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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다리 수술을 마친 녹고.
 지난해 11월, 다리 수술을 마친 녹고.
ⓒ 조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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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8일 오후 4시 30분]

녹고, 기억나세요?

지난해 11월, 녹동고등학교 학생들로부터 구조됐던 한 살 반 강아지 녹고.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녹고는 많은 분의 관심과 사랑으로 다친 다리도 튼튼해졌고, 온몸에 박혀있던 진드기도 이제 없습니다.

[첫 보도] 학교 전체가 개 집이 된 사연, 이렇습니다

녹고와 함께한 지도 어느덧 2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녹고는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됐고, 다가오는 2월 공개입양 절차를 거쳐 새로운 동반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11일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 많은 분이 녹고를 향한 애정어린 말씀을 주셨습니다. 녹고의 이야기는 여러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배치되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들도, 동네마트 주인아주머니도 모두 녹고가 어떤 강아지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녹고를 두고 '내가 잃어버린 강아지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났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계속 이렇게 학교에서 있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주인을 찾아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녹고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학교 인근 마을 주민분을 학교로 모시게 됐습니다.

녹고에게도 가족이 있었습니다

녹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1학년 학생들. 녹고 일이라면 뭐든지 발벗고 나섭니다.
▲ 녹고 가족 만나러. 녹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1학년 학생들. 녹고 일이라면 뭐든지 발벗고 나섭니다.
ⓒ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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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녹고는 이 주변에서 살고 있었던 게 맞았습니다. 녹고의 원래 이름은 '초코'였답니다. 집은 학교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주인아저씨와 만난 뒤, 녹고와 관련된 일을 맡은 학생들은 급히 모여 이제 녹고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녹고가 어느 곳에서 자라왔는지 보는 게 먼저일 것 같다'는 의견에 따라 며칠 뒤, 학생들은 녹고가 있었던 집으로 무작정 향했습니다.

학교에서 걸어서 3분, 엎어지면 코가 닿을 것처럼 가까웠던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녹고와 꼭 빼닮은 새끼 강아지 그리고 녹고의 부인으로 보이는 강아지도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녹고를 주인아저씨 댁에 두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녹고의 건강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학교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두고 돌아온 뒤에도 녹고는 학교에서 선생님들, 학생들과 계속 함께 생활했습니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 녹고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수업시간, 녹고는 자연스럽게 학교 밖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조용히 수업을 같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면, 여러 사람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행복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가끔 혼자 집에 들러 자식들과 부인을 보고 오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어떨 때는 부인과 함께 학교에 와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될 때 국어 선생님 앞에서 낑낑대며 '선생님,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신호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면 녹고는 선생님과 같이 퇴근해 선생님 집에 있는 닥스훈트 '훈'이와 재미있게 놀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에겐 보살핌이 필요했습니다

한 번 녹고네 집에 갔다 하면 학교로 돌아올 때 끝까지 따라왔던 베리. 얼마나 아쉬웠을까.
▲ 가는 게 아쉬워 학교까지 따라온 베리 한 번 녹고네 집에 갔다 하면 학교로 돌아올 때 끝까지 따라왔던 베리. 얼마나 아쉬웠을까.
ⓒ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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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고의 가족들을 보게 된 국어 선생님은 '내가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녹고의 부인인 '베리' 그리고 남은 새끼 강아지 두 마리의 몸 곳곳에도 진드기가 붙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주인아저씨에게 "당분간 녹고 가족들을 맡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더니,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베리와 새끼 강아지들의 진드기를 없애고 예방접종까지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새끼 강아지들을 처음 만났을 때 솜사탕 같은 모습이었다면서 한 마리를 '솜', 다른 한 마리를 '사탕'이라고 불렀습니다.

"당분간 맡겠다"는 말처럼 잠깐 함께하고 헤어질 때 쉽게 헤어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녹고와는 쉽게 정을 뗄 수 없었습니다. 이젠 녹고뿐만 아니라 베리, 솜과 사탕 모두와 헤어지기엔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너무 정이 많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국어 선생님과 1학년 학생 2명이 주인아저씨와 만났습니다. 주인아저씨에게는 가혹했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너무 이기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녹고, 베리 그리고 새끼들. 저희가 따뜻한 곳에서, 예방주사 접종도 하면서 키워도 될까요?"

대답은 한 번에 나왔습니다.

"그러세요."

저번에 여쭤봤을 때는 어려울 것 같다고 못을 박은 아저씨였습니다. 이쯤 되니 학생들이나 선생님들 모두 믿음직스러워 보였나 봅니다. 아저씨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겠지만, 아들의 건강 상의 문제로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했습니다. 가끔 녹고가 보고 싶을 때 학교에 갈 테니 서로 소식을 전하면서 살자고 했습니다.

녹고의 사랑스러운 가족을 소개합니다

왼쪽 위가 녹고, 오른쪽 위는 녹고의 부인 베리, 왼쪽 아래는 천방지축 솜, 오른쪽 아래는 아직은 어린 사탕.
▲ 녹고, 베리, 솜, 사탕 사진입니다. 왼쪽 위가 녹고, 오른쪽 위는 녹고의 부인 베리, 왼쪽 아래는 천방지축 솜, 오른쪽 아래는 아직은 어린 사탕.
ⓒ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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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사탕, 녹고, 베리, 솜입니다. 사탕은 아직 어려요.
▲ 녹고네 가족사진. 왼쪽부터 사탕, 녹고, 베리, 솜입니다. 사탕은 아직 어려요.
ⓒ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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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고네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만났던 새끼강아지. 솜인지 사탕인지는 구별을 못하겠다. 그 땐 둘다 정말 솜사탕처럼 생겼었다.
▲ 처음 만났을 때, 정말 솜사탕같던 새끼강아지 녹고네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만났던 새끼강아지. 솜인지 사탕인지는 구별을 못하겠다. 그 땐 둘다 정말 솜사탕처럼 생겼었다.
ⓒ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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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녹고는 가족과 함께라서 따뜻합니다.

이제 녹고와 베리, 솜, 사탕 모두 2월에 공개입양 절차를 밟을 예정입니다. 깐깐한 심사를 거쳐 엄선된 반려인에게 입양할 계획입니다. 그것이 녹고 가족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얼마나 설레는 일이 될까요.

"끝까지 돌보겠다는 의지,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생각이 없는데 지금 몇 번 보고 귀엽다고 가족으로 덜컥 맞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울립니다.


태그:#녹고, #고흥녹동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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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대학생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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