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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농정당국에서 바라보는 농정의 핵심 과제는 '기업화' 또는 '산업화'다. 농업선진화, 6차산업 또는 ICT 융복합농업, 스마트농업 등 현란한 농정구호에서 정부의 일관된 방침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자유무역시대에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규모화를 통한 생산비 절감으로 가격 경쟁의 열위를 극복해야한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같은 국제적인 차원까지 고려한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농민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우리 농민의 평균 농지보유 면적은 1.5ha에 불과하다. 그나마 1ha 미만인 농가는 전체 농가의 65%가 넘는다. 농업소득(농축산물 판매금액)이 1000만 원도 안 되는 농가 역시 65%, 72만 가구에 달한다. '돈 버는 농업'의 성공지표로 연간 1억 원 이상의 농업소득을 올리는 이른바 억대농부는 2.7%, 3만 가구에 불과하다. 3ha 이상의 농사를 짓는 농가조차 8.7%로 10만 가구가 안 된다.

그러니까 우리 농업·농촌의 현실에서 기업화, 산업화의 주역이 될 농민은 일부 상위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다수 농민은 중소농이거나 영세농으로 분류된다. '돈 버는 농업', '부가가치가 높은 선진농업'이라는 농업경제학의 전략과 방식으로는 일부 기업형 부농을 제외하고 대다수 농민의 경제 사정이나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없다.

'중소농'은 사회복지로 보살피자

'아스팔트농사'를 지으러 농민대회로 상경한 소농.
 '아스팔트농사'를 지으러 농민대회로 상경한 소농.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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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중소농, 가족농 중심의 생계형 농업 구조에 바탕을 둔 우리 농업의 현실에서 기업농 중심의 상업적 농업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기업농이나 상업농 위주 보다는 중소농들끼리 협력과 연대를 통한 공동 생산, 공동 가공, 공동 유통 방식의 공동체 농업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덴마크, 뉴질랜드 등 협동조합이 중심이 돈 농업선진국의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세계적 브랜드인 썬키스트, 제스프리 등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산지 생산자 조직화를 통한 교섭력을 키우고, 협동조합 간 연합체 구성과 참여조직의 역할분담으로 규모화·전문화의 효과를 발휘했다.

무엇보다 우리 농촌은 단순한 생산의 공간이라기보다 생활의 공간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농민을 단순한 경제활동 인구로 보기보다 사회복지의 수혜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그러려면 농정의 패러다임이 전업농 육성 위주의, 상업화와 규모화를 추구하는 '돈 버는 농업'이 아닌 가족농․중소농 중심의 '사람 사는 농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중소농은 가족노동력에 기대 자급자족해야 하는 처지이다. 상업화, 규모화와는 거리가 먼 순정한 생계형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수지타산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중소농․가족농 중심'의 농업정책은 소득 중심 농업경제학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기초생활 보장제, 직불제 등 농가소득을 보전하고 사회안전망과 사회적경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복지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협동조합으로 농사를 함께 짓자

협동농업공동체 사례 1 : 옥천 '산계뜰 친환경영농조합법인'
 협동농업공동체 사례 1 : 옥천 '산계뜰 친환경영농조합법인'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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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농민들이 현장에서 요구하는 대안은 기업농 중심, 자본투자 위주의 모델이 아니다. 중소농이 중심이 된 협동조합 방식인 '협동화사업' 모델이다. 6차산업화든, 스마트농업이든 소규모/영세 농업경영체가 많은 우리 농촌의 특성과 다기능성을 살리면서 추진되어야 마땅하다. 본질적으로 농업이 근간이기 때문이다. 농기업 창업, 일자리 창출, 농가소득 제고 등은 그 협동화사업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부산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고 생산인력이 부족한 농촌에서 사업을 영위하기 힘들다. 구조적으로, 환경적으로 충분한 규모이자 지속가능한 상권을 형성하는 일도 어렵다. 이럴 때, 농촌의 주민들이 협업을 통해 생산·소비협동조합을 결성한다면 시장실패의 가능성을 낮추는 유력한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협동사업화'를 통한 자주적 발전 전략은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지역사회 내부역량을 증진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지역사회 발전을 추진하는 주체는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지역사회 다수 주민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수가 참여하는 '지역사회 또는 지자체 단위의 협동조합' 방식은 개별 농민 구성원의 욕구보다는 지역사회 공통의 발전을 지향하므로 정책적 명분도 충분하다.

특히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의 사회적 자본(Socail capital)을 증진시킨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협동조합에 참여하면서 협동조합의 발전과정과 조합원 역할, 리더십 등을 경험하고 공유하면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지역사회와 구성원들이 사업조직을 만들거나 강화하는 데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무엇보다 과소화하고 사회적 활력이 저하된 농촌은 현재 사회적 연결망이 침식되거나 부재한 상태이다.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거나 복원하는 조직화 활동이 절실하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방법, 협동조합을 통한 '협동사업화'가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다만 농촌지역 협동조합의 정상화와 활성화를 위해서는 관련 제도와 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부터 개정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면제 지원대상인 농업회사법인은 상법상 법인 형태로만 설립이 가능하다(조세특례제한법 제68조, 제105조, 제106조).

따라서 농업법인(영농조합법인 및 농업회사법인)과 동일한 수준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협동조합을 농업법인의 한 형태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농식품부의 보조금 및 융자 지원 정책 사업은 주로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농업법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농업인들이 협업적 농업경영체 성격의 협동조합을 설립할 경우, 이 법률의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형평성에도 부합한다는 판단이다.

협동조합금융도 난제다. 문제는 협동조합 경영지원, 협동조합 대출, 협동조합 투자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경영 지원, 회계·재무컨설팅 등 사업경영의 전문성, 역량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협동조합의 특성에 부합하는 재무제표 평가, 신용평가 및 신용등급 기준 마련이 최우선 과제다. 협동조합 유형별, 성장단계별 금융수요 조사, 최적 자금조달 방안도 수립되어야 한다. 법적, 제도적 한계가 존재하는 기존의 농협, 신협, 금고 등 금융협동조합들이 협동경제의 금융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상을 재정립해 이른바 '협동조합경제 금융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농촌에서 협동조합으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사회적 결사체'의 최적화 모델이 될 수 있다. 협동조합은 그동안 농촌정책에서 견지해온 농촌의 지역사회 발전전략을 개선하는 적당한 대안으로 보인다. 인구밀도와 생활서비스 접근성이 낮은 농촌 지역사회에 적정한 가격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협동조합이 유력한 수단과 경로가 될 수 있다. 인구 과소화, 지역사회 공동화, 중앙과 격리 등으로 발생하는 농촌지역의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해법으로 보인다.

중·소농 농업공동체를 조직하자

협동농업공동체 사례 2 : 횡성 공근리 '한 살림생산자 공동체'
 협동농업공동체 사례 2 : 횡성 공근리 '한 살림생산자 공동체'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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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는 지난 2011년부터 '마을단위 농업공동체'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 농지가 영세 분산 필지 상태인 영농구조에서는 개별경영의 규모화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규모를 확대해도 효율적 경영은 어렵다. 개별경영 단위의 규모화로는 농업의 경쟁력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역자원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복합화·다각화 할 필요가 있다. 복합화·다각화의 경우 개별경영보다 다수의 구성원이 참여하는 '조직경영'방식이 유리할 것이다. 마을단위 영농활동을 조직화 하고, 공동 경영을 통해 범위·규모의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하면 개별 경영체의 영세성이 극복될 수 있다.

농림부의 '마을단위 농업공동체'는 "농업비중이 높은 마을단위로 공동 영농·판매 등을 수행하는 지역농업조직을 구성하고, 지역경제의 구심체로 육성"하는 것이다. 우선 조직화를 통해 지역자원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지역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지역주민 또는 지역 농협·농업법인 등이 자발적으로 결성하는 공동성도 도모할 수 있다. 나아가 자립성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경영방식으로 수익성도 추구한다. 형태는 민법상 법인·조합, 농업법인,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으로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

마을 단위로 농지의 단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농지규모화의 효과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지역의 농지 보전과 관리에도 효과적이다. 또 영세한 농가가 공동으로 조직화하면 농업의 지속성도 증가한다. 단기적으로 농업생산 유지를 통해 경작포기지 발생을 방지한다. 장기적으로는 지역단위의 후계자 확보대책으로 기능할 수 있다. 농지의 단지화, 농기계 공동이용으로 비용도 절감된다.

일본의 경우, 평균 0.8ha(벼 48a, 콩 32a)의 경지면적을 가진 37호(총 면적 30ha)가 각각 개별경영을 한 경우의 전체 비용은 12억1400엔이나, 마을영농의 경우 개별경영의 45%(5천500엔) 수준으로 비용이 절감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농업공동체 조직화 유형은 생산자 조직 주도형, 농협 주도형, 지자체 주도형으로 구분된다. 생산자 조직 주도형은 개별농가로서 담당하기 어려운 생산과정의 일부 또는 전부를 조직화를 통해 실행하는 생산 단계에 해당한다. 의성 '의로운쌀' 생산자연합회처럼 주로 농협의 계통출하를 목적으로 하는 품목조직이나 공동출하, 가공, 유통을 위한 생산자 모임이 주도한다.

농협 주도형은 APC(공선회, 작목반), RPC(미곡종합처리장)를 중심으로 유통 혹은 생산 부문의 규모화·계열화를 추구하는 지역농협 중심이다. 농협 중심의 친환경쌀 생산·유통 단지인 용인 원삼농협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자체 주도형은 중앙정부로부터 투입되는 자금이나 제도를 지역(마을단위)과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유형을 말한다. 지자체가 직접 유통이나 출자를 통해 경영에 참여하는 안성마춤클러스터를 예로 들 수 있다.

경상북도도 '경북형 마을영농 육성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농지는 개인 소유, 경작은 마을단위로 공동으로 하는 게 특징이다. 마을단위의 경작을 통해 경영비를 대폭 줄여 농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정책 목적이다. 국내 최초로 일본 '집락영농'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 지역 특성에 맞게 개량해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사업이다.

마을영농의 경영주체에 따라 마을주도형 모델·농협주도형 모델·기업주도형 모델·혼합형 모델 등으로 분류된다. 기존의 개별소유와 개별관리 방식의 영농을 농지 소유자와 이용자를 분리한 것이다. 농지 및 농기계 공동이용, 작업별 노동력 집중 투입 등을 통해 생산비용을 최소화하고 마을전체의 농업경쟁력을 높이는 게 최종 목표다. 3억 원 내외의 사업비는 마을영농을 운영하는 전문 경영인이나 농기계 운영자 등의 인건비, 농기계 창고, 저장시설, 공동 농기계 구입비 등에 사용된다.


태그:#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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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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