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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중앙일보 캡쳐.
 중앙일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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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국정감사 취재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국정감사 전체가 '비공개'로 진행되는데다 한두 차례 열리는 간사 브리핑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국감이 끝난 뒤 국회 정보위원들을 개별로 취재하기도 하지만, 보도내용은 여야 간사들이 공동으로 브리핑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일부 언론들이 20일 공동브리핑에 없었던 '북한의 국회의원 해킹' 사실을 보도했고, 더 나아가 <중앙일보>는 21일자 1면에 해킹당한 국회의원의 '실명'까지 공개했다. 어찌 된 일일까?

두 차례 브리핑에도 없던 '의원 해킹' 언론에 보도돼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김수민 2차장과 이헌수 기획조정실장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김수민 2차장과 이헌수 기획조정실장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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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요청에 따라 '국정원 업무현황 보고'라는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주요 업무 추진내용과 실적을 요약한 자료다.

이 자료에서 국정원은 ▲ 대북 핵심첩보 수집 및 감시활동 강화 ▲ 북한 대남공작 적발 및 국가·산업기밀 보호 ▲ 사이버 테러 차단 및 예방활동 전개 ▲ 테러 위협·국제범죄로부터 국민안전 확보 등을 '실적'으로 보고했다. 이어 향후 중점추진 방향으로 "해외와 국내, 정보와 수사, 사이버와 휴민트 역량을 융합하는 정보활동 강화"를 제시했다.

국정원은 20일 '업무현황 보고' 외에도 ▲ 김정은 집권 4년차 북한체제 진단 및 전망 ▲ 최근 북한의 사이버 특이동향 ▲ 드론 공급·대응 훈련 등의 자료도 배포했다. '최근 북한의 사이버 특이동향'에는 북한이 해외에서 도박사이트나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이용해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자료 어디에도 '북한의 국회의원 해킹'을 언급한 대목은 없었다.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간사 공동브리핑이 한 차례 진행됐고, 야당 간사인 신경민 의원이 별도의 단독브리핑을 열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브리핑에서도 '북한의 국회의원 해킹'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여당 간사인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 "북한이 핵 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만 전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날 오후 7시가 넘어서부터 '북한의 국회의원 해킹'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3명, 보좌관 11명의 컴퓨터와 이메일 자료가 해킹당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해킹을 통해 국감자료의 일부가 유출됐다는 내용도 뒤따랐다. 특히 <중앙일보>는 해킹당한 3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새누리당 의원)과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을 실명으로 공개했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업무현황 보고' 중 일부.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업무현황 보고' 중 일부.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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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에서도 해킹당한 의원 실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북한의 사이버 활동 동향을 보고할 때 '국회의원 해킹'을 한 줄 정도 걸쳤다"라고 귀뜸했다. 실제로 '국정원 업무현황 보고'의 '사이버 테러 차단 및 예방활동 전개' 항목에는 "사이버 테러에 대한 감시·대응역량을 강화하여 북한의 청와대·국회 등에 대한 해킹 시도를 차단했"다고 기술한 대목이 있다. 하지만 "해킹당했다"도 아니고 "해킹 시도를 차단했다"라고 기술했고, 해킹당한 의원들의 실명도 없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 이철우 의원이 자기 질의 시간에 이 대목을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고 국정원에 요청했고, 이에 국정원이 '의원 PC 3대, 보좌관 PC 11대가 해킹당했다'고 보고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여야 간사 공동브리핑 당시 이러한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이철우 의원이 관련내용을 브리핑하지 않았는데 <중앙일보>에 나경원·길정우 의원 이름이 실명으로 나왔다"라며 "하지만 어제 국정감사에서는 실명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도 실명을 밝힐 수 없다고 했고, 국회 정보위원장도 실명은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라며 "결국 국정원이 흘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한 핵심관계자는 "의원들이 자꾸 물어서 '의원 PC 3대, 보좌관 PC 11대가 해킹당했다'고 보고했지만 국회의원 실명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라며 "의원들이 실명을 공개하라고 했는데도 우리가 '안 된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 핵심관계자는 "우리가 흘렸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흘렸을 수 있고, 기자들이 국회 쪽을 취재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킹당한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통보하지 않고 국회 사무처에 여러 차례 통보했다"라고 덧붙였다.

해킹사건 자료 제출 거부를 합리화하기 위한 전략?

국정원의 해명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국정원은 국회 사무처에 해킹당한 의원들의 명단을 여러 차례 통보했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의원들은 "언론보도를 보고 해킹당한 사실을 알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출신인 이철우 의원은 애써 "이번 국감에서는 과거와 달리 정치개입 혐의가 거의 없었고, 야당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없었다"라고 호평을 늘어놓았지만, 국정감사가 그렇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국정원이 해킹사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야당이 다음날(21일)로 예정된 현장검증을 거부하는 등 '파행'이 있었다.

특히 이날 공동브리핑에는 국정원으로서는 매우 불편해 할 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 로그파일 등 해킹사건 자료 제출 거부 ▲ '좌익효수' 대공수사국 복귀 ▲ 감찰실 세 처장 동시 교체 등 인사문제 등이 그렇다. 이것들이 모두 국내정치와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보도방향을 바꾸기 위해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북한의 국회의원 해킹'이라는 선정적인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국정원이 로그파일 등 야당에서 요구해온 해킹사건 자료 제출 거부를 합리화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이 '북한의 국회의원 해킹' 보도를 통해 "국감자료가 이렇게 해킹되는데 우리가 해킹사건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면 그 자료들이 북한으로 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태그:#국정원, #북한의 국회의원 해킹, #신경민, #이철우,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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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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