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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에 대해 찾아봤다.

"쉽게 피로하고, 쉽게 자극에 반응하고, 정신적 불안정, 불면, 두통 등 자율신경증상을 주증상으로 하는 신경증과 같은 장애. 심신의 과로나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하는데 휴식으로 회복해야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중

나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가을이(반려견)와 스밀라(반려묘)가 보는 앞에서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울음이 터지자 멈추지 않았고 짜증이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관자놀이가 짓누르듯이 아팠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역한 소음으로 느껴졌다.

지금껏 살면서 마주한 우울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탈 이성'의 상황에서는 나 자신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내 손으로 저 애들에게 더한 학대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엔 지독하게 깊은 밤이었다. 그나마 '이 상태로는 누구에게도 전화하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을 보면 일말의 이성이 살아있기는 했나보다. 하지만 실낱같은 이성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신체적 고통을 덜어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저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해만 뜨면, 내가 병원에 들어가든 저 녀석을 병원에 보내든 해야 할 것이었다. 

'발정'난 스밀라... 이렇게 고통스러울수가

현란한 율동으로 악령을 쫓듯 울어댄다.
▲ 발정이 온 스밀라 현란한 율동으로 악령을 쫓듯 울어댄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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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달의 근원은 스밀라에 있었다. 빠르면 생후 5~6개월, 늦으면 1년이 지나서 온다는 고양이의 발정기를 나는 너무나 혹독하게 치르고 있었다. 잠깐, 발정은 쟤한테 왔는데 왜 내가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가.

생각해보니 몇 주 동안 2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다. 스밀라는 특별히 사나워지거나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울기만 했다. 처음엔 예쁜 아가처럼 울어서 일일이 대답을 해줄 정도였지만 점점 강도가 세져 최후의 그것은 귀신과 닮아 있었다. 이 기괴한 소리를 집주인이 들었다간 당장 쫓아낼 것 같았다. 돌아버릴 지경이었지만 7개월 된 2.7kg짜리 고양이가 운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울기만 한 게 아니라 민망할 정도로 엉덩이도 비벼댔다. 나를 쳐다보고 엄혹하게 꾸짖듯이 소리치다가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꼬리를 파르르 떤다. 그러곤 '내 몸이 이상하다!'라고 외치듯이 바닥에서 데굴데굴 뒹굴며 허공에 뒷발질을 하고, 척추를 한도 없이 늘어뜨린다.

성장통이란 이렇게 가혹한 것이로구나! 딱한 마음도 든다. 이렇게 난리법석인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집에선 얼마나 힘들까 생각도 들었다. 이왕 하는 거 밤엔 좀 자면서 하면 좋을 텐데, 도무지 얘는 1시간 이상 잠들지 않는다. 

가슴이 무너질 뻔 했다

지켜보는 가을에게도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해 지면 자고 해 뜨면 깨는, 규칙적인 삶을 지향하던 이에게 지난 몇 주는 벌칙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가 밥을 안 먹더라. 워낙 입이 짧아 매 끼니를 챙기는 게 일 아닌 일인데,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줘도 고개를 싹싹 돌린다. 기어이 일생일대 최초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진짜 너까지 왜 이래!"

한 녀석은 엉덩이를 비벼대며 저승사자를 부르고 있고 다른 녀석은 억울한 표정으로 단식에 돌입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보호자 역할을 포기하고만 싶었다.

붕대를 뜯어먹겠다는 대단한 도전과제를 실행 중이다.
▲ 중성화 수술 후 스밀라 붕대를 뜯어먹겠다는 대단한 도전과제를 실행 중이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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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를 입원시키고 가을이와 끝없는 잠 속에 빠져들었다. 꿀 같은 시간이 지나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스밀라는 붕대를 감은 채 천진난만하게 뛰어놀았고 밥도 잘 먹었다. 아프다 끙끙대지도 않고 약도 꿀꺽 잘 삼켰다. 천사의 목소리도 되찾았다.

정말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고양이들의 세계였다. 이제 가을이가 밥만 잘 먹으면 참 평화가 도래할 터인데, 아직도 식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기를 종류별·부위별로 사줘도 먹는 시늉만 할 뿐. 어느새 허리가 부러질 듯 잘록해지고 갈비뼈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 가을은 심하게 설사를 했다. 나는 멍충이처럼 울면서 가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복부 초음파와 엑스레이를 찍고 혈액검사를 했다. 신부전이라는 끔찍한 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이는 꽤 긴 시간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수액을 맞는 한 쪽 발을 철창에 올리고 나를 보는 가을이의 모습에 무너질 뻔 했다.

"가을아, 금방 다시 올게."

집에는 꾸러기 막내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 애를 보고 웃어주기 힘들 것 같았다.

(* 가을의 신부전 투병기, 다음 기사에 계속)

영문도 모른 채 주사를 맞고 있는 가을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동자.
▲ 이런 날벼락이 또 있을까 영문도 모른 채 주사를 맞고 있는 가을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동자.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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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아지 신부전, #가을이 , #스밀라, #노견 식욕부진, #고양이 중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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