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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쓸쓸한 재회

2002년경 정신장애가 있는 김씨는 보육원을 나와 거리 노숙을 할 때 상담소를 찾아오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건장한 20대 청년이 그동안 전라도에 있는 염전에서 고생하면서 일하다가 30대의 아저씨가 되어 다시 상담소를 찾은 것이다. 그동안 그는 신용카드도 만들고 자동차도 생겼다고 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자립이 가능해진 것일까?' 하고 잠시나마 기뻐하였지만 이어지는 김씨의 말은 '역시나'로 끝나는 씁쓸한 결말이었다.

브로커가 거리의 노숙인에게 접근해서 음식과 약간의 현금을 건네며 만든 소위 말하는 '대포차'였던 것이다. 김씨는 당장 배고픔을 모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그 후폭풍을 상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장 받은 현금에 비해 100배 이상의 채무를 떠안게 되었고 대포차로 인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는 과정도 힘들었으며 지금도 각종 세금을 내라고 구청에서 독촉장이 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철길 집. 철길 옆 무허가 판자촌에 10여 세대가 살았다.
 지금은 사라진 철길 집. 철길 옆 무허가 판자촌에 10여 세대가 살았다.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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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 거리 노숙자 문제의 심각성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고층빌딩에 가려진 극빈층 삶 터의 문제는 단기적인 상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2001년 대구 쪽방 상담소가 생겼다. 복지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쪽방 거주자들에게 세탁·주거제공·급식 등 기초생활서비스와 각종 상담을 지원하는 쪽방 상담소에서 근무하다 보니 위의 김씨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쪽방 거주자가 처음부터 빈곤했던 것만은 아니다

혹자는 쪽방 거주인, 노숙인 등은 게을러서 그렇게 사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박씨의 사례를 보자. 

박씨는 대기업 건설업체에서 근무했다. 멀리 중동 지역 폭염속에서도 열심히 일했던 그는 퇴직하면서 작은 기업체를 만들었다. 그런데 국제유가 파동으로 문을 닫게 되면서 10억 원 이상의 채무가 생기게 되었다. 믿고 돈을 빌려준 지인들에게 면목이 없고 가족을 볼 자신도 없어서 박씨는 거리 노숙과 쪽방생활 등의 도피생활을 시작하였다.

박씨는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했지만 위기 상황에서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가족들과 행복했던 시간, 잘나갔던 옛 시절은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눈물이 되어버렸다.

이후 대장암이 발병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아픈 와중에도 수술비와 병원비 마련을 위해 건설 일용직을 다니다가 '화장실을 왜 그렇게 자주 가느냐'는 핀잔만 듣고 왔다고 한다. 한때는 잘 나갔던 그는 이제 병든 몸으로 혼자 쓸쓸히 쪽방을 지킬 뿐이다.

화려한 건물 뒤에 가려진 쪽방

오랜 쪽방 생활과 병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힘겨운 쪽방 주민. 하루가 지날 때마다 달력에 가위표를 긋는다.
 오랜 쪽방 생활과 병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힘겨운 쪽방 주민. 하루가 지날 때마다 달력에 가위표를 긋는다.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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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서울처럼 쪽방촌이라고 부르는 밀집 지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기차역·터미널·공원 등 교통이 발달한 도로에서 골목길로 약간 들어가면 허름한 여관·여인숙 등의 형태로 분산된 경우가 많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쪽방을 찾은 봉사자들은 '이런 곳에도 쪽방이 있었나요?'라며 출퇴근길에 매일 같이 다니는 길인데도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대구 쪽방 상담소가 파악한 쪽방 주민은 현재 880명 정도이지만 찜질방·고시원·만화방·피시방을 주거의 용도로 이용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담소 1층에는 쪽방 주민의 자활을 위한 식당을 운영하는데,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체감하고 있다.

인근의 다른 식당에서 간판이 바뀔 때마다 '저 식당의 사장님과 종업원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쪽방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쪽방 거주인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최근에는 쪽방에서 지내는 20대, 30대의 청년이 늘고 있다. 1997년 IMF 경제위기로 많은 기업의 연쇄부도가 주로 40대, 50대의 문제였다면, 지금 대기업 수출 중심의 불균형적 경제구조가 가져온 장기적인 침체는 20~30대의 청년 빈곤으로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다.

1997년 IMF 경제위기 당시에는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어 불완전하지만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사회안전망으로 이들을 안아줄 수 있을까?

쪽방주민이 입주하게 될 매입임대주택(원룸)을 돌아보는 모습. LH공사에서 원룸을 매입하여 시세의 30% 수준으로 저렴하게 주거 취약 계층에게 임대해 준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 10만 원 정도. 입주하고 싶어도 보증금이 부족해서 입주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 매입임대주택 입주 쪽방주민이 입주하게 될 매입임대주택(원룸)을 돌아보는 모습. LH공사에서 원룸을 매입하여 시세의 30% 수준으로 저렴하게 주거 취약 계층에게 임대해 준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 10만 원 정도. 입주하고 싶어도 보증금이 부족해서 입주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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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은 국가에서 적절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면 없어지는 문제다. 많은 사회주택이 생긴다면 우리나라에 쪽방이라는 말은 없어질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매입임대주택에 추가해서 하루 단위로도 생활할 수 있는 저렴한 노동자 숙소까지 제공한다면 주거의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다.

보육원을 나와 거리 노숙을 했던 김씨, 대기업 건설업체에서 일하다 실패 후 대장암에 걸린 박씨, 청년 빈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무료급식소를 전전하는 노인들. 이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결국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더욱 촘촘한 사회보장제도와 함께 현재의 비인간적인 경제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것이 쪽방이 없어지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인권위와 함께 하는 시민기자단이 꾸려가는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글쓴이 강정우님은 대구쪽방상담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인권상담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태그:#홈리스, #쪽방, #노숙인 인권, #주거권, #안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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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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