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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박물관 내부
 자동차 박물관 내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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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얽매이는 걸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한 번 꽂히는 일이면 성에 찰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린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겁내지 않으며 무언가 만드는, 창조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바로 장태호(48)씨다.

그의 직업을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26일 중구 차이나타운에 있는 카페 '루'를 찾았다. 그곳에 그의 애장품인 자동차 모형(다이캐스트 레플리카)이 전시돼있다고 해서다. 자칭 문화적 아나키스트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초등학생 때부터 자동차에 관심

 장태호 조소가 겸 자동차 모형 수집가
 장태호 조소가 겸 자동차 모형 수집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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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모형을 모은 지는 10년 됐어요. 그때는 그렇게 비싸지 않아 보통 가격이 15만~20만 원대였는데 지금은 두세 배 올라 30만 원도 넘죠.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해 자동차 모형을 많이 조립했어요. 그때부터 또래에 비해 차를 가장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자동차 조립 모형을 수집했던 그는 성인이 돼 자동차 모형을 모으는 데 꽂혔다.

어릴 때의 그것과는 다르게 재질이 철이고 조립이 아닌 완성품에 도장(塗裝)까지 돼 있어, 나중에 자동차박물관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박물관을 차렸다.

카페 '루'가 있는 건물 1~3층에는 중국음식점이 있다. 그 위 4~5층이 카페 '루'이며 자동차박물관은 5층에 있다. 모형 150여 점이 전시된 박물관, 관람은 무료다.

"카페 사장이 후배인데 자동차 모형을 전시하게 자리를 마련해줬어요. 박물관 구경을 왔다가 음료를 사 먹기도 하니까 공생하는 거죠. 카페는 2015년 7월에 개업했고, 박물관은 한 달 전에 오픈했어요.

여기에 박물관을 만들기 전에는 백화점에서 요청이 있어서 그곳에서 전시회를 하기도 했고, 2014년 10월에는 인천개항박물관에서 '자동차 역사'전(展)을 열기도 했습니다. 60일 정도 전시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기존 박물관은 딱딱한 분위기가 없지 않았는데 자동차 전시는 편하게 볼 수 있어 남녀노소 대부분 재밌고 신기해했죠."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장씨의 누나가 운영하는 신포동 카페에는 카페 '루'보다 세 배 많은 자동차 모형이 전시돼있다. 장기적으로는 신포동에 있는 것을 가져와 이곳과 합칠 예정이란다.

몇 년전 한국지엠 쉐보레 홍보팀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동차 메카인 인천을 알리는 의미를 담아 홍보관을 만들려고 하는데 장씨가 갖고 있는 모든 모형을 넘기라는 것. 그는 제안을 거절했다.

"자동차 하나하나를 보면 그걸 샀을 때의 추억이 떠올라서 함부로 분양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는 아무리 비싼 가격을 주더라도 싫었어요.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지만요(웃음). 지금은 그만 모으고 싶어요. 대신 작품 활동에 몰입하고 싶습니다."

민중의 역동성과 닮은 황소
   
장씨가 만든 황소 작품
 장씨가 만든 황소 작품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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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는 요즘 황소에 꽂혔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사회에서는 공연기획사를 운영했어요. 지방자치단체 행사를 많이 하고 전시 기획도 꽤 했는데, 한번은 명망 있는 조각가 33명의 작품으로 특별전을 했습니다.

작품 중 마음에 드는 표범이 있어 구입하려고 했는데 500만 원을 지불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차라리 직접 만들자고 결심해 만든 후 후배한테 보여줬더니 황소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 장씨는 황소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민초와 닮은 것 같았다. 선하게 생긴 큰 눈도 그렇고 투우사가 빨간 천으로 속이면 당하는 모습도 서민이 권력자에게 속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았다. 주인에게 충성하면서 모든 걸 주고 떠나는 모습도 그랬다.

"하지만 황소는 힘이 세고 사나워요. 힘이 넘쳐 미쳐서 날뛰는 게 황소죠. 난 정상적이고 연약한 소는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지인이 영화 <워낭소리>에 나오는 소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싫다고 했어요.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비실비실한 소는 내 취향이 아니에요. 저항할 수 있는 힘 있는 소를 만들어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어서 작품활동을 하는 겁니다. 민중의 소박한 눈, 그 이면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장씨는 자신을 '컬쳐 아나키스트'라 불렀다. 해야 하는 책임감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남의 눈치 안 보며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공부했던 장씨는 체질상 조밀한 디자인 공부가 맞지 않았다. 어릴 때는 자신의 적성을 모른 상태에서 전공을 선택했지만 자신의 터프한 성격과는 조소가 맞다고 했다. 그렇다고 따로 조소를 전공하지도 배우지도 않았다.

"공부에 취미가 없어 편입은 생각도 안 했어요. 이론보다는 실제가 중요한 것 같아 다른 사람한테 배울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태도 때문에 선배들한테 욕도 많이 먹고, 인천 미술계에서 왕따였죠.

21세기에 아직도 학연과 지연을 거들먹거리는 사회가 미개하다고 봅니다. 시시껄렁한 전시회에 꼽사리 껴서 출품하는 걸 원하지도 않아요. 그런 건 의미 없다고 봐요. 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와 교감하면 됩니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 내부 전경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 내부 전경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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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는 자동차 모형 대부분을 미국의 '이베이'(ebay) 사이트에서 구입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고, 그래서 시장이 협소하다.

"그나마 젊은 층이 자동차 모형을 구입하는데 요즘 생산하는 아우디나 폭스바겐 정도밖에 몰라요. 미국은 차의 종주국입니다. 차에 대한 애착이 많아 소모품이라 생각하지 않고 가족처럼 여겨요.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게 얼마 되지 않아요. 그래서 차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기도 했죠. 제가 차를 워낙 좋아해서 차와 관련한 원어(영어) 잡지도 많이 읽습니다."

지난해 12월 중순께, SBS 프로듀서가 장씨를 찾아왔다. 인터넷 블로그를 보고 연락이 왔는데, 나름 자동차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던 프로듀서는 자동차에 '잡학다식'한 장씨한테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SBS는 해외에 있는 테마파크처럼 장기적으로 자동차 테마파크를 만들 계획인데, 이것저것 인터뷰를 하다 보니 금세 친해졌단다.

장씨는 카페 '클래식 카를 타는 모임' 회원이기도 하다. 회원들이 갖고 있는 차는 1960~70년대 생산된 외국차로 엔진이나 외형을 다 복원한 차들인데, 가격이 새 차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카페 '루' 5층에 자동차 박물관이 있다.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카페 '루' 5층에 자동차 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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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에서는 클래식 카 모터쇼를 전시와 공연을 협력해 하기도 해요. 인천에서 제가 공무원 몇 명한테 제안해봤는데 여러 가지를 따져서 그만뒀습니다. 테마파크 얘기도 아이템 공유 차원에서 만난 거라 당장 진행할 건 없고요. 전 오로지 황소 생각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장씨는 노후를 위해서도 황소 창작에 매진한다고 했다. 작품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고, 황소 작품을 팔아 먹고 살 정도만 하면 된단다.

"사회·정치·경제·문화·교육 뭐하나 정상적인 게 없는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는 소를 만들고 싶어요. 내년(2016년) 10월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관람객이 내 작품 앞에서 1분이라도 서서 생각할 수 있다면, 성공했다고 봐요. 1분이라도 서 있을 수 있는 작품 몇 개 만드는 게 계획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걸 꿈꿨던 장씨는 에너지가 넘치며 창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꿈을 이룬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지만 너무 다르게 사는 것 같아요(웃음). 꿈을 이룬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지루한 건 답답해서 못 참는다는 그가 다음엔 어디에 꽂힐까,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장태호, #자동차 박물관, #차이나타운, #카페 루,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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