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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늦게 출발한다는 것은 남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새해 1월 1일 자로 교육행정직 신규 발령을 받은 늦깎이 공무원, 조은미(35)씨.

왜소증을 갖고 태어나 출생부터 남달랐던 조씨는 지체장애 2급이다. 부모 모두 장애를 갖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서 태어난 은미씨, 그런데 그는 늘 웃는다. 인생을 계속 새로 쓰면서도 언제나 배우고 도전한다. 심지어 그의 별명은 '마시마로'(아기 얼굴을 한 토끼 형상의 캐릭터)다. 웃는 모습이 닮았다고 해서 동료들이 붙여줬다고 한다.

<무한정보신문>
 <무한정보신문>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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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힘들다'고 '어쩔 수 없다'고 '이게 내 한계'라고 툴툴거렸던 시간들이 부끄러워진다.

서른다섯 해, 은미씨의 삶을 관통해온 키워드는 '긍정' 그리고 '열정'이다.

역경은 자극제가 되고

충남 예산군 대술면 시산리에서 태어나 대술초, 대술중을 졸업한 뒤 당연히 장애인특수학교에 가는 줄 알았던 은미씨에게 당시 담임이던 이희주 교사는 "예산여고나 예산여상(현 예산예화여고)에 가라"고 권했다. 은미씨는 예산여상 3년 장학생으로 학교를 마쳤다.

"그때 선택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장애인이라고 스스로를 한계지우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선생님을 뵙고 싶은데, 찾을 방법이 없네요."

하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며 남들 따는 자격증은 다 땄는데도, 취업이 여의치 않았다. 1차 서류는 통과되는데 2차 면접에서 자꾸 탈락했다. 그 때문에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생산직에 취업했다.

"김포에 있는 핸드폰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500명 정도의 큰 규모였어요.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일도 할만 했지만, 제가 취직을 하는 바람에 부모님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위기에 처하셨죠. 두 분 모두 편찮으셔서 제 월급으로 두 집 생활비에 병원비까지는 턱도 없었거든요."

은미씨는 어쩔 수 없이 정규직원이 아닌 용역회사 인력으로 자청해야 했다. 하지만 역경은 늘 자극제가 됐다. 이 일을 겪으며 은미씨는 대학진학의 꿈을 가지게 됐다.

스물다섯되던 해, 객지 생활 6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가 혼자되셨기 때문이다. 주유소 경리로 1년 정도 일을 한 은미씨는 큰 수술을 받게 되면서 고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일을 놓았다.

그루병 때문에 두 다리의 뼈를 절단해 교정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느라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은미씨는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학비는 장애인기능경기 충남대회와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받은 상금으로 충당했다.

재활을 마친 뒤 2011년 입사한 예산전자공고 행정실 근무는 은미씨의 오늘을 있게 한 시작이다. 2015년 8월, 은미씨는 3수 끝에 교육행정직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낮엔 일하고 밤과 휴일엔 공부하는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갑상선저하증까지 찾아왔다.

"사람들은 무기계약직도 괜찮은데 뭐하러 무리를 하냐고 말렸지만, 같은 일을 하면서도 처우에서 너무 차이가 나고, 또 정식발령을 받고 싶어 포기할 수 없었어요."

은미씨는 1월 4일, 내포중학교로 첫 출근을 한다.

긍정의 원천은 사랑

신부 조은미, 신랑 강창일씨의 결혼식 장면. 웃는 모습이 닮았다. ⓒ
 신부 조은미, 신랑 강창일씨의 결혼식 장면. 웃는 모습이 닮았다. ⓒ
ⓒ <무한정보신문>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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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를 이토록 초긍정에 단단한 열정 덩어리로 만들었을까?

"어릴 때 어른들이 지나가시며 하시던 말이 생각나요. '키가 안 커서 어쩌냐' '나중에 뭐먹고 사냐' 그런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던 것 같아요. '생각이라도 밝게 해야지, 성격까지 어두우면 더 힘들겠다.'"

그리고, 한 없는 사랑으로 은미씨를 품어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다.

"저희 아버지는 언어장애가 있으셨는데, 술을 좋아하셔서 일찍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저를 너무 예뻐하셨죠. 아마 살아계셨다면 저 공무원 됐다고 춤을 추셨을 거예요. 엄마는 저처럼 왜소증이신데, 건강이 좋지 않으시고 한때는 우울증으로 힘드셨지만, 언제나 저를 믿어주는 응원군이예요."

은미씨에게는, 다리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간병할 사람이 없어 망설이고 있을 때 회사까지 그만두고 내려와 3개월이나 곁을 지키며 손발이 돼준 친구 김영은씨도 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사려가 깊으냐면요. 제가 수술을 받아야 할지 고민하니까, '나 마침 회사 다니기 싫어졌는데, 내가 갈게'라더군요. 제가 부담을 느낄까봐 그렇게 말한 거죠."

은미씨는 2015년을 생애 최고의 해로 꼽는다.

"양띠 해에 양띠사람 만나 결혼하고, 아기도 생기고, 공무원시험도 합격하고, 엄마 C형 간염 치료도 호전됐거든요."

그는 장애인볼링동호회에서 만난 강창일(예산군곰두리봉사회 회장)씨와 4년 연애 끝에 지난해 결혼을 했다. 그리고 오는 5월이면 아기엄마가 된다. 

"사실 유전 때문에 2세는 고민이었는데, 생각지 않게 찾아온 생명이 너무 소중해 기쁘게 기다리고 있어요. 태교로 미싱을 배우는데, 얼마 전에는 배냇저고리도 만들었답니다."

아기의 태명은 '복 많이 받으라'는 의미의 '복만이'라고 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꾸는 꿈

아무리 그렇대도 살아오면서 슬럼프가 없었을까?

"힘들땐 그런 생각을 해요.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일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라고요."

말로만 들어도 참 숨차게 살아온 은미씨는 취미도 많다. 또 했다 하면 너무 열심이다. 볼링, 탁구, 사진찍기, 여행, 미싱, 아무추어 무선(HAM), 영화보기…. 

"전 뭔가를 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가만히 있으면 심란하니까."

그리고 아직도 이루고픈 꿈이 있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서 2급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게 된 그는 1급사회복지사에 도전할 생각이다. 정년을 하고 나면 장애인시설을 만들어서 "나이 먹고 외로울 때 서로 힘이 되어 같이 살고 싶다"라고 한다.

2012년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웹마스터 부문에서 충남 1등만으로 끝난 게 아쉽다는 은미씨는 전국대회에도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좀 망설이던 그가 말한다.

"공직에 들어갔으니까 5급까지 승진하고 싶어요. 여자는 승진 꿈꾸면 안되나요?"

왜 안되겠는가. 은미씨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영화배우 제임스 딘의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상투적인 질문을 더졌다. "은미씨처럼 역경에 처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도 갈길이 멀긴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노력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열정, #긍정, #장애, #조은미,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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