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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 연말연시 분위기가 나지 않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으나, 각자의 기분이나 사회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2015년은 2016년으로 바뀌니, 정확한 우주의 운행은 내 마음과 달리 오차가 없다.

더불어 올 한 해 내 몸에 차곡차곡 쌓인 시간도 1년이란 단위로 잘려 나이 위에 턱 붙으니, 역시 내 생각과 달리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아뿔싸,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고 다시 한 살을 먹는다. 방심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급작스럽다.

누군가는 나이 먹는 일이 익숙해져 별다른 감흥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덤덤해졌다는 데서 새삼 세월을 느끼게 되고, 우리는 결국 시간에 묶인 존재라는 걸 깨닫고 만다. (최대한 좋게 생각하면) 어떻게 이맘때를,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쌓을 수 있을지, 이맘때가 아니면 하기 힘든 고민을 해볼 시간이 아닐까 싶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일까?

어른이 된다는 건_요시모토 바나나의 즐거운 어른 탐구 /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 민음사
 어른이 된다는 건_요시모토 바나나의 즐거운 어른 탐구 /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 민음사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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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는 <어른이 된다는 건>에서 여덟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하며 어른이 된다는 게 어떤 일인지 탐구한다(관련기사 : [요시모토 바나나 인터뷰]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 있다면, 어른"). 그는 나이 먹는 일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농담하지 말라고 할 생각이라고 한다.

어린아이는 아는 범위가 좁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싫어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게 되므로 넘치는 젊음의 에너지와 내가 확보한 자유로움을 바꾸는 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럼에도 젊은 때를 떠올리면 넘치는 에너지로 할 수 있는 것을,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던 것을 더 많이 해둘 걸 하는 아쉬움을 피할 수 없다. 이럴 때는 시간이 흐르는 게 다행이다. 나이가 더 들어서 지금 젊을 때를 생각하듯 돌아볼 오늘이기에,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걸 한껏 하는 게 최선이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미래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에게 보내는 가장 소중한 메시지"이고, "그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일까?"에 대한 저자의 답이다.

이렇듯 여덟 개의 질문을 거쳐 다다른 이 책의 결론은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당신 자신이 되세요"다. 물론 당신 자신을 아는 일이 어른이 되는 일의 시작이니, 이를 건너뛰어 어른이 될 방법은 없다.

사는 건 사는 대로, 죽는 건 죽는 대로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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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이라 부르기엔 왠지 어색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할머니 사노 요코는 어른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을 유쾌하게 발산하며 웃음과 깨달음을 함께 전한다. 100만 번이나 죽고 100만 번이나 살았던 얼룩 고양이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로 잘 알려진 그는, 고양이와는 달리 70년이 조금 넘는 인생을 한 번 살았다.

마지막 몇 년을 암과 함께 보냈으면서도 사그라드는 삶이 아니라 늘 피어오르는 삶을 보냈고, 그 이야기를 <사는 게 뭐라고>와 <죽는 게 뭐라고> 두 권의 책으로 남겼다. 올해 한국에 차례로 소개된 두 책은, 그의 말마따나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맞아 마땅한 생활의 롤모델을 찾을 수 없는, 그리하여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젊었든 늙었든 늙어가는 과정에 올라선 많은 어른에게 귀감이 되었다.

어른은 깨닫는 존재이지만, 나아가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누구나 처음 어른이 된다. "늙으면 다들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그럼에도 자신의 방식을 찾아야만 한다.

"자신의 시대에 뒤처진 노인들은 모두 이런 식이겠지. 이미 늙었으면서도 젊은이나 요즘 시대를 필사적으로 따라잡으려드는 노인은 볼썽사나워서 싫다." 조금 알겠다 싶어도 여전히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는 살아있다."

앞서 요시모토 바나나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니 사노 요코의 말도 기억이 난다. "이제 와 네다섯 살로 되돌아가서 한 번 더 살라고 해도 끔찍하다. 그것만큼은 참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지금 정도에만 머무르면 좋겠다는 치사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지만, 이런 어른들을 만나니 어쩐지 나도 멋지게 한 살 더 먹고, 그만큼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포부도 생긴다.

역시 새해란 이래서 좋은 것 아니겠는가. 되든 안 되든 산다는 것, 더 나은 삶을 고민하고 꿈꿀 수 있다는 것 말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태근님은 알라딘 인문 MD입니다.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 요시모토 바나나의 즐거운 어른 탐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2015)


태그:#사나요코, #요시토바나나, #어른이 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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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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