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익에 치중하기 보다는 음식의 맛과 질에 집중을 합니다."
주호연 사장이 계산대에서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익에 치중하기 보다는 음식의 맛과 질에 집중을 합니다." 주호연 사장이 계산대에서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이생곤

관련사진보기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 나나니 나려도 못노나니, 아니리 아니리 아니노네, 에야 디야 에야 나나니요, 오지도 못하나 나도 가마, 에야 디야 에야 나나니요, 오지도 못하나 나도 가마.

요리 잘 하냐구요? 예전 드라마 대장금에서 나오는 '장금'이를 따라갈 만한 절대 미각을 갖고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정성 만큼은 남자 '장금'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웃음)."

34세 청년사업가 수송동 고깃집 '도마' 주호연 사장. 손님 맞이에 그의 손과 발은 연신 바쁘다. 고기 썰기를 마치고 된장국 레시피에 따라 소고기와 갖은 양념들을 솥에 넣고 커다란 국자로 휘휘 젓는다.

"된장국은 우리 식당의 최고의 별미죠. 특별한 레시피에 저의 정성을 듬뿍 듬뿍 담았습니다." 직접 된장국을 조리하고 있는 주호연 사장.
 "된장국은 우리 식당의 최고의 별미죠. 특별한 레시피에 저의 정성을 듬뿍 듬뿍 담았습니다." 직접 된장국을 조리하고 있는 주호연 사장.
ⓒ 이생곤

관련사진보기


한참을 자기일에 집중하고 미안했던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바쁜시간을 피하고자 아침에 왔는데 기자의 판단 착오였다.

"저녁시간이 매우 바쁘기는 하나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하여 식당일 중 중요한 일은 제가 직접합니다. 고기 썰기나 된장국은 저의 주된 업무 중 하나죠. 제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면 똑같이 고기를 썰고 똑같은 레시피를 써도 제가 있을 때의 그 맛이 아니라고 합니다. (수줍은 웃음)"

주호연 사장이 직접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고기 색깔만 보아도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구별을 할 수 있다는 주호연 사장.
 주호연 사장이 직접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고기 색깔만 보아도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구별을 할 수 있다는 주호연 사장.
ⓒ 이생곤

관련사진보기


구도심 '영동'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아이

"저희 부모님께서는 지금은 구도심이 되었지만 당시 최고 잘나가는 '영동'에서 의류매장을 하셨어요. 혹시 'Lee' 라고 아시나요? 저 아기 때부터 했으니 십수년은 되었을 겁니다. 지금은 물론 장사를 접으셨구요. 어릴적부터 뛰어놀던 장소가 상가 중심가이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상가 매장이었죠. 자연스럽게 장사에 눈이 뜨인 것 같아요"

어릴적 살던 동네 이야기가 나오자 주호연 사장은 물고기가 물 만난것처럼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누나 그리고 저 1남 1녀예요. 공부 잘하는 누나에게는 공부 잘 하라는 잔소리가 심하셨지만, 저에게는 예외였습니다.(웃음) 공부를 잘 하지 못한 덕분(?)에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어릴적 제게 많은 자유를 주셨어요. 덕분에 학창시절에는 어마무시한 경험을 쌓을 수가 있었습니다."

주호연 사장은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열을 다하여 이야기를 한다. 엉뚱하게도 그의 '초초초 긍정적인 성격'에 대해 매우 궁금해졌다.

"저는 어떠한 상황에도 저를 믿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긍정적인 성격은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어릴적부터 뭘 하라고 강요하거나 압박을 하지 않았거든요. 대신 제가 하는 일에 묵묵하게 마음적으로 많이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저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부모님께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웃는 자에게 침을 못 뱉는다잖아요 그래서 더욱 많이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많이 갖고 있었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 못하던 아이 하지만 웃음기 많은 얼굴로 상냥하게 사람을 대하는 그 덕분에 기자도 인터뷰 내내 즐거웠다.

사업에 눈을 뜨다

그의 나이 20세, 일반적인 대학 새내기(군산대학교)들의 들뜬 생활과는 달리 그는 커피숍에서 알바 생활을 했단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이 자기 나름의 확고한 철학이었단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당시 영동 시내에 젊은층에 최고 인기 커피숍이었던 '제스티'라는 커피숍에서 알바를 했어요. 고등학교에서 못했던 공부, 대학에 오니 더욱 싫어졌습니다.(웃음) 그래서 학교 생활에서 시간을 낭비하는것 보다 뭔가 의미있는 일을 찾게 된 것이 커피숍이었습니다. 사장님께서 너무도 잘해주셨습니다. 커피숍 영업이 끝나면 직원들 회식시켜주시고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라도 보이면 사우나 티켓을 주면서 다녀오라고 하고 먹는 것도 제일로 비싼 것만 사주시고 저에게는 꿈만 같은 직장이었죠.

그분은 제 미래의 삶까지 걱정해주고 조언을 해주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원래 2개월 계획이었는데 사장님께서 커피숍을 정리하는 기간까지 2년 반을 함께 동고동락을 했습니다. 지금 경영철학을 그분으로부터 많이 배웠습니다."

'제스티' 커피숍에서 일했던 경험을 신명나게 풀어내는 그는 커피숍 사장님을 마치 친형제와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며 그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여러번 언급했다. 커피숍에서 경험 2년 반은 그가 사업에 매료를 갖게된 배경이 되었단다. 학업을 뒤로하고 군입대후 2년이란 시간은 대학을 자퇴하게 되는 전기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배움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 없어요. 사람이 모두다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을 하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까요? 저같이 공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공부 대신에 다른 걸 하면 되잖아요."(웃음)

2006년 한창 독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한 달 전 즈음하여 지인으로부터 월드컵 응원도구인 중국산 '악마뿔 머리띠' 판매 제안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지인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단가인 1000원에 2000원의 마진을 붙여서 주호연 사장에게 넘기면 주 사장은 7000원을 붙여서 10000원에 소매 판매를 한다는 제안이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반신반의 하던 차에 친구가 돈의 일부를 보탤 테니 한번 해보자라고 하더군요. 군산시내 한복판인 영동에서 창피함을 잊은 채 좌판을 벌여 월드컵 내내 노점상을 했습니다. 제가 얼굴이 쪼매 잘 생겼죠.(웃음) 특히 젊은 여자분들이 많이 사갔습니다. 그때 노점상 경험을 계기로 사업은 쉽다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함부로 믿을 게 못되더라구요"

탄력 받은 그의 장사수완은 그가 아는 형님의 친구와 중국산 여성옷 유통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상 좋은 형님의 친구는 첫 만남부터 매우 친절했고 상냥했다. 중국에서 수입한 여자옷은 나운동 일대 상가에서 노점을 통해 팔려나갔다. 1차로 수입한 여성옷 100여벌은 단 이틀만에 팔려나갔다.

"그때 당시 군산 경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매대에 진열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습니다. 2차 수입했던 500여 벌도 바로 팔려 나갔고 3차 1000여 벌도 어렵지 않게 팔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수고로움에 반해서 저에게 떨어지는 이익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분은 돈을 저는 영업을 하는 것으로 동업을 했지만 어린 제가 뭘 모른다는 생각으로 저의 이익금을 그분이 모두 취한 거였죠.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4차 수입분 5000여 벌에서 하자가 발생한 겁니다. 판매를 할 수가 없었고 사간 분들한테서 항의를 받고 뒷수습 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습니다. 제가 투자한 돈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투자를 했더라면... 지금도 그때 생각를 하면 끔찍합니다."

그때 동업의 경험으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기와 만나서 관계를 맺는 사람과는 친해야만 하고 서로 무조건 믿어야한다는 하는 그의 생각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좀더 농익은 생각으로 변했단다.

자동차 회사에서의 5년...

사람에게 한 번 호되게 치이다 보니 사업하기에 다소 지쳤었나보다. 그는 한국지엠 군산공장 하청 업체 직원으로 입사를 하였다. 매일 매일 조이고 닦고 하는 단순한 작업장에서 특별함은 찾지 못했지만 퇴근하고 술 한잔 하는 것이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술 한잔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동료들과의 관계성에 큰 의미를 두었음이리라. 

한국지엠 군산공장 정문사진, 2013년 지엠 유럽물량 철수로 군산공장 운용에 어려움이 직면되어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정문사진, 2013년 지엠 유럽물량 철수로 군산공장 운용에 어려움이 직면되어있다.
ⓒ 이생곤

관련사진보기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무슨 생각으로 사회 생활을 했는지, 참으로 철딱서니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목표가 없었습니다. 벌어놓았던 돈이 조금 있었고 고되지 않았던 회사생활에 그저 동료들과 술 한잔으로 하루를 때웠으니 말이죠."

5년여의 회사생활은 그에게는 요즘말로 숨기고 싶은 '흑역사'였단다. 자기 몸속에 흐르는 사업가의 DNA를 마다하고 월급에 안주하던 지난날 아니 그 보다도 목표없이 하루 하루를 살았던 지난 5년을 격하게 반성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요. 그냥 목적없이 사는 제가 너무 싫었어요. 아마도 사업가적인 기질을 5년간 내면에 숨겨져 있다가 어느날부터 서서히 살아나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친구란 무엇인가? 두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때마침 그와 절친인 친구가 나운동에서 '도마'라는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밀려드는 손님들로 인하여 매일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단다. 아무런 생각없이 친구를 찾아갔고 친구에게 자기의 맹목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중 친구는 "호연아 너에게 '도마' 이름 빌려줄테니 식당 운영해보지 않을래?"라고 제안을 했다.

사업이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고기 육질로 모르고 음식 조리도 못하는 상황에서 식당 운영은 다소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열정적인 친구의 제안에 그만 덜컥 수용을 했다.

"2호점을 운영해보라는 친구의 제안이 매우 고맙기는 했지만 음식하고는 젬병인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고 걱정은 했지만 친구의 열정적인 설명에 얼떨결에 '오케이' 해버린 거죠. 그날 밤 괜히 한다고 했나? 잘 할 수는 있을까? 후회를 하면서 두눈으로 꼬박 날을 샜습니다."

퉁퉁 부은 눈, 멍한 상태로 회사에 출근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주변에서 며칠동안 만류를 했단다. "회사 나가봐라 너를 맞이하는 것은 혹독한 실패이다." 지인들의 충고, 조언은 저 하늘에 던져버렸다. '이제는 회사가 아닌 내 사업이다. 나에게 충고했던 이들에게 내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이리라.'

"5년 동안의 회사생활로 정신상태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의욕과 의지 상실이었었죠.(한숨) 그런 저의 모습을 본 친구는 제게 2호점 운영권을 맡긴 거였죠. 군산에 연고가 없는 친구인데 아르바이트 할 적에 만나서 지금까지 '죽마고우' 이상으로 친해진 친구이죠. 만일 그 친구가 신장이 망가졌다면 제 신장이라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친구 입니다.(웃음)"

드디어 고깃집 식당을 운영하다

식당 개업일 2015년 5월 15일, 주호연 사장은 오픈식 첫날의 떨리는 마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오픈하기 전 '도마' 나운동 1호점에서 한달여를 밤을 지새우며 고기 써는 법, 레시피 익히는 법, 회계장부 정리하는 방법 등. 속성으로 배운 결실을 5월 15일 집중적으로 다 쏟아 부어야했다. 입장하는 손님 맞이, 서빙 등 그날 하루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하나도 정신이 없었어요. 서빙도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우왕좌왕 어떻게 할지 난감했었습니다.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오픈식 첫날의 경험이 바로 내공을 쌓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튿날 부터는 조금 차분해 지더라구요. 첫날 잘못되었던 부분을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직원들한테서 듣고 그러다 보니 정리가 되어갔습니다. 3일째부터는 모든 게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마치 몇 십년을 같이 손발을 맞춘 것처럼요.(웃음)"

정성스럽게 차려 내어진 '육회'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정성스럽게 차려 내어진 '육회'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 이생곤

관련사진보기


고깃집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뭔지 물어봤다.

"어떨결에 시작한 고깃집 감사하게도 주변분들이 너무도 많이 도와줬어요. 지인들께서 손님을 데려와 주시고, 또 그 손님이 다른 손님을 데려와 주시고요. 신선한 돈육은 군산 인근의 최고의 돈육 가공업자로부터 그날 그날 입고를 시킵니다. 회전이 잘 되기 때문에 육질의 신선도는 최고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식당 운영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직원들 관리 입니다. 고기 맛이 아무리 좋다 한들 서비스가 형편이 없으면 누가 오겠습니까? 우리 직원들 관리는 강인구 점장께서 하십니다. 점장님 아니었으면 식당 벌써 접었을 겁니다."

자기 보다 한참 어린 점장에게 꼬박 꼬박 존대말을 하는 주호연 사장에게서 사람을 대함에 있어 겸손함과 배려심을 엿볼 수가 있었다.

초저녁 6시, 식당은 룸 뿐만이 아니라 홀까지 거의 찼다. 3차 인터뷰는 오후 3시부터 시작하여 5시까지 마치려 했으나 인터뷰하랴 손님 맞이하랴 왔다갔다 하면서 인터뷰 마칠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체되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가 그리는 미래의 꿈이 무엇인지를...

"저는 어릴적 남들 보단 그래도 모자람이 없이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려운 이웃들에 대해서 공감이 부족합니다. TV나 일반 매체에서 나오는 불우한 환경에 놓인 노인분들이나 이웃들에 대해서 무신경했습니다. 식당업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진상 손님부터 예의가 매우 바른 손님까지요. 의도치 않게 대면하게 되는 손님들을 보면서 공감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사회적 약자에게 제가 갖고 있는 일부를 나누는 '나눔실천'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요. 양로원이나 고아원이나 연결이 되는 곳부터 저희 식당에 초청해서 고기를 양껏 구워드릴 겁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은 봉사를 하려면 사업체도 커져야 겠지요.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화하여 사업과 사회적 봉사를 같이 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식당으로 키워나가려고 합니다."


태그:#군산시 수송동 고깃집 '도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북 군산시의 열혈남아... 백강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