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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선거 개입, 중립의 의무 위반(?). 맞다. 여당 대표, 원내대표를 불러 놓고 내년 총선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위법 일수도, 충분히 오해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만한 일에 시비 걸고 싶지 않다. 선거의 주무장관이 여당 연찬회에서 총선 필승을 외치고, 경제 부총리가 경제 성장을 총선 일정과 연계시키겠다는 발언에도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며 면죄부를 준 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닌가? 대통령의 발언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과 같은 잣대로 요구하는 것, 세상물정 모른다는 놀림만 돌아올 뿐이다.

차라리 대통령에서부터 가장 말단의 공무원까지 중립의 의무를 강요하지 않고, 정치 활동을 보장하라는 것이 더 현실적인 요구일 수 있다. 권력을 이용하여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는 중립 의무의 규정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얼마든지 있다. 교사들도 정당에 가입하고, 공무원들도 정치적 입장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 대통령과 장차관의 중립 위반을 성토하는 것보다 진전된 방안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 중립을 위반했다고 해도 현실에서는 법 밖의 일이다.

대통령 발언이 중립 의무 위반? 법 밖의 일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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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대통령이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불러놓고 한 발언에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경제를 살린다고 하지만, 실상은 선거를 위해 경제를 볼모로 잡겠다는 욕심이 먼저라는 것이다. 노동 관련법을 통과시켜 수출과 내수, 기업과 서민 모두가 살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가 밀어 붙이고 있는 경제, 노동 관련법은 내수보다는 수출에, 서민 경제보다는 기업 경제에 중심이 놓여 있다.

정부에서는 경제 활성화법 노동개혁법이라고 하지만, 이는 '활성화'와 '개혁'이라는 느낌 좋은 단어를 덧칠한 것에 불과하다.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쓰기에 바쁜 언론이 아니었다면, 경제 활성화법, 노동개혁법은 아무리 후한 점수를 줘도 그냥 정부에서 밀어 붙이는 경제관련법, 노동관련법 정도가 맞는 표현이다. 노동악법, 재벌을 위한 경제악법이라는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지적도 전혀 근거 없는 소리도 아니다.

정부에서 국회통과를 압박해온 대부분의 경제 관련 법안은 통과되었다. 지난달 10일 대통령이 '사정하는 것도 메아리뿐 인 것 같아 통탄스럽다.' '국회 방치로 법안 자동폐기는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 등 격한 어조의 국무회의 분위기가 전해진 후 여야는 쫓기듯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학교앞호텔법 등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이제 정부에서 추진해왔던 30여개의 법안 중 노동관계 5개 법안이 남았을 뿐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그동안 노동과 경제 관련 법안을 추진하면서 이렇다 할 의견 수렴은 없었다. 7일, 대통령은 대한상의에서 500대 기업한테 의견을 물어 80% 가까운 기업들이 빠른 통과를 원하고 있다며 정기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를 다그쳤다.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인력 재배치는 노동자에게는 생존권의 문제이다. 정작 생존권이 걸린 노동자의 의견은 외면한 채 기업의 입장만을 듣고, 절대 다수가 원한다며 법안 통과를 재촉하는 대통령. 누구를 위한 노동 개혁이고, 경제 활성화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남아 있는 노동 관련 5개 법안은 대통령이나 정부에서 아무리 개혁 법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노동자가 보기에는 개악이고, 급하게 통과되어서는 안 될 법이다. 특히 비정규직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기간제법이나 파견 업종을 확대하는 파견법은 저렴한 노동, 손쉬운 해고를 조장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노동 관련법의 국회 통과를 압박하는 행위는 비정규직을 가난의 절벽으로 떠미는 매정함에 있다. 기업의 이익이 늘어난다고, 그러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궤변이다. 저렴한 노동으로 유지되는 경제. 유신의 유물일 뿐이다.  

'10월 가계대출 사상최대 12조 폭증, 완전 통제불능' 이 우습고도 서글픈 기사 제목은 서민 삶의 현주소다. 집값 띄우기를 위한 대출 권유로 1천 조를 훌쩍 넘긴 가계 대출이 이제는 빚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가 더해져 그야말로 '통제불능'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파고가 넘실대는데 대통령은 아직도 노동개혁 타령이다. 비정규직 2년 일자리를 4년으로 늘리고, 파견 업종을 늘린다 해서, 빚 갚고 두 다리 펼 수 있는 삶이 보장되는가?     

국회를 윽박지르는 대통령, 어이없다

최근 대통령의 국회 윽박지름은 기껏 선거법 논란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은 저렴한 노동으로 경제를 떠받치려는 나쁜 경제 인식이다. 노동력을 한낱 기업 성장의 불쏘시개 정도로 여기는 대통령의 잘못된 생각이 올바른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빚내기를 강요했던 대통령. 빚 갚을 어떤 방도도 마련해 주지 못하는 노동개혁법. 경제 활성화법은 노동악법이고 재벌만을 위한 경제 활성화법이다.

정기국회가 끝났다. 대통령의 신경질적인 국회 윽박지름은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청와대 출장소가 아니다. 노동 5법은 노동자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대통령의 다그침으로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 수는 없는 일이다. 여야가 싸운다고 손가락질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국회는 온갖 정책과 집단의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올바르게 싸우고, 그 싸움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대통령의 윽박지름에 굴복하는 것보다 국회다운 모습이다.

오랫동안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대통령. 그러나 국회의원으로서 성적은 좋지 못했다. 한해 동안 상임위 출석률 0%가 대부분이고, 기껏 한해 몇 번의 출석이 전부였다. 법안 발의도 꼴찌 수준이었다. 의원 시절, 불량 국회의원으로 있다가 대통령이 되어서 누구를 위한 국회냐며 몰아세우는 대통령의 모습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한다. 민의를 모으기도 전에 지시사항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국회 정문에 탱크를 세워놓던 예전 그 시절이 연상된다. 설마 그렇게 하겠냐마는 대통령의 연이은 국회 윽박지름은 도가 한참 넘었기에, 해서는 안 될 상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노동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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