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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과 경찰 자진출두 등을 두고 '뒷말'이 많은 가운데, 우희종 서울대 교수에 이어 이광호 도서출판 레디앙 대표가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이광호 대표는 "노동법 개악 투쟁의 지지 여론을 넓혀 가야 하는 때 불교, 조계종, 도법 스님이 등장하는 불필요한 논쟁구도를 만드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 반론을 포함한 다양한 논쟁글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조계종, 조계사, 도법 스님을 비판하고 비아냥대는 소리가 적지 않다.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은 원효의 화쟁론을 빌려 ▲ 노동과 자본 간 '숙명적' 투쟁에 화쟁·화해를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강자인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섰으며 ▲ 평화적인 집회, 시위 등을 강조함으로써, 의도와 무관하게,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시켰고, 결과적으로 공권력의 폭력성은 은폐한 것이며 ▲ 조계종이 민주노총 위원장 한 명을 보호하지 못하고 경찰에 넘겨준 것도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선 것이라는 게 비판의 주요 내용인 것 같다. (관련기사: 한상균 넘겨준 도법 스님, 화쟁 실천 맞습니까)

나는 그런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비판은 부적절하다.

지금 모든 역량은 '살인 노동법'을 막는 데 모아져야

지난10일 한상균 위원장이 오전 자진출두를 위해 도법스님과 함께 조계사 관음전에서 나오는 모습.
▲ 도법스님과 함께 관음전 나오는 한상균 위원장 지난10일 한상균 위원장이 오전 자진출두를 위해 도법스님과 함께 조계사 관음전에서 나오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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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비판의 문제점을 몇 가지 측면에서 제기하려 한다. 먼저 내용을 떠나서 시기와 국면을 볼 때, 이런 비판은 현재 진행되는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는 불필요한 전선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따질 것 없이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비정규직 기간 제한을 4년으로 늘림으로써 생존을 볼모로 평생 비정규직을 강요하고, 파견 노동자를 일반화하는 '살인 노동법'의 심각한 내용은, 그 동안 '불법, 평화' 시위 프레임과 '한상균 위원장 거취' 프레임에 갇혀서 대중적 의제로 부각되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힘에 따른 논의 지형으로 볼 때 노동자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짜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산층까지 포함되는 다수 국민에게 불안한 일상을 강요하는 이 법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함께 싸우기 위한 지지 여론을 넓혀 가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런 판국에 불교, 조계종, 도법 스님이 등장하는 불필요한 논쟁 구도를 만드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현재의 모든 역량들은 아버지도, 아들·딸도, 일하는 모든 가족을 예외 없이 상시적 해고 위협에 노출시키는 '살인 노동법'을 막는 데 모아져야 한다. 법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모르면 확인하고, 알면 작은 단위든, 큰 단위든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일부 신도들에게 수모를 당했으면서도, 절에서 나올 때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부처님의 자비의 품에 2천만 노동자의 처지를 의탁한 지 25일. 고통과 불편을 감내해 주신 조계종과 조계사 스님, 신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2천만 노동자들의 생존이 걸린 노동 개악을 막기 위해 활동을 함께 하겠다 하신 조계종과 조계사에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최대의 보수 집단 가운데 한 곳이 조계종이라고 한다. 조계사 안에서 한상균 위원장과 머리를 맞대고 몇 날을 이야기한 사람들이 있다. 난 그 내용이 뭔지는 모르고, 낱낱이 다 알려지기 힘들 거라고 본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노동 개악을 막기 위해 활동을 함께' 하겠다는 조계종에 감사를 표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한국 불교계가, 조계종이, 민주노총 편에 서서 함께 투쟁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는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야당도 망가진 상황에서 노동법 개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박근혜 정권에게 대화와 소통을 통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불교계에서 나오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할 것도 없고, 이를 마다할 필요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 25일 동안 조계사에 있도록 해준(일부 신도들의 일탈 행위는 있었지만) 조계사에 감사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전횡을 막는 데 함께해 줄 것을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 국면으로 보나, 실제로 보나 적절하다. 한상균 위원장의 글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

한상균 위원장이 경찰에 끌려 나왔더라면...

지난 10일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하는 모습.
▲ 조계사 나온 한상균 위원장 지난 10일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하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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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노동법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전쟁'의 와중에도 사태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편이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여기서 말하는 승리는 적의 섬멸이 아니다). 노동법 개정 투쟁이 선악의 문제는 아니지만, 수천만 월급쟁이들, 달리 말하면 압도적 다수 국민들을 노예에 가깝게 만드는 법인 것은 맞다. 이를 막기 위해 다수 국민의 편에 서서 싸우는 것은, 그게 설령 악일지라도 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식인과 평론가들의 지식과 지혜가 종교 논쟁이나, 노동과 자본은 본래 적대적이라는 교과서 이론을 새삼 강조하는 것에 쓰이지 않고, 다수 국민인 월급쟁이들의 요구를 알리고, 우리 편을 조금이라도 많이 모을 수 있는 부분으로 모아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조계사가 민주노총 위원장을 경찰에게 내줬다는 등 불교계에 대한 몇몇 비판의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그런 비판에는 근거가 있다. 조계사 쪽에서 발표한 공식 입장을 보면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문구도 있다. 하지만 사태의 전체 맥락을 보는 노력이, 문장 하나를 놓고 비판하는 태도보다 더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이번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 전략을 짜는 어느 시점부터 위원장 조계사 피신 방침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비상한 상황에서 취한 긴급 행동이다. 도법 스님이 한 위원장과 여러 차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한쪽은 "너 나가라", 다른 쪽은 "나 못 나간다",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일단 실제 상황 자체가 그렇지 않았다.

조계종 측은 공식적으로 경찰의 진입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신도의 일탈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런 신도들과는 정반대 의견으로 대응했던 재가 불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일탈 행위를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런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아서 자신 있게 주장할 수는 없지만, 화쟁위 쪽과 민주노총은 나름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함께 고민을 나누었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고려됐을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는, 민주노총과 화쟁위 의사와는 무관한, 임박한 경찰력 투입이었을 것이다.

양자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견도 있었을 것이다. 도법 스님의 어떤 표현은 한 위원장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고, 한 위원장의 주장이 '진영 논리'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스님은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민주노총의 주요 의사 결정 기구의 논의 결과와 그것을 대표하는 한 위원장, 조계종 종단의 의견과 그것을 가지고 '화쟁'해야 할 책임을 진 도법 스님이, 개인적인 판단을 넘어서, 두루 합의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본다. 

민주노총 처지에서 봐도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이라는 비상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실제로 논쟁도 있었다. 경찰한테 끌려 나오는 모습을 보이자는 의견도, 위원장 스스로 출두하면서 입장을 밝히자는 의견도 있었을 것이다.

이 쟁점을 주장하는 각자에게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나는 전자로 결정이 날까 봐 우려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그런 의견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그럴 경우 민주노총은 지지 여론보다는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노동법 싸움의 지형에도 불리한 영향을 줄 것이다. 또한 불교계(특히 신자들)와 민주노총의 '인연'도 그동안 노력한 것에 반해 안 좋은 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한 위원장의 기자회견과 자진 출두로 마무리됐다. 물론 이 같은 선택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한 쪽은 안 나간다고 버티는데 다른 쪽은 나가라고 쫓아냈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표피적이다.

민주노총, 정치사회적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어야

지난 11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노동개악 법안 저지-폭력정권-공안탄압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노동개악 법안 저지-폭력정권-공안탄압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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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계종이 평화적 집회 보장을 위한 노력 이외에 민주노총에서 요청한 ▲ 노동자 대표와 정부의 대화 ▲ 정부의 노동법 개정 중단 등을 위해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우선 이는 사실과 다르다. 화쟁위는 다양한 채널을 가동하며 이를 위해 노력했다. 도법 스님과 한 위원장의 대화 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정웅기 화쟁위 대변인은 정부와 사용자 측을 제외한 야권과 양 노총, 기독교 관련 단체와 민변 그리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졌으며, 이 같은 노력의 결과가 앞으로 구체화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장이 마련되는 것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공론의 장이 확대됨으로써 노동법의 잘못된 개정을 막는 데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노동법 연내 개정과 관련해 입법의 한 주체인 야권으로부터 구체적 내용과 공식적 형식을 통해 연내 개정 불가 방침을 받아냈으며, 이에 한 위원장은 화쟁위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실 위 두 가지 사안은 애당초 민주노총에서 불교계(다른 종교계도 마찬가지겠지만)에 요청할 성질의 내용이 아니다. 총파업을 한다 해도 현 정권은 노동법 개정을 쉽게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어떤 사회적 주체와도, 심지어 여당과도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됐다. 명실상부한 총파업과 양대 노총의 공동전선, 국민들의 지지 여론 등이 결합돼야 막아 낼 수 있는 과제다. 중재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단을 요구한 것은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교계의 노력으로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조건이다. 

마지막으로 노-자 간 모순은 화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힘 있는 자본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비판은 논쟁적이며, 경청할 만한 지점이 있다. 이는 "원효의 화쟁론이 적대적 모순 관계에도 적용이 될 것인가?"라는 복잡한 논점과 맞물려 있다. 논쟁적인 주제다.

이런 비판에는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프란치스코 교황)는 언급이 인용된다. 나 역시 불교계나 화쟁위가 약자 편에 서서 더 분명한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있다. 이런 아쉬움이 비판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화쟁 사상과 진보적 세계관이 상호 충돌해서, 서로를 논파하고 승리를 거둬야 하는 싸우는 관계가 아니라, 경청과 이해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본다. 이번 사태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조건 속에서 전개되는 민주노총의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 처지에서 보면 노동법 개정의 역사는 개선과 개악이 교차됐지만, IMF 이후부터는 줄곧 후퇴의 역사였다. 노동자가 기존 법이라도 지키기 위해 '보수적'이 됐고, 권력과 자본이 자신의 처지에서 개선을 위해 '전투적'이 돼 버렸다.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라는 노래 가사는 현실에서는 반대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의 노동법 개정 투쟁은 한두 차례 집회로, 조계사 지휘부 형태 같은 비상한 대응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내부 단결과 외부의 지지 여론 모두가 중요한 투쟁 자산이다. 그나마 있던 야당도 엉망이 됐고, 진보정당은 아직 약하다.

16일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 선언식 총파업을 넘어 내실 있는 장기전도 함께 준비해 주기를 바란다.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96~97년 한국 노동자들의 명실상부한 총파업도 김영삼 정권의 새벽 날치기 통과라는 극적인 형식이 분노를 폭발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산별 노조나 지역에서 사전에 많은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 사회적 보루가 매우 중요해졌다. 민주노총이 그 보루를 자임하고 나서야 한다. 잠재력도 있다. 성숙하고 진취적인 민주노총의 앞날을 기대한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이광호, #도법 스님, #한상균,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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