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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배변 훈련'에 관한 이야기이니 비위가 약하신 분은 읽기를 멈추시는 게 좋아요. - 기자 말

어느새 보니 셀프 기저귀를 찬 채 변의를 참고 있다.
▲ 고집 센 가을 어느새 보니 셀프 기저귀를 찬 채 변의를 참고 있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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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착하고 똑똑한 반려견 가을이에게 유일한 콤플렉스가 있다면 모두가 입을 모아 화장실 버릇이라고 한다. 여느 강아지들처럼 집안 이곳저곳에 마킹을 하는 경우는 오히려 버릇 고치기가 쉬울지도 모른다. 가을이는 반대로 집에서는 볼 일을 꾹 참는 습성을 갖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에 몇 번씩 가을이와 산책을 나가는 이유이다.

그러나 입양 첫날 분명 가을이는 배변 패드에 스스로 볼 일을 봤다. 천재견 소리를 듣고 추앙받았다. 문제는 그놈의 저주받을 심장사상충이다. 키트검사에서 선명한 붉은 줄이 떠 끔찍한 주사와 병원 입원을 피할 수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가을이는 입원 내내 밥도 안 먹고 배변을 참았다.

퇴원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실수할 법도 한데 의연히 참고, 집 앞에 내려놓자마자 참았던 실례를 했다. 그때부터였다. 가을이는 패드 보기를 돌같이 했다. 밖에 나가야 자연스럽게 배설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나는 출퇴근 시간 변동이 잦아 틈틈이 가을이를 들여다볼 여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애와의 산책은 참으로 즐거웠기에 열 일 제치고 가을이에게 달려갔다. 그래서 가을이에겐 더 깊이 각인이 됐을 것이다.

'아, 여긴 아늑한 집, 밖은 즐거운 놀이터이자 화장실'.

산책을 자주하니 발바닥을 다치거나 가려움증이 오기도 하여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의 우려를 들었다. 요의를 느꼈을 때 참는 버릇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다. 집 앞에 바로 마당이 있다면 괜찮겠지만, 열 개의 계단을 내려가 아스팔트길을 얼마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니 가을이 관절에 무리가 올 수도 있었다. 혹여 나중에 거동이 불편해지면 밖에서 볼 일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당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약 10년을 산 가을이. 나의 가족이 된 지 약 2년 반. 행동 교정이 가능할까?

본격 실내 배변 훈련기, 참아도 너무 참는다
첫 번째 시도. 밖에서 볼 일을 볼 때마다 반복되는 소리를 들려주어 나중에 그 소리만 듣고도 배변을 할 수 있게 한다. 산토끼 노래를 부르거나 'toilet~ toilet~' 하는 말에 반응하는 개들을 보았다.

가을이에겐 클레멘타인 노래를 불러주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너는 어디 갔느냐' 노래가 너무 슬퍼서일까. 동네 꼬마만 따라 불렀다. 가을이의 큰 귀엔 내 노래는 그저 소음일 뿐이었다.

두 번째 시도. 배변 패드 위에 간식을 던져주어 즐거운 환경을 만들어 준다. 많이 먹으면 변의가 오고, 잘 누었을 때 칭찬을 해주어 신나는 학습 시간이 되도록 한다. 안타깝게도 가을이는 입이 짧았다. 몇 번 주워 먹다가 딴청을 부렸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배설을 하는 생리는 어린 아가들에게나 통하는 가 보다. 얘는 보송보송한 패드 위에서 잠을 청하기만 했다.

세 번째 시도. 산책에 가는 척 하면서 화장실로 고고씽.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평소대로 배변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나는 외투를 입고 가을이는 어깨줄을 했다. 배변봉투를 챙기고 열쇠를 짤그랑 거렸다.

"자, 산책이다!" 하고선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론 나는 침대 옆이 냉장고이고 싱크대 옆이 신발장인 좁은 원룸에 살고 있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화장실이 있고 그 화장실은 부잣집 개집만하다. 가을이는 '치매라도 온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 번째 시도. 가을이가 밖에서 쉬를 하려는 찰나에 패드를 엉덩이 밑에 깐다. 묻혀온 패드를 집에다 두면 냄새를 맡고 그곳에 볼 일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가을이는 자세를 잡다가도 패드가 다가오면 무엄하다는 표정으로 피했다. 질 수 없다. 길바닥의 배설물을 패드에 찍어 눌렀다. 집에 와 깔았다. 가을이는 쉬야가 묻은 패드를 돌같이 외면했다.

마지막 시도. 설득과 회유. 가을이는 속이 깊고 영특하니 내 말을 알아들을 게 틀림없다. 배변패드를 가리키며 가을이의 건강을 염려했다. 음식을 삼키면 식도를 거쳐 대장과 항문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했다. 패드를 이용해도 산책은 빠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가을이는 확실히 경청을 아는 아이였다. '알겠고, 알겠는데, 나가자고.' 호소력 짙은 눈으로 내게 말했다. 설득은 내가 당했다.

진짜 마지막 시도. 눌 때까지 안 나간다. 네가 참으면 나도 참는다. 누구나 방광엔 한계가 있다. 너도 있다. 나도 한 고집 한다. 가을이는 37시간 만에 실내 배변에 성공했다.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주고 상으로 산책을 했다. 가을이가 얼마나 오두방정을 떨며 기뻐했는지 모른다.

눈은 올라가고 입은 내려간 전형적인 심술보 상이지만 마음은 따스한 애다
▲ 스밀라 입양 3개월의 변화 눈은 올라가고 입은 내려간 전형적인 심술보 상이지만 마음은 따스한 애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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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창피하게 궁둥이를 흔들고 다니더니 돌아와 68시간을 참았다! 엉덩이 근처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데도 패드를 이용하지 않았다. 의아함 가득한 눈으로 나를 봤다. 울거나 끙끙대지도 않았다. 운 건 나였다. 가을이가 딱하고 가여웠다. 더욱이 30분이라도 참는 시간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훨씬 늘어서 말문이 막혔다. 저 애의 건강이 너무나 걱정되었다. 우리를 지켜보던 스밀라(반려묘)가 다가와 손을 잡아줬다. 정말이다.

이후엔 77시간이었다. 맙소사. 그게 가능했다. 배가 얼마나 아팠을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당장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신장에 무리가 갈 만한 수위라고 했다. 가을이가 조금만 더 어렸다면 계속 진행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선택을 내렸다.

우선은 보호자가 더 부지런을 떨고, 외출 시간이 길어지면 전문 기관에 맡기고, 혹시라도 가을이 다리가 약해지면... 그땐...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대출을 받아야겠지? 무엇을 담보로? 뭐, 고민은 천천히 하기로 하자.

이 모습이 제대로 된 너야!
▲ 맑은 하늘 누리는 가을 이 모습이 제대로 된 너야!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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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된 훈련을 뒤로하고 느긋하게 동네를 걸었다. 가을이에게 사과했다. 처음부터 무언가 현명하지 못한 내 탓이 컸다. 이렇게 가을이와 나란히 걷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어쩐지 '제대로다' 하는 안정감이 들었다.

돌아와 간식을 먹이고 침대에 누웠다. 가을이는 내 발치에 자리를 잡았다. 스밀라가 옆으로 누운 나의 두 팔이 만든 동그라미 안에 들어와 골골송을 불렀다. 우린 실패했지만 괜찮았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유기견 입양, #가을이, #스밀라, #실내배변, #배변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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