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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여전히 알지 못하는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큰애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울러 제 마음을 큰애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기자말

호주 여행 4일째, 그레이트 오션로드 버스투어를 하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내용에 의하면,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호주 빅토리아주의 남서 해안 절벽을 구비구비 도는 아찔한 드라이브 코스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알려져 있다. 멜버른 서남쪽의 휴양도시 토키(Torquay)에서 시작해 포경업으로 유명한 오래된 항구도시 와남불(Warrnambool) 근처까지 해변을 따라 달리는 243Km의 해안도로다.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명소로 선정될 정도로 웅장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한 눈에도 난공사로 보이는 이 도로는 호주정부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전몰장병들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쟁기념관이라 할 수 있다. 1919년 착공하여 1932년 완공했으며, 12사도 상을 필두로 수많은 관람포인트를 가지고 있다(관련 내용은 위키피디아 참고).

-해안을 따라 2차선의 좁은 도로가 계속 이어진다.
▲ 그레이트 오션로드 맵 -해안을 따라 2차선의 좁은 도로가 계속 이어진다.
ⓒ 구글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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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이러한 사전지식을 거의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버스투어를 떠났다. 그레이트 오션로드가 어디쯤 있는지, 꼭 들러봐야 할 명소는 어디인지, 스마트폰에서 인터넷 검색을 잠깐만 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당시에는 큰애 문제에 집중하느라 여행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호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큰애 문제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당시의 여행기억을 떠올려 보니, '좋았다, 나도 가보았다'는 정도 이외에 특별한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남해안 섬여행을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 내는 절경을 보고도 그 감정에 동참하지 못했던 것이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메마른 감정을 보유한 왕자는 그 벌로 야수로 변한다. 본 모습으로 돌아 오는 방법은 단 하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 왕자는 우연히 성을 찾은 미녀를 통해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알게 돼 제모습을 찾게 된다. 재밌게 봤던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사랑이나 아름다움과 같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계기와 트레이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아마도 여기에 '마음의 여유'라는 항목을 하나 더 더해야 할 것 같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그림을 보는 안목을 가지려면 적어도 1000장의 그림을 봐야 한다"라고. '자주 접해야 하고,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이어지는 설명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고, 그래서 나도 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주는 아름다움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 어려웠다. 새롭게 시작하는 2막 인생에서는 달라지기를 나는 기대한다.

예약을 했는데 왜 줄을 서지?

-분위기 있는 조명이 인상적이었다.
▲ 광장에서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 -분위기 있는 조명이 인상적이었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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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오션로드 버스투어는 비교적 이른 시간인 오전 8시에 출발한다. 버스가 출발하는 페더레이션 광장은 야라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민박집에서는 30분 정도 거리다. 혹시라도 버스를 놓치면 낭패라는 생각에 새벽부터 서둘러 광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전 7시가 채 되지 않았다. 버스 탑승장소를 확인하고 우리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분위기 있는 광장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오전 7시 30분 정도 되자 투어를 예약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한 팀이 버스 탑승장소 앞에서 줄을 섰다. 예약을 했는데 왜 줄을 설까? 그 이유를 버스에 타고 나서야 알았다. 2층 투어버스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맨 앞자리다. 아까 줄을 선 사람들이 그 앞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거기서는 탁 트인 넓은 전면 유리를 통해 시야가 잘 확보된다. 장거리 여행에서 발을 편하게 펼 수 있는 공간도 충분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제일 먼저 온 우리가 먼저 줄을 서는 건데…. 어딜 가나 아는 게 힘이다.

버스 기사 겸 가이드는 출발하면서 알아 듣기 힘든 호주 영어로 몇 가지 주의사항과 투어 스케줄을 안내했다. 요약하면, 투어를 마치고 출발장소에 다시 돌아오는 것은 오후 7시 30분이고, 단체로 움직이니까 버스에서 하차하면 지정된 시간까지 구경을 마치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 음료대는 1, 2층에 하나씩 있고, 주요 정차장은 앵글시(Anglesea), 론(Lorne), 아폴로베이(Apollo Bay), 포트캠벨 국립공원(Port Campbell) 등이란다.

버스가 달리는 거의 내내 주변 도시 및 명소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예를 들면 멜버른 시는 1850년대의 골드러쉬 때 인구가 급팽창했으며,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며, 지금은 레스토랑, 스포츠의 수도로 불린다. 지난주에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가 열렸다는 것 등이다.

여기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버스기사가 간식과 뜨거운 차를 준비하고 있다.
▲ 투어 버스 버스기사가 간식과 뜨거운 차를 준비하고 있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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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시내을 벗어나자, 도로 양쪽 지평선 멀리까지 조성된 초지에 소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전형적인 호주의 농촌 풍경이 나타났다. 호주의 목장을 처음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소와 양 같은 가축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큰애는 소를 완전히 방목해 키우기 때문에 한 마리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대관령 목장의 떼지어 있는 소떼'와는 전혀 다른 스케일이다.

버스는 직선도로를 달려 갔고, 가이드 역할을 겸하는 운전기사는 열심히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지독한 호주 억양의 영어를 사용하는 가이드의 설명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표준말을 사용하는 성우의 내레이션도 겨우겨우 알아 듣는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이드 설명에 집중하는 대신, 띄엄띄엄 들리는 설명을 귓전으로 흘리면서, 가이드 방송을 자장가 삼아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잠이 깨면 다시 주변경치를 구경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버스는 앵글시에 들어서고 있었다.

버스가 정차하고, 오전 9시 45분까지 버스로 돌아 오라는 안내에 따라 우리는 약 25분간 주변을 산책했다. 앵글시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버스를 세웠다.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곤조곤 체계적으로 감상하고 설명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있지 않다.

한국의 바닷가 풍경과 어딘가 달라 보이는 강변을 외국인들과 같이 거닐다가 기념사진을 찍으며 여기 저기 어슬렁거렸다. 시간이 돼 버스로 돌아오니 기사가 간식과 뜨거운 차를 나눠주고 있었다. 이후에도 우리의 그레이트 오션로드 투어는 관광명소에 잠시 정차했다가 구경이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식으로 종일 진행됐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 그레이트 오션로드 현판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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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를 하면서 그나마 기억이 남는 곳은 그레이트 오션로드 현판이 있는 이스턴 뷰(Eastern View). 많은 사람들이 현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를 가로질러 설치된 관문에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 잽싸게 도로 한복판으로 나가 사진을 찍는 것이다. 나도 순서를 기다려 사진을 찍었다.

여기에 오는 여행객들은 버스, 자동차, 바이크, 자전거 등 다양한 형태의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그중에서 내 나이 또래의 자전거 투어를 하는 부부가 인상적이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로 싱그럽게 웃는 모습에서 건강과 행복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점심은 아폴로 베이의 식당에서 했는데 사람이 무지 많았다. 음식진열대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서 먹는 식당이었다. 마치 시장바닥과 같은 왁자지껄함 속에서 작은 애와 나는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뒤를 따라 가면서 맛있을 것 같은 요리를 골랐다. 나중에 잘못된 선택을 한 음식을 해치우느라 고생했지만, 테이블 쟁탈전을 벌이며, 떠들썩 하게 식사를 하는 것도 괜찮았다.

식사를 하고 남는 시간 동안 마을을 구경했다. 호주 해변의 특징은 넓은 백사장과 도로 사이에 놓인 공원이다. 공원에서는 바베큐를 할 수 있고, 주차장이 딸려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백사장과 잔디밭을 오가며 해수욕과 바베큐를 즐길 수 있다. 바닷가에서 놀다가 배가 고프면 바베큐를 먹고, 배가 부르면 바다에서 놀고….

나중에 큰애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호주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어서 저축을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주급으로 나오는 급여는 바로 쓰기에 딱 좋다. 실직을 하면 실업수당이 나오고, 의료비도 저렴하다. 여기에 놀기에 정말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에 고민이 없을 수 없을 텐데, 여기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태그:#멜버른, #호주유학, #그레이트 오션로드, #베이비부머, #2막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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