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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원숭이해의 첫 일요일, 지난 3일에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문화팀은 계화도를 찾았다. 계화도 길가에 여러 곳 있었던 조개 선별장들이 사라진 게 십 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그때는 길가에 쌓아둔 조개를 고르고 씻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다 사라지고 빈터로 남아있다.

양지마을 선착장에 도착하니 방수제가 선착장 앞을 가로막아 답답한 모습이었다. 예전에 바다였던 곳에 길이 생기고 그 위를 차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참 낯설다. 선착장에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지만 예전의 활발한 포구가 아니었다. 계화선주협회 사무실 앞에서 뱃사람들을 만나 요즘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았다.

선박 감척사업이 진행되는 새만금, 어부들의 삶은 어떨까

계화도 양지마을 앞에 있는 선착장에 배가 모여있다.
▲ 계화도 선착장 계화도 양지마을 앞에 있는 선착장에 배가 모여있다.
ⓒ 김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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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다에 나갔다가 아무 소득 없이 들어왔어. 배에 기름만 때고 온 거지. 면세유가 지원되지 않아서 이젠 한 번 배 타고 나가면 돈이 더 많이 드는데 빈손으로 돌아오면 어떻게 살겠소!"

"오늘은 숭어 새끼 한 마리도 못 잡고 왔다"고 한 어부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새해가 시작되어 만선의 꿈을 꾸어야 할 어민들이 새해 들어 손해만 본다고 울상이었다. 전북도는 새만금방조제 내해에서 어업하는 어선을 줄이며 선박감척사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면서 물고기가 줄어들고 있는데 작년부터 가뭄이 들어 물고기가 더 잡히지 않아."

'물고기가 왜 안 잡히느냐'고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가뭄과 물고기잡이는 어떤 관계일까?

"가뭄이 들면 바닷물이 더 짜지지. 그러면 민물과 짠물을 오가는 물고기 수가 줄어들어 물고기가 잘 안 잡혀."

수십 년 동안 그물질을 했다는 어부의 생각이었다. 가뭄이 농사뿐만 아니라 어업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기후변화가 몰고 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계화도 어민이 잡은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 계화어민 계화도 어민이 잡은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 김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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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협회 사무실 뒤에서는 다른 어민이 당시 겨우 잡은 물고기 몇 마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망태기에 든 물고기는 우럭과 장어, 숭어 몇 마리에 불과했다. 어민은 "아침부터 배를 몰고 나가 잡아온 수확치고는 너무 적은 것이라 팔지는 못하고 술안주에 쓰려고 회를 뜬다"고 말했다. 그는 능숙한 손질로 물고기의 배를 따고 비늘을 벗겼다. '앞으로도 이렇게 적은 물고기가 잡힌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근심이 그의 얼굴에 묻어 있었다.

양지포구를 나와 계화도 어민 김하수씨를 만났다. 4일 계화도 어민 인터뷰는 독립영화감독 이강길씨가 주선해주었는데 김하수씨는 이 감독의 절친한 친구이다. 김씨는 집 앞에서 숭어잡이 그물을 만들고 있었다. 1톤 트럭 앞에서 그물을 짜는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어업이 더 힘들어졌다'는 계화도 어민

계화도 어민 김하수씨가 그물을 짜고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김씨를 인터뷰했다.
▲ 그물짜기 계화도 어민 김하수씨가 그물을 짜고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김씨를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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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그물을 만들고 있어요?
"숭어 잡는 그물을 만들고 있어요. 직접 그물을 짜는 게 싸서 같이 일하는 동네 형님과 함께 그물을 만들고 있어요. 여기 형님이 그물 만드는 기술자입니다."

- 어디서 숭어를 잡나요?
"새만금 일대에서 고기잡이가 잘 안 되어서 멀리 전남 무안 앞바다까지 가서 숭어잡이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둘만 단독으로는 못하고 그곳(무안 앞바다) 현지 어민의 도움을 받아 숭어잡이를 합니다. 한번 나가면 오래 걸릴 거예요. 그동안 먹어야 하고 잠잘 곳도 얻어야 하고. 돈 쓸 일이 많습니다."

김씨는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했지만 새만금 지역에서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어 다른 지역까지 가서 일해야 한다니 서글픈 일이었다.

계화도 하리에 사는 추귀례 전 부녀회장의 집을 찾았다. 추귀례씨는 새만금 방조제 건설 반대운동을 열심히 했던 '갯벌 여전사' 가운데 한 명이다. 최근에는 방조제 건설 이후 갯벌에서 조개잡이를 할 수 없어서 집에서 쉬고 있다. 추씨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제(2일)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밤늦게까지 새만금 반대운동할 때 찍혔던 사진과 신문기사를 보았어요. 그런데 오늘(3일) 여러분들이 방문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보이지 않는 기가 통한 것 같아요..."

계화도주민 추귀례씨가 10년전 새만금 방조제 반대운동을 할 때의 사진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게 보여주고 있다.
▲ 계화도사진 계화도주민 추귀례씨가 10년전 새만금 방조제 반대운동을 할 때의 사진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게 보여주고 있다.
ⓒ 김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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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올 줄 미리 알았던 것일까? 밤늦게까지 새만금 기록을 보고 있었다니,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사람 간에는 통하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추씨는 방에서 사진과 신문지를 한가득 꺼내왔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반대 투쟁할 때 찍힌 사진이었다. 여성어민들이 경찰에 끌려가면서 절규하는 모습, 삼보일배하는 사진 등 10여 년 전 신문에 크게 실렸던 사진들이다.

"이게 우리 막내와 내가 삼보일배했던 사진이에요. 그때 막내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는데 나와 함께 새만금 갯벌을 살려달라며 힘든 삼보일배를 했어요. 올해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해요. 세월이 많이 지났네요."

이제는 사라진 갯벌과 생명들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기 전 계화도 어민들이 조개를 잡는 사진
▲ 그레질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기 전 계화도 어민들이 조개를 잡는 사진
ⓒ 김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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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진 중에서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갯벌에서 조개를 잡을 때 쓰는 그레를 들고 있는 추귀례씨의 사진이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갯벌도 사라지고 조개도 사라져 그레질하는 모습은 이제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방조제가 막히면서 제일 먼저 피해를 본 사람들은 맨손 어업을 하던 여성어민들이었다. 할머니도 호미 하나만 가지고 갯벌에 나가 조개를 잡으면 하루에 5만 원은 벌었고 잘 잡으면 10만 원도 벌 수 있어서 팍팍한 살림살이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제는 '황금알을 낳는 황금 갯벌'이 사라져서 안타깝다고 한다. 돈을 떠나서, 갯벌에 살던 무수한 생명들이 소리 없이 죽어갔다는게 미안했다고 한다.

추귀례씨가 우리에게 보여준 여러 사진과 현수막 신문기사는 나중에 새만금 어민 기념관이 생기면 전시할 귀중한 자료이니 꼭 간직해달라고 부탁했다.

계화도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계화도 시인'으로 알려진 염정우씨였다. 그는 십 년 전 새만금방조제 건설 반대운동을 할 때는 건강했지만 점차 몸이 안 좋아져서 5년 전부터는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고 한다.

염씨는 몸이 아파 오십대 초반의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병원에서도 아픈 원인을 모른다고 한다. 새만금이 막힌 후 얻은 마음의 병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남들보다 감수성이 여린 시인의 마음에 새만금 뭇생명들의 원혼이 들어가 시인을 아프게 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새만금 시인 염정우씨가 건강하던 시기의 모습.
▲ 염정우 새만금 시인 염정우씨가 건강하던 시기의 모습.
ⓒ 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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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이 아파요. 어떨 때는 밤에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아직은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서 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낮에는 집에 있다가 밤에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 혼자 걷는 운동을 합니다."

오랜만에 옛 동지들을 만나서인지 염씨는 그의 건강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었다. 몸살림운동으로 건강을 찾았고 요즘은 '우주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마루에 놓인 천체관측용 망원경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염씨는 1년 전 우연한 기회에 밤하늘의 별을 보게 되었고 '그 아름다움에 빠져 쌍안경과 망원경을 사서 우주의 깊은 곳을 관찰하느라고 밤을 샌다'고 말했다. 우주에 대한 염씨의 공부는 쉽게 불었다가 쉽게 사라지는 일시적인 관심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지구도 우주의 작은 구성원이며 지구에 사는 생물도 우주의 일원이다. 사람이 곧 우주이고 망둥이 한 마리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 갯벌이 아프니 시인도 아픈 것이고 시인은 혼자서 슬퍼하는 대신 밤하늘에서 생명을 찾으며 계속 사랑할 대상을 찾았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반대 운동의 중심에 섰던 계화도 사람들은 아직 많이 아프다. 가슴속에는 아물지 않을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육지로 변한 계화도 갯벌
▲ 계화갯벌 육지로 변한 계화도 갯벌
ⓒ 김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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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제가 막히기 전 갯벌 생명들이 만든 흔적
▲ 생명 방조제가 막히기 전 갯벌 생명들이 만든 흔적
ⓒ 김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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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를 나오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진 이제는 육지가 된 갯벌을 바라보았다. 습지가 육지로 바뀌면서 키가 큰 갈대가 군락을 이루면서 자라 있었다. 물막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며 우주의 기운을 받았던 갯벌은 이제 우주를 느끼지 못한다.

바닷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가쁜 숨을 내쉬며 죽어갔을 칠게 백합 망둥이 등 많은 갯벌 생물들과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난 후 갯벌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돌아가신 여성어민과 자살한 어민들은 이제 계화도 하늘의 별이 되어 밝게 빛나는 듯하다.

2016년 4월 21일은 새만금 방조제 건설을 위한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10년 동안 새만금갯벌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엄청난 수의 갯벌 생물들이 죽었고 갯벌 생물을 먹고 사는 도요새를 비롯한 조류들의 수가 급감하였다. 또한 방조제가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막아 물은 정체되었고 방조제 안의 수질이 6급수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 십 년은 방조제가 막히면 환경재앙이 온다는 말이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지난 십 년은 새만금갯벌에 의지하고 살던 사람들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방조제 건설 이후 어획량이 급감하여 많은 어민들이 어업을 포기하고 도시에서 생계비를 벌어야 했다.

지난 십 년동안 새만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어 지금은 새만금 문제를 다루는 언론기사가 가뭄에 콩 나듯이 적고 환경운동 단체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아 잊힌 존재가 되었다. 새만금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차원에서 새만금의 변화를 기록하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지난 십년동안에도 꾸준히 새만금 지역을 찾았다.

물막이 공사 후 십 년이 되는 해인 2016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문화팀은 새만금 반대운동을 펼쳤던 어민들을 매달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태그:#새만금, #갯벌,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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