주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최강 한파로 제주공항에서 항공기 운항이 잠정 중단된 지난 1월 24일 오전 제설차량이 활주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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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4일 오전, 여행을 마치고 제주도를 떠나기로 한 날이었다. 원래는 1월 23일 산 쪽에 있는 숙소에서 숙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눈으로 인해 아침에 공항에 늦을지도 몰라서 인터넷으로 제주 시내의 한 관광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다행히 공항에 비교적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화재 대피용 계단에 침대가 놓여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원래 소방법에는 화재 대피용 계단에는 이 같은 물건을 쌓아두지 말도록 되어있다. 게다가 침대는 불이 잘 붙는 가연성 물질이다. 그런데 이곳은 단체 손님을 더 받기 위해 가연성 물질인 침대를 비상계단에 쌓아두고 있었다. 화재 걱정을 하면서도 일단 숙소를 잡았으니, 일단은 불안하더라도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인 24일 아침, 항공편 결항이 확실해졌다. 해당 숙소가 화재 시 대피로가 확보되지 않은 위험한 곳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숙소를 구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하루 더 이곳에 머물기로 하였다.

당일 초저녁에 정전되면서 전기가 나갔다. 그래서 몇 시간 동안 암흑 속에서 보내야 했다. 호텔 사장이 한국전력에 여러 번 연락한 끝에 몇 시간 만에 전기 기술자가 와서 정전 문제를 해결했다. 정전의 원인은 '과다한 전기 사용'이라고 했다. 이 호텔이 충분한 전력 예비 용량을 갖추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평소보다 날씨도 상당히 추워졌고, 많은 사람이 관광호텔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발생한 정전으로 보였다.

마침내 귀가했지만, 심야 비행에 불안했다

1월 25일, 비행기가 오후 8시까지 결항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공항에 방문해서 항공사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내일 공항에 방문해서 임시편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좀 더 안전할 것 같은 숙소를 구해서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오후에 항공사에서 문자가 와서 연락을 취했다. 그랬더니 '25일 하루만 임시편 비행기가 있을 예정이니 공항에 나가서 줄을 서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 안내를 받은 후 짐을 가지고 공항에 갔다.

공항에는 줄이 매우 길게 늘어서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귀가하려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5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린 결과 겨우 비행기 표를 구했다. 예정된 비행기 출발 시각은 오후 10시 50분이라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오전 1~2시경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비행기의 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결국, 오후 10시 50분 출발이라던 비행기는 연착 끝에 새벽이 되어 오전 1시 45분에 출발할 수 있었다. 공항이 마비되었다가 제주 공항 활주로가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너무 많은 비행기가 편성되다 보니 제주 공항은 대규모의 지연 사태를 겪게 되었다.

사상 초유의 제주공항 항공기 중단 사태가 3일째 이어진 지난 1월 25일 새벽 고단 하루를 마친 체류객들이 제주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잠을 자고 있다.
▲ '최강 한파' 가족의 고단한 하루 사상 초유의 제주공항 항공기 중단 사태가 3일째 이어진 지난 1월 25일 새벽 고단 하루를 마친 체류객들이 제주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잠을 자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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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사를 읽어보니 저가 항공사는 이번 결항사태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집으로 오는 비행기는 대형 항공사에 예약하였기 때문에 임시편 비행기를 타고 귀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대규모 결항에 준비가 그리 잘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우선은 모든 임시 비행편을 단시간에 몰아서 투입하였고, 그 결과 공항이 처리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고 말았다. 많은 비행기로 인해서 극심한 지연 출발을 일으켰다.

또 무리한 심야 비행은 승무원들의 피로감을 유발해서 안전에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무리한 야간 비행을 강행한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됐다. 개인적으로도 이번의 심야 비행은 다시는 겪고 싶은 않은 경험이었다.

여전히 '안전은 뒷전'인 한국

최강 한파로 제주공항에서 항공기 운항이 잠정 중단된 지난 1월 24일 오전 강한 눈발에 가려 항공기들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최강 한파로 제주공항에서 항공기 운항이 잠정 중단된 지난 1월 24일 오전 강한 눈발에 가려 항공기들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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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안전은 뒷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특히 돈과 노력이 드는 경우라면 말이다.

관광 호텔의 비상 계단의 놓인 침대 문제, 정전 사태도 그러했다. 또 저가항공사의 무대책, 대형 항공사의 무리한 임시편 비행 운항 등 안전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듯했다.

정말로 아슬아슬한 사회이다. 안전과 관련한 문제는 평소 안전 규정을 잘 지켜야 하고, 또 비용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지난 2014년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안전은 여전히 뒷순위에 있는 것 같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처지가 너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조성식 시민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태그:#제주폭설, #항공 안전, #제주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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