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5일 인터넷에 올라온 한국사 교과서 유언비어를 반박하는 글이 화제다. 기자는 16일 오후 글쓴이 심용환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관련 기사 : "개신교도 사이에 한국사 유언비어, 답답하다"). 이 기사에서 다 담지 못한 내용을 일문일답 방식으로 정리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도는 교과서 유언비어 카톡

15일 새벽 교회 지인을 통해 받은 한국사 교과서 관련 카카오톡 유언비어를 보고 있는 심용환씨
 15일 새벽 교회 지인을 통해 받은 한국사 교과서 관련 카카오톡 유언비어를 보고 있는 심용환씨
ⓒ 곽승희

관련사진보기


- 교과서 유언비어 카톡은 어떤 경로로 퍼지는가.
"다니는 교회에서 집사를 맡고 있고, 교회 공동체 안에 있다. 이번 글은 알고 지낸 집사님 한 분이 '이런 찌라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고 얘길해 와서 알게 됐다. 지난 대선 때도 '문재인(당시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은 공산주의자다'라는 카카오톡 찌라시를 받았다. 특정 이슈가 생기면 교회 커뮤니티나, 교인들 사이, 특히 나이든 사람 위주로 카카오톡 찌라시가 '파바박' 도는 경향이 있다."

- 교과서 유언비어 반박글은 어떻게 쓰게 된 것인가.
"지난 교학사 교과서 사태나 문창극 전 총리 후보의 친일 발언 등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현 정부의 역사 퇴행 행보를 우려해 왔다. 그러다 이번 찌라시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반박글을 썼다. 현재 직업은 역사 강사이며, 대학생 인문학 연합 동아리 '깊은 계단'의 대표도 맡고 있다. 성균관대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했고 재수종합학원과 대치동 학원 등에서 국사·근현대사·현대사 강의, 인터넷 강의 등을 해왔다. 지난 12년간  EBS 교재 문제를 다 풀어보고 해설도 하는 등 자세히 아는 입장이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페이스북에서 반박 글을 공유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유언비어 내용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비판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집필자나 연구자들은 원론적인 주장을 한다. 하지만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세부 내용, 문구를 비튼다. 어제부터 계속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 들어오고, 지금(16일 오후 2시경) 공유 건수 4천이 넘었다. 뜻하지 않은 좋은 반응이다."

"역사 교육 관련 종사자 6만여 명이 다 빨갱이인가?"

- 새누리당은 '주체 사상을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플래카드를 걸고 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걸 보고 심장이 녹아내리 것 같이 가슴이 아팠다. 존재 가치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저는 역사 전공자이고, 역사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다. 빨갱이가 아니다. 역사학계와 교육학계도 물론 마찬가지다. 특정한 정파의 이득이나 그 반대를 위해서든 봉사한 적 없다.
매해 못해도 300~400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내가 그 애들한테 지난 10여 년간 빨갱이 교육을 시켰나?', '나만 아니라 관련 종사자 6만 여명이 다 그런 것인가?' 존재감의 위협을 느꼈다."

- 국정화 논란 이후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
"가족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 시선으로 느껴진다. 무섭다. 범죄 저지르지 않고, 보수 교회에 다니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역사 교육자들은 빨갱이다'는 내용이 카카오톡으로 돈다. 독재정권 시기 같으면 어느 날 잡아가서 가두고, 협박해서 빨갱이를 만들 일 아닌가."

- 반박 글 중 종교적인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맞다. 유언비어에 신앙적인 표현이 나와서 그대로 반박한 것이다. 종교인이라면 세속적 기준의 도덕성, 윤리성 이상을 지녀야 하지 않는가. 윤리성이 무엇인가. 정직, 진실이 아닌가. 이건 이념과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정직과 진실의 문제다. 위험한 말로 상대를 함부로 공격하고 빨갱이를 만드는 일, 최소한 종교인 양심 수준으로 봐서 안 될 일이다."

"교과서 국정화, 뉴라이트 학자들의 정치권의 합작품"

- 현재 상황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말이 꼭 들어가면 좋겠다. 일부 정치권에 와서 나대는 뉴라이트 학자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권희영 교수와 이배용 원장 등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서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학계의 소수설이고 인정받지 못하니 그걸 다른 방식으로 인정받으려고 정치권으로 갔다고 본다. 정치권도 그 빌미를 제공했다. 대부분 뉴라이트 학자들은 학문적 성과를 내지 못하지만, 이 정부에서 역사학 관련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가 아니라 역사학계와 교육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 뉴라이트 학자, 학설이란 무엇인가?
"뉴라이트의 시작은 90년대 초반으로 볼 수 있다. 이영훈(현 서울대 경제학과)·안병직(현 서울대 명예교수) 교수가 일제 강점기 당시 통계 수치를 제시하며, 근대화가 이뤄진 것처럼 주장하거나 기존 학설 내용을 반박했다.

예를 들어, 이 교수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결과를 분석하니, 일본은 조선 땅 중 5%만 가져간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강점기에 근대화가 이뤄졌고, 단순 수탈만 이뤄진 게 아니라는 뉴라이트 주장의 근거다.

학계는 사실인 경우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5% 부분은 이 교수의 말이 맞았고, 교과서의 해당 부분도 수정됐다. 그런데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다양한 재반박이 나왔다. '농지 외에 산림령, 임야 수탈 비율을 계산해보니 통계적으로 조선 영토 절반을 일본이 소유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강점기 당시 일본인은 조선 인구의 2.9%였는데, 이들이 전쟁 후 빠져나가자 조선 경제가 붕괴됐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이런 연구 결과는 일본인이 조선에서 극단적으로 부를 소유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도 일제 강점기가 근대화의 시기라고 주장할 수 있나."

- 뉴라이트 학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뉴라이트 주장은 매우 올드한 얘기다. 뉴라이트의 이런 관점은 영국과 미국의 통계사학파를 빌려온 것이다. 통계사학파는 수량과 통계로 역사를 해석한다. 영국에선 이미 20세기 중반 이에 대한 이론적 반박이 이뤄졌다. 이피 톰슨, 에릭 홉스본 같은 영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들은 사회경제적 실체를 종합적으로 봐야하며, 통계는 부분적 연구 데이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역사학은 비약적 발전을 했고, 미국이나 일본에서 학문적으로도 일부분 독립했다. 또한 연구 주제와 질, 방법도 다분화된 상황이다. 예를 들어 이임하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의 경우 구술사를 통해 역사를 연구한다. 한국전쟁 시기 남편을 잃은 분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기억을 통해 한국사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마을로 간 한국전쟁>이란 책에서 마을 연구 결과를 보여줬다. 전쟁이 마을 단위로 어떻게, 어떤 폭력을 발생시켰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엔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 지점을 통해 역사를 보는 연구도 있다. 나는 학계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사교육계의 역사 강사일 뿐이다. 서점에서 책을 통해 학계 상황을 아는 것뿐이지만 이렇게 다양하다."  

- 현재 논란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다.
"수험생들이 학교 교과서 대신 EBS 교재를 많이 보기 때문에 교과서와 실제 수능 공부가 상관없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교과서가 나오면, EBS 수능 강의 역시 그 국정 교과서 내용을 따라서 가르치게 된다."

"불이익 받을까 걱정되지만... 새 유언비어 제보해 달라"

- 논란에 정면으로 나서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나?
"걱정된다. 혹시 일베(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이용자들이 출강 학원으로 협박전화를 하면 어쩌나. 신상이 털리지 않을까, 나중에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나라도 해야되지 않나. 유언비어 반박 글에 대한 재반박이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새로운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면 제보해 달라. 글 외에 이미지나 영상으로도 교과서 자율성 확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 생각으로 고민 중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차로 교과서 국정화를 막고, 그 다음에는 교육과 학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전공자 입자에서 중세시대 탑과 왕 이름 외우는 것, 정말 재미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아니다. 근현대사 부분 교육을 충분하고 충실히 가르치고, 학생들이 재미있게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교육 현장의 변화도 필요하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교육 정상화를 위한 역사 교육 자체 문제에도 이어지길 바란다."


태그:#심용환, #교과서 유언비어 반박, #교과서 찌라시 반박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