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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sseo
 colosseo
ⓒ 박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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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으라면 로마 동쪽 저지에 있는 최대의 원형극장이자 투기장인 콜로세움(Colosseum)을 말하곤 한다. 실제로 콜로세움이 세워지기 전 이 공간은 늪지대로 네로황제가 뱃놀이를 하려고 아름다운 정원과 호수를 만들어 사치하던 공간이었다. 로마가 불타 없어지고 네로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그 공간 역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후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농민이라는 신분과 군조직의 하급에서 입신양명한 출세자였기에 시민으로부터의 인정을 받기 위해 콜로세움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AD 80년 완성시킨 이 원형 경기장은 에뚜르리아 사람들의 장례 문화였던 검투경기를 가져와 1층에 황제부터 원로원들, 2층 귀족과 무사, 3층에 로마시민권자, 4층에 여자, 노예, 빈민층까지 당시 로마에 있는 모든 민중에게 흥과 향락이라는 이익이 돌아가는 정책을 펴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사실상 그것은 민중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정치적으로 권력의 정당성과 강화가 일차적 목적이었지만 정치가들은 철저히 자신을 포장하고 홍보해 대중에게 어필했다. 사실상 권력이 나오는 주체가 개인에서 민중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였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

로마 수도교(Acueducto Romano)
 로마 수도교(Acueducto Rom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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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1세기 로마시민이 50만 명을 넘어갈 때 정부에서는 로마거주자를 위해 공공 목용탕을 만들고 누구나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호수의 물을 끌어다 외각에서 시내로 끌고 들어오는 수로를 만들게 된다. 평지는 물이 고이고 각도를 조금이라도 틀면 수압이 세지면서 역류하거나 물의 힘으로 터져버리기 때문에 1000m 가면 1도씩 떨어지도록 처음 세워진 교량형태의 다리이다. 이곳에 약을 타면 모든 시민이 죽기 쉽고 국가관리가 안 되면 안 되기에 지금은 유적으로 남겨진 수도교이다.

로마에는 이렇게 끌고 오는 수로가 총 11개. 길이는 최단 23km부터 최장 98km까지 외각에서 로마시내로 끌고 들어와 물을 시민에게 제공하는데, 현재는 대표적인 트레비 분수부터 이름 모를 거리의 분수까지 모두 합치면 2000개가 넘는다. 지금이야 물을 마시는 것이 뭐가 문제겠냐만은 2천년 전 물이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생존의 수단이였다. 그 물을 국가가 모든 시민이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수도를 끌어와 공공의 물로 만들어 놓았다는것은 현재로서도 놀랄 만한 일이다.

로마 시내 작은 분수
 로마 시내 작은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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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로마는 물이 부족하고 강물이 마르면 제일 먼저 부자들의 집으로 납관을 넣어 들어가는 수도를 끊고, 그 다음으로 공공목욕탕 물을 끊었고, 제일 마지막으로는 무료로 마실 수 있었던 분수를 끊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를 시민들에게 보장을 해주었다. 정책의 우선순위의 틀 안에서 고려되어 시민의 이익을 위해 투자되는 정부의 비용은 2천년이 지나도 가치있는 투자였다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민심을 등에 업고 정치를 하다

로마 길 곳곳의 바닥에 세겨진 [S.P.Q.F]
 로마 길 곳곳의 바닥에 세겨진 [S.P.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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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거리를 걷다보면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누구나 밟고 지나갈 수 있는 바닥에 적혀있는 S. P. Q. F  문구이다. 지중해를 로마의 내해(內海)로 만들면서 팍스로마나(로마가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천년이나 이루었던 로마의 대표적인 표기이다.

Senatus Populusque Romanus 약자로 영어로는 THE SENATE AND THE PEOPLE OF ROME: 로마원로원과 시민여러분, 즉 로마 시민의 대표격인 직접민주정치(민회)를 의미한다. 사회 지도층인 로마 원로원과 평민들의 대표 기관인 민회의 끊임없는 견제와 협의로 균형을 이뤄 로마 제국은 지중해를 지배하고도 500년 이상을 번성하였다.

기원전 1세기 시저라는 남자가 재정까지 이끌며 그후 시스템이 3번이나 바뀌고 쿠테타가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도 로마가 476년까지 무려 천년을 갔다는 것은 같이 모여 토론하고 경계하며 조화롭게 나라를 이끈 S. P. Q. F 시스템이 탄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원로원의 권력유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로마는 그렇게 멸망한다.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가 보류돼 압박감을 느끼면 여야 및 국민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당 법안에 찬성하는 의원들만 모아 표결을 강행해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명 '날치기'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은  S. P. Q. F 의 민주주의 정신과 민심을 등에 업지 않은 채, 소통을 거부한 정치가 그 나라에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태그:#로마, #토론문화, #정치, #인문학, #공공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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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대 일반대학원 박사 과정 (사회복지) -숙명여자대학교 석사 졸업 -前숙명여자대학교 역량개발센터 진단평가실 (前계절학기강의 비인지영역 실습 프로그램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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