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른 아침의 밀라노는 밤새 품었던 초겨울 한기를 토해낸 듯 안개로 가득합니다. 다시 '최후의 만찬'을 만나기 위해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으로 향하는 길. 좀 더 빨리 도착하는 지하철 대신 1번 트램을 선택했습니다.

걷기를 위주로 한 여행이지만, 밀라노 같은 대도시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가장 현대적인 도시, 밀라노 시가지를 가장 소박한 방식으로 누비고 다니는 1번 트램은 여행자에게 지하철이나 버스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흥을 더해 줍니다.

호텔에서 두 블럭 남짓 걸어서 도착한 트램 정류장. 다른 얼굴과 다른 차림과 다른 목적이지만, 일상을 시작하는 밀라노 사람들 사이에 끼어 트램에 오릅니다. 트램 자체는 오래되었지만 목재로 마감된 실내는 깨끗한 편입니다. 전구를 이용한 조명도, 밀라노인들의 손때가 묻은 철재 손잡이도 오래전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운행 중인 '1928년식 전차'

이탈리아의 가장 현대적인 도시, 밀라노 시가지를 가장 소박한 방식으로 누비고 다니는 1번 트램은 여행자에게 지하철이나 버스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흥을 더해 줍니다.
▲ 1번 트램 이탈리아의 가장 현대적인 도시, 밀라노 시가지를 가장 소박한 방식으로 누비고 다니는 1번 트램은 여행자에게 지하철이나 버스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흥을 더해 줍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문을 여닫을 때마다 요란하게 덜컹거리는 나무문도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정겹습니다. 무엇보다 아침 햇살과 밀라노의 풍경이 그대로 밀려들어오는 낡고 얇은 유리창은 밀라노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상영하는 스크린처럼 느껴집니다.

1928년에 운행을 시작한 밀라노의 트램은 90년 가까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트램들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밀라노 중심부를 통과하는 1번부터 5번 노선엔 가장 오래된 트램들이 누비고 있죠. 심지어 1928년 식 트램도 아직까지 운행 중이라고 합니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버스에 비해서도 턱없이 느린 속도에, 여름이면 냉방도 되지 않는 실내,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요란하게 들려오는 소음. 더구나 트램 운행에 필수적인 전선이 거리곳곳에 거미줄처럼 걸려 있어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편함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밀라노가 이 오래된 교통수단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환경' 때문입니다.

100퍼센트 전기로 운행되는 트램은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트램이 다니는 도로는 트램에 우선권이 있기 때문에, 느린 트램 속도를 견디지 못한 자동차들이 아예 진입 자체를 꺼리는 효과도 있습니다. 도심 혼잡통행료를 따로 부과할 필요가 없는 셈이지요.

효율성이란 바탕에 미적 감각을 결합시키기 마련인 현대 공공디자인의 기본 이념이 밀라노 1번 트램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신 전통과 환경, 그리고 감성이라는 문화적 코드가 결합되어 있죠. 과거의 것은 늘 낡은 것이고 항상 극복과 배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환경에서 자라온 나에게 밀라노의 1번 트램은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수많은 밀라노인들의 손때가 묻은 트램 제일 뒷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밀라노인들을 바라보다 눈을 돌려 밀라노 거리를 봅니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햇살 속에 때마침 최신식 도요타 택시가 느릿느릿 1번 트램을 따라 오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첨단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80년 된 1번 트램 뒤로 최신식 자동차가 느릿느릿 따라 옵니다.
▲ 1번 트램에서 본 밀라노 거리 80년 된 1번 트램 뒤로 최신식 자동차가 느릿느릿 따라 옵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1번 트램을 타고 이틀 만에 다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만납니다. 아직 문도 열지 않은 매표소 앞에 가장 먼저 서서 기다렸다가 예약 티켓을 받고, 가장 앞쪽에 줄을 섭니다. 그리고 처음보단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최후의 만찬'을 만납니다. 그런 내 정성을 알기라도 하는지 '최후의 만찬'은 이틀 전의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했다가 전해줍니다.

15분이라는 아쉽고 짧은 관람 시간은 금세 지나고, 이제 '국립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기술 박물관(Museo Nazionale Scienza e Tecnologia Leonardo da Vinci, 아래 다빈치 과학박물관)'으로 향합니다.

미술 기행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자세히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이곳 '다빈치 과학박물관'에서는 이틀 전 '암브로시아나 미술관'에서 만난 다빈치의 메모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의 실물 모형들을 비롯한 그의 다양한 과학기술적 성과물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다빈치 과학 박물관'에서는 다빈치의 메모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의 실물 모형들을 비롯한 그의 다양한 과학기술적 성과물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 다빈치의 헬리콥터 모형 '다빈치 과학 박물관'에서는 다빈치의 메모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의 실물 모형들을 비롯한 그의 다양한 과학기술적 성과물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머나먼 이 땅, 밀라노에서 우리의 문화유산이 '앙부일구'를 만나기 기분이 묘합니다.
▲ 앙부일구 머나먼 이 땅, 밀라노에서 우리의 문화유산이 '앙부일구'를 만나기 기분이 묘합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뿐만 아니라 '파스칼 계산기', '갈릴레이의 망원경(1933년 새로 제작)', '마르코니 무선 전신기', '에디슨 발전기' 등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접했던 발명품들부터 '애플2', 'IBM-5150' 같은 현대 퍼스널 컴퓨터의 초창기 모델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각종 비행기, 군함, 잠수함들의 초기 모델들 등 르네상스 이후 근현대 과학 기술의 성과들을 방대한 규모로 전시해 놓아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특히 박물관 한쪽에 전시된, '국립 중앙과학관(대전에 위치)'에서 가져왔다는 실물 해시계 '앙부일구'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 나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렇게 사춘기 시절, 내 상상력을 자극했던 다빈치의 성과물들을 만나고 다시 미술 기행을 이어가기 위한 걸음을 재촉합니다.

다음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이지만 늑골 궁륭(돌이나 벽돌 또는 콘크리트 아치로 둥그스름하게 만든 천장을 '궁륭'이라고 하는데, 늑골이나 아치들의 뼈대가 있는 궁륭을 '늑골 궁륭'이라 합니다)을 최초로 성당에 적용하여 이후 고딕 양식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성 암브로지오 성당(Basilica di Sant'Ambrogio)'으로 향합니다.

지금까지 만났던 성당들 중 가장 소박한 외관의 '성 암브로지오 성당'. 그런데 성당 안엔 미사가 진행 중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요일을 맞아 미사에 참석하러 온 이탈리아인들만 가득하고 여행자는 나밖에 없습니다.

경건한 미사 시간, 기독교인도 아니고 여행자에 불과한 나는 그들의 일상에 불청객처럼 끼어든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그래서 주 제단의 화려한 모자이크와 늑골궁륭에만 잠시 눈길을 주고는 이내 성당 밖으로 나옵니다.

늑골 궁륭을 최초로 적용한 성당으로 이후 고딕양식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성 암브로지오 성당'. 미사 중이라 화려한 모자이크와 뚜렷한 늑골궁륭만 보고 성당 밖으로 나왔습니다.
▲ 성 암브로지오 성당 늑골 궁륭을 최초로 적용한 성당으로 이후 고딕양식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성 암브로지오 성당'. 미사 중이라 화려한 모자이크와 뚜렷한 늑골궁륭만 보고 성당 밖으로 나왔습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성 암브로지오 성당'을 나와 북쪽을 향해 걷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성벽이 우뚝 눈앞을 가로막습니다.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zesco)'입니다.

서울의 경복궁 같은 도심지 성이자 궁궐인 '스포르체스코 성'은 원래 14세기 밀라노를 지배하고 있었던 비스콘티 가문의 궁전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5세기 중반 용병 출신인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밀라노의 권력을 차지하면서 브라만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르네상스 건축가들의 힘으로 요새화된 성채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이죠. 현재의 '스포르체스코 성'은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개축한 것인데, 박물관과 갤러리, 콜렉션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울의 경복궁 같은 도심지 성이자 궁궐인 ‘스포르체스코 성’은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개축한 것인데, 박물관과 갤러리, 컬렉션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스포르체스코 성 서울의 경복궁 같은 도심지 성이자 궁궐인 ‘스포르체스코 성’은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개축한 것인데, 박물관과 갤러리, 컬렉션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회화관, 가구 박물관, 악기 박물관, 예술 작품 수집관, 고고학 박물관, 아킬레 베르타렐리 인쇄물 수집관 등 10개가 넘는 '스포르체스코 성' 박물관과 컬렉션 중 내 발길이 향한 곳은 '고전 미술 박물관(Museo d'Arte Antica)'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다른 수많은 고대 로마의 조각물들을 뒤로 하고 오로지 미켈란젤로 최후의 걸작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죽기 며칠 전까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작품'

병이 들거나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늙음에 의한 자연스러운 죽음을 앞둔 상황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아직 지나치게 젊은 나이라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아니 생각하기엔 두렵기까지 한, 그러나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그 필연적 사건을, 나는 낯선 이방의 나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 앞에서 생각합니다. 바로, '론다니니의 피에타'입니다.

미켈란젤로, '론다니니의 피에타',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90세란 나이에, 죽기 며칠 전까지, 저 무겁고 굳센 돌을 다듬어 만들어낸 미켈란젤로 최후의 작품입니다.
▲ 론다니니의 피에타 미켈란젤로, '론다니니의 피에타',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90세란 나이에, 죽기 며칠 전까지, 저 무겁고 굳센 돌을 다듬어 만들어낸 미켈란젤로 최후의 작품입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미적 감각은 차치하고라도, 조각도를 이용해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학창 시절에 비누 조각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대상을 원하는 형태대로 깎아내는 힘만을 요구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조각도의 진행을 멈출 수 있는 집중력. 그것이 더 큰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미켈란젤로는 90세란 나이에, 죽기 며칠 전까지, 저 무겁고 굳센 돌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만났던 '팔레스트리나의 피에타' 보다도 몇 단계 이전에 망치와 정을 멈추었습니다.

더할 수 없는 슬픔을 뜻하는 '피에타'. 아흔 살의 미켈란젤로는 왜 몇 년 동안이나 팽개쳐 두었던 이 작품을 죽기 직전까지 다듬고 있었을까요? 해부학적으로 보면, 지금 상태에서 작업이 계속 진행되었더라도 젊은 시절 같은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형상은 완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전에 이 작품이 완성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요.

미완성. 그렇습니다. 그는 애초에 이 작품이 지금과 비슷한 상태의 미완성으로 남겨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아흔이라는 나이까지 이 작품을 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이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영원히 미완성입니다.

미켈란젤로, '론다니니의 피에타'(부분),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추상적 형상을 통한 정서 표출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제시.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에서는 형상의 외면을 통해 표현되었던 정서가 완전히 감상자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 론다니니의 피에타 2 미켈란젤로, '론다니니의 피에타'(부분),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추상적 형상을 통한 정서 표출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제시.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에서는 형상의 외면을 통해 표현되었던 정서가 완전히 감상자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역설적으로 미켈란젤로는 그 미완성으로 예술을 완성했습니다. 1498년, 스물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저 유명한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를 조각한 미켈란젤로. 이후 그는 평생에 걸쳐 범접할 수 없는 천재성과 다른 이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그래서 혼자서만 작업을 진행해야 했던 고독이라는 두 숙명을 안고 살았죠.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그 숙명을 끊임없는 자기 혁신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젊은 시절, 바티칸의 '피에타'나 피렌체의 '다비드 상', 로마의 '모세 상' 등에서 보였던 사실적이면서도 완벽한 아름다움은, 70대에 제작한 피렌체 '두오모'의 '피에타'와 80대 끝 무렵의 '팔레스트리나의 피에타', 그리고 최후의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에 이르러 추상적 형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특히 주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제작한 '팔레스트리나의 피에타'와 '론다니니의 피에타'에서는, 형상의 외면을 통해 표현되었던 정서가 완전히 감상자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추상적 형상을 통한 정서 표출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제시. 그렇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죽음을 앞둔 고독의 절정에서 수 백 년을 뛰어 넘는, 미술 양식의 미래를 제시한 것입니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 미술사 500년 역사가 미켈란젤로라는 한 위대한 예술가의 일생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처음의 질문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노년의 시간, 내 손에는, 우리의 손에는, 무엇이 쥐어져 있을까요? 답을 찾으려 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아납니다. 고개를 돌려 후배 다니엘레 리치아렐리가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두상을 바라봅니다. 아무 말 없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자기 최후의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바라보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형형한 눈빛.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옵니다. 자기 삶에 대한 예의. 예술과 종교를 뛰어넘어, 우리가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습니다.

다니엘레 리치아렐리, '미켈란젤로 두상',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미켈란젤로는 아무 말 없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자기 최후의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미켈란젤로의 두상 다니엘레 리치아렐리, '미켈란젤로 두상',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미켈란젤로는 아무 말 없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자기 최후의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만나고 나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오늘 하루 일정을 다 마친 듯 맥이 탁 풀립니다. 보수 중이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장 장식은 물론이고, 온갖 악기들을 전시해 놓은 악기 박물관, 조금은 뜬금없는 중국 도자기 박물관, 섬세한 그림과 아름다운 글씨로 장식한 16세기 성경책들이 돋보였던 '트리불치아나 도서관(Biblioteca Trivulziana)' 등 여러 곳을 기웃거렸지만 그다지 흥미가 나지 않습니다. 남은 곳은 이제 '회화관(Pinacoteca del Castello Sforzesco)'밖에 없습니다.

'회화관'은 이탈리아의 다른 미술관들처럼 후기 고딕 양식부터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양식까지 순서대로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조반니 벨리니, 만테냐, 티치아노, 틴토레토, 카날레토 등 대가들의 대표작은 아니더라도 훌륭한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도무지 작품들에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육체적 피로와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어쩔 수 없이 '회화관'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합니다.

꿈에서 본 명작들, 실제로 보니...

이탈리아에 온 지 오늘로 17일 째. 생각해 보니 로마에서 피렌체와 볼로냐를 거쳐 이곳 밀라노까지 그동안 하루도 쉼 없이 이탈리아 곳곳의 거리와 광장과 성당과 미술관, 박물관을 걸었습니다. 오르비에토, 산 지미냐노, 시에나, 아시시, 피사, 토리노 등 외곽 도시들에서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생애 첫 여행이니만큼 조금 힘들어도 한 작품, 한 건축물이라도 더 만나려는 욕심에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저녁 늦게까지 강행군을 이어온 것이죠. 발뒤꿈치에 잡혔던 물집은 몇 번이나 새로 잡혔다가 터졌고, 끊어질 것 같은 허리는 한국에서 가져온 파스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거기다가 오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만난 후부터 조금씩 시작됐던 두통이 이곳 '회화관'에서는 현기증까지 함께 데리고 온 것입니다.

 ‘트리불치아나 도서관(Biblioteca Trivulziana)’에는 섬세한 그림과 아름다운 글씨로 장식한 16세기 성경책을 비롯한 여러 고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고 성경 속 '수태고지' ‘트리불치아나 도서관(Biblioteca Trivulziana)’에는 섬세한 그림과 아름다운 글씨로 장식한 16세기 성경책을 비롯한 여러 고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스탕달 신드롬(뛰어난 예술작품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충돌 또는 분열 증상)'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무리한 일정에 탈이 난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꿈 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명작들을,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많은 작품들을, 짧은 기간 동안 한꺼번에 만나고 나니 정신과 가슴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습니다.

적당한 휴식이 반드시 필요할 거라던 여행 선배들의 말도 떠오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루 쉴 목적으로 잡아놓은 내일 '코모 호수' 일정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아예 쉰다는 생각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한참을 자리에 앉아 쉬다보니 두통은 좀 남아있지만 현기증은 웬만큼 사그라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회화관'을 나오기 전, 어지러운 상태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던 한 작품만 다시 보기로 합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다른 작품들 사이에 무슨 메모판이 걸려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 했지요. 그런데 작품들 사이에 메모판을 전시할 수는 없는 법. 다시 자세히 봅니다. 그리고 이내 바보 같은 착각이었단 것을 깨달았죠. 그것은 트롱프뢰유였습니다.

필리포 아비아티, '인쇄물 트롱프뢰유',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실물과 같은 정도의 철저한 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한 ‘속임수 그림’, 트롱프뢰유입니다.
▲ 트롱프뢰유 필리포 아비아티, '인쇄물 트롱프뢰유',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실물과 같은 정도의 철저한 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한 ‘속임수 그림’, 트롱프뢰유입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작품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던 필리포 아비아티란 작가의 <인쇄물 트롱프뢰유>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트롱프뢰유(trompe-l'oeil)'는 실물과 같은 정도의 철저한 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한 '속임수 그림'을 말합니다. 매너리즘과 바로크 시기를 거치면서 정물화와 천장화에 주로 사용되었던 기법이죠.

아비아티의 이 작품도 사실은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화면 중앙의 종이 인쇄물들과 소품들은 물론이고, 나무 패널과 액자까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아서 딱 속기 쉽습니다. 나무 패널은 질감까지 느껴질 정도죠. 그리고 소품들 하나하나에 음영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화면 전체에 입체감도 느껴집니다.

바로크 천장화에 사용된, '일루셔니즘(illusionnism)'이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트롱프뢰유였다면, 트롱프뢰유 정물화는 착시 현상을 이용한 일종의 유희입니다. 감상자들에게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정도였죠.

그런데 현대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트롱프뢰유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가상, 즉 초현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17세기 후반 아비아티의 트롱프뢰유는, 나에게 단순한 유희를 넘어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비록 아비아티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그의 트롱프뢰유는 과거의 미술이 아니라 현재, 즉 미래의 미술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다시 90세의 미켈란젤로가 남긴 '론다니니의 피에타'가 떠오릅니다. 어느 일부분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500년을 뛰어넘는 미술의 미래. 나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밀라노의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미래를 만난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 씩이나 말입니다.

진정한 예술은,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타임라인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해 가다 어느 한 순간 화려하게 반짝이는 섬광 같은 것. 나는 그 짧고 눈부신 섬광을 발견하고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내 현기증의 원인이었습니다.

여전히 멍한 상태로 '스포르체스코 성'을 나오니 이미 날은 저물고 밀라노는 화려한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찬 공기가 옷깃을 스며들었지만 그런 대로 견딜 만합니다.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 다시 '두오모 광장'에 섭니다. 밤의 '두오모'는 푸른 하늘 아래 만났던 것과는 또 다른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16편. 베네치아 1편으로 이어집니다. )

○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스포르체스코성, #미켈란젤로, #론다니니의피에타, #트롱프뢰유, #이탈리아미술기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이동조사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