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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대웅전 앞에는 천년 묵은 군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내소사 대웅전 앞에는 천년 묵은 군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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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남 창원의 여항산 성불사 신도들과 함께 3사 순례를 다녀왔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반가웠지만 빗길이라 조심스러웠다. 5대의 관광버스에 분승한 230여 명의 신도들과 첫 방문지인 개암사로 가는 버스 속에서 주지인 청강스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성불사 주지인 청강스님 모습
 성불사 주지인 청강스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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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왜 절에 갈까요? 절이 예뻐서? 아니면 기분 전환하러? 아닙니다. 옛날 할머니들이 절에 갈 때 '저 얼에 간다'고 했습니다. '저기 있는 '얼'에 간다는 뜻으로 '얼'은 '정신 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동자들이 큰 스님께 '부처님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옛 스님들은 죽비로 내리쳤습니다. 말하는 순간에 오염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는 사방에 계시고 절에는 정신 차리러 가는 것이지 부처상만 보러 가는 것은 아닙니다."

주지스님이 절로 들어가는 문에 관해 설명을 계속했다.

"속세의 망상을 버리고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기둥이 하나인 일주문을 들어서면 금강문이 나옵니다. 금강문에 서계신 금강역사 중 어떤 분은 입을 '아' 하고 벌리고 계시고 어떤 분은 '움' 하고 서 있는 분이 계십니다. '아'는 '시작'을, '우'는 '존속과 유지'를, '움'은 '소멸과 말살'을 의미합니다. 절에 가서 '시작'과 '유지', '소멸'을 아는 게 부처입니다. 불이문은 너와 내가 따로 없고, 부처와 중생이 따로 없으며, 생과 사가 따로 없음을 의미합니다."

어려웠지만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삶 속에서 맞이했던 여러 가지 복잡한 심사를 정리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던 찰나 차는 개암사에 도착했다. 빗속이라 단풍이 보잘 것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다. 개암사 입구의 차나무 밭에 노란 은행나무 잎이 떨어져 운치를 더했다.

개암사에서 부처를 생각하다

개암사 입구 모습. 차나무와 단풍이 아름다웠다
 개암사 입구 모습. 차나무와 단풍이 아름다웠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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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둘러보고 암자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에 모과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카메라를 든 채 단풍을 찍고 있는 여인의 모습과 산중턱까지 내려온 안개가 실루엣을 이뤄 예뻤다.

개암사에서 암자로 내려가는 길에서 본 단풍 모습
 개암사에서 암자로 내려가는 길에서 본 단풍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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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 사전 양해도 없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앞모습을 찍는데 제 뒷모습을 예쁘게 찍어주셨네요. 그 사진 보내주세요."


노랗게 떨어져 있는 은행나무 잎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역시 부처는 사방에 있었다. 대웅전에만 계신 것도 아니고 도량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비가 와서 단풍구경은 틀렸을 거라는 생각도, 허가 없이 자신의 뒷모습을 찍었다고 뺨이라도 때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틀렸다.

단풍나무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빗방울도 부처이고 예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사진을 보내달라"는 여인도 부처다. 내 생각이 지옥에 이르렀으면 내가 사는 곳이 지옥이고, 내 생각이 천당을 생각하고 있으면 내가 사는 곳이 천당이다.

아름다운 산세와 단풍으로 유명한 내소사로 가는 길에 젓갈로 유명한 곰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230여 명이 한꺼번에 점심을 먹느라 자리가 없다. "멀리서 오신 손님인데 밥상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며 자리로 안내하는 주최 측 사람들을 뿌리치고 종이상자 위에 식판을 놓고 점심을 먹었다. 종이상자 위면 어떻고, 식탁 위면 어떨까? 그냥 밥 한 끼 때우는데.

점심을 먹은 후 젓갈을 구경했다. 가게 앞에는 갈치 새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주인은 말린 갈치새끼를 '풀치'라고 부르며 "맛있다"고 설명해줬다. 젓갈을 파는 아주머니가 곰소 젓갈이 유명한 이유를 설명해줬다.

"곰소는 갯벌이 유명해요. 갯벌 속에는 미네랄이 풍부해  젓갈이 맛있어요. 여기서 칠산바다가 가깝고 조기도 유명하죠."

곰소 젓갈을 맛보는 일행들
 곰소 젓갈을 맛보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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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 젓갈 가게 앞에 걸린 갈치. 가게 주인은 말린 갈치를 '풀치'라고 부르며 맛있다고 한다
 곰소 젓갈 가게 앞에 걸린 갈치. 가게 주인은 말린 갈치를 '풀치'라고 부르며 맛있다고 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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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을 전혀 쓰지 않은 내소사 대웅보전, 문살이 아름다웠다

내소사 입구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로 가득하다. "단풍관광객이 전국에서 다 온 것 같다"고 말하는 옆자리 아주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여름이었으면 하늘을 가렸을 것 같은 전나무들이 쭉쭉 뻗어있었다.

내소사 대웅보전 모습. 조선후기에 건립한 내소사 대웅보전은 철물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지었다고 한다. 문살 문양이 아름다웠다
 내소사 대웅보전 모습. 조선후기에 건립한 내소사 대웅보전은 철물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지었다고 한다. 문살 문양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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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에서 참선했던 고승을 모신 부도
 내소사에서 참선했던 고승을 모신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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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을 바라보니 수령이 천년이나 되고 높이가 20m에 이르는 '군나무'가 일행을 환영한다. 명불허전이라더니 정말 아름답다. 보물 제291호인 내소사 대웅보전은 조선후기에 건립했다. 철물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지었다. 특히 천장의 화려한 장식과 연꽂과 국화꽃을 가득 수놓아 화사한 꽃반을 연상케하는 문살이 아름다웠다.

일행이 버스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주지인 청강스님께 왜 하필이면 3사순례인가를 물었다.

"옛날에는 절이 가난했기 때문에 신도들이 3개의 절을 찾아다니며 보시하라는 의미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또한 법신, 보신, 화신의 삼세불을 의미하기도 하죠."

황금새의 전설이 있는 대조사

마지막 행선지는 황금새의 전설을 간직한 충남 부여 성흥산 대조사. 서기 501년에 지은 대조사는 황금새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백제시대 성흥산 바위 아래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살아가는 한 노승이 참선 도중 깜박 잠이 들었다.

황금새의 전설이 있는 대조사에서 일행과 함께. 꿈속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큰 바위를 향해 날개 짓을 했다고 한다. 바위를 깎아 만든 부처상이다
 황금새의 전설이 있는 대조사에서 일행과 함께. 꿈속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큰 바위를 향해 날개 짓을 했다고 한다. 바위를 깎아 만든 부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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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사 관음보살상 앞에서 바라본 대조사 모습
 대조사 관음보살상 앞에서 바라본 대조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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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서쪽에서 날아와 신기하게도 황금빛을 반사하면서 현재의 대조사가 있는 곳에 앉아 큰 바위를 향해 계속 날갯짓을 했다. 그러자 반사된 한 줄기 광명이 바위에 집중되더니 그곳에서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무사히 3사순례를 마친 일행은 내년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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