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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 이른바 '캣맘'이 경기도 용인시 아파트 화단에서 길고양이 집을 짓던 중 벽돌에 맞아 한 명은 숨지고 다른 한 명은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16일 오전 11시경 경찰은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의 자백을 확보했다며 10대 A군을 용의자로 발표했다. A군이 옥상에서 벽돌을 던진 동기는 '낙하 모의실험'으로 드러나 '캣맘 혐오'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캣맘 사망 보도 이후 많은 기사·방송들이 길고양이와 캣맘, 그리고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에 이번 사건의 초점을 맞추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에 관한 찬반 의견을 물어 찬성자들과 반대자들 간의 대립을 심화하는 기사, 길고양이에 대한 오해와 편견 혹은 캣맘과 이웃의 갈등만을 부각하는 기사와 보도가 쏟아졌다. 포털 사이트 등 인터넷에는 '캣맘 혐오증'이라는 단어가 키워드로 등장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죽했으면 벽돌을 던졌겠느냐?"며 가해자의 편을 드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와 전혀 무관하게, 그런 식으로 고인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길고양이를 혐오하는 모든 사람이 캣맘에게 벽돌을 던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합리적인 이의제기와 대화를 통해 타협을 모색하게 마련이다. 지금껏 본인이 캣맘이라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든 간에 "오죽했으면 벽돌을 던졌겠느냐?"라는 말은 고인의 죽음을 두고 할 말이 아니다.

사건의 용의자가 초등학생으로 밝혀지면서 이번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그러나 캣맘들이 당하는 신변 위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는 이유로 멱살을 잡히고 쓰레기통에 거꾸로 처박히는 등 온갖 위협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캣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그들을 보호하는 국가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길고양이가 문제? '박멸' 아닌 '공존' 모색해야

길고양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아간다. 이들의 삶은 순탄치 않다.
 길고양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아간다. 이들의 삶은 순탄치 않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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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를 완전히 제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좋든 싫든 우리는 길고양이와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즉, 박멸이 아닌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과거에는 길고양이로 인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길고양이를 포획하여 안락사하는 방식이 시행됐다. 그러나 어떤 지역의 길고양이를 전부 잡아다가 안락사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해도 길고양이 개체수 감소는 '진공효과' 때문에 오래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진공효과란 한 지역의 고양이들이 제거되면 이웃 영역에서 넘어온 고양이들이 번식을 시작하여 개체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영국의 야생동물학자인 로저 테이버를 통해 최초로 알려졌다.

또한 길고양이를 포획하여 안락사하는 것이 비인도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많은 지역에서 티엔알(TNR)이라는 프로그램이 길고양이 증가를 억제하는 방안으로 시행된다. 티엔알이란 무리 고양이 대부분을 포획(Trap)하여, 중성화수술(불임 또는 거세(Neuter))을 한 후, 원래의 영역에 방사(Return)하는 작업이다.

방사한 고양이들에게는 정기적으로 먹이를 급여하고 은신처를 만들어 주며, 그 지역에 새로운 고양이들이 유입되지 않는지 감시한다. 티엔알은 길고양이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현재까지 알려진 방법 중 유일하게 성공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티엔알의 장점으로는 길고양이 개체 수가 감소하는 것 외에도 짝짓기나 영역 싸움으로 인한 소음이 줄어들고, 쥐의 번식이 억제되며, 캣맘이 길고양이에게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할 경우 음식물 쓰레기봉투 훼손이 줄어든다는 점 등이 있다.

그러나 티엔알이 성공을 거두려면 중성화 수술 후 방사된 고양이들에게 꾸준히 먹이를 공급하고 관리해주는 캣맘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티엔알은 캣맘이 있는 지역부터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현재는 대다수의 티엔알이 캣맘이 없는 지역에서 포획업자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너무 어리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고양이들까지 수술대에 오르고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죽음에 이르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따라서 캣맘의 조력 없는 티엔알은 오히려 길고양이에 대한 학대라는 지적이 많다. 

캣맘은 '동물애호가' 아닌 '지역 사회 봉사자'

시민들에게 길고양이 티엔알 사업과 효과를 알리는 성남시의 홍보 전단
 시민들에게 길고양이 티엔알 사업과 효과를 알리는 성남시의 홍보 전단
ⓒ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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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 활동가인 이용철씨는 서울시에서 티엔알이 시행되기 전 안락사 직전에 있던 길고양이들을 구조하여 보호하는 쉼터 '해피캣'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번 캣맘을 향한 혐오 분위기 중심에 길고양이와 캣맘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길고양이는 동물보호법의 보호를 받는 동물이다. 따라서 이제는 길고양이를 억제하기 위해 안락사를 시행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에서는 티엔알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캣맘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기도 성남시와 서울시 등 여러 지자체에서 이에 관해 홍보를 했지만 관련 정보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이용철씨는 길고양이를 학대할 경우 동물보호법의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 티엔알은 길고양이 대책으로 지자체가 실시하는 사업이며 캣맘은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사람임을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했다. 즉, 캣맘이 하는 활동이 단순히 '고양이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용철씨는 고양이에 대한 애호의 감정만으로 공존을 모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활동이 캣맘과 고양이의 관계에 머물지 말고 지역 사회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길고양이에 대한 애호·보호를 넘어 지역 생태와 환경을 지키는 활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얘기다.

이용철씨는 '고양이 엄마'를 의미하는 '캣맘'이라는 용어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도 했다. 캣맘이라는 이름이 길고양이에 대한 애호만을 강조하여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들이 고양이와 도심 생태를 위해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로 인식돼야 한다고 했다. 이에 캣맘의 대안으로 과천 캣맘 모임에서 최초로 사용된 '길냥이돌봄이' 혹은 줄임말로 '길봄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동물 유기가 원인,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책 필요

길고양이가 늘어나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대구시에 거주하는 캣맘인 이아무개씨는 길고양이들 가운데 사람이 키우다가 버린 고양이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고양이를 번식시켜 판매하는 사람들, 그리고 충분한 고민 없이 길렀다가 유기하는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종고양이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길고양이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의 유기·가출·외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기르던 고양이를 길에 버려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인식이 길고양이를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런 무책임 때문에 늘어난 길고양이들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수많은 캣맘이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못해도 사비를 들여서까지 티엔알을 하며 헌신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씨는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봉투를 뜯고 사람이 코를 풀고 버린 휴지까지 뜯어먹는 게 도시의 길고양이"라고 말하면서, 배고픈 동물을 위한 밥 한 끼·안식처 하나를 마련하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비난을 받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펫샵에서 개, 고양이를 사고 파는 행위는 충분한 고민 없는 동물 구매와 유기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늘날 펫샵은 대형마트에까지 등장했다. 동물 상거래에 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 대형마트 펫샵 펫샵에서 개, 고양이를 사고 파는 행위는 충분한 고민 없는 동물 구매와 유기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늘날 펫샵은 대형마트에까지 등장했다. 동물 상거래에 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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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심은 가로수도 지자체의 사업으로 관리를 받는다. 길고양이는 언제까지 혐오생물 취급을 받고 캣맘들은 죄인처럼 숨어서 밥을 줘야 할까. 가까운 일본의 경우,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지역과 길고양이를 위한 환경봉사자로 인식되고 있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후원을 한다.

우리 사회에도 길고양이 문제를 개인의 호불호를 넘어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지역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지자체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 캣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현재의 구조는 변해야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한국의 길고양이 돌보기 활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아래 블로그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forpp/220447320636



태그:#캣맘, #사망, #벽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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