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김 대리님은 퇴근시간이 되면 우리가 검사해둔 합격제품에서 추가 샘플을 추출해 불량품이 나올때까지 재검사를 하셨다.
▲ 합격판정 김 대리님은 퇴근시간이 되면 우리가 검사해둔 합격제품에서 추가 샘플을 추출해 불량품이 나올때까지 재검사를 하셨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새로 시작한 수입검사실에서 내 생활은 아주 빡빡하게 돌아갔다. 신 과장님께서 고등학교 14년 후배를 만난 반가움에 실시한 나를 육성시키려는 프로젝트를 따라가기에도 힘들었지만 더 힘든 건 바로 본부장님의 친동생이었던 김 대리님의 히스테리였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김 대리님의 담당 업무는 '기구물'쪽이기 때문에 신 과장님과 '회로물'을 담당하던 나와는 직접 관련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신 과장님이 '경영혁신 TFT'로 자리를 옮기시는 바람에 나 역시 김 대리님의 직접적인 콘트롤을 받게 되었다.

김 대리님은 아주 꼼꼼한 성격에 여성성이 강한 남자였다. 게다가 항상 '장가가야 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노총각 히스테리가 심했다. 김 대리님의 친형이었던 영상사업본부장님은 아주 남자다운 성격에 시원시원하신 분이었는데, 그런 형의 성격과는 180도 다른 성격을 가지고 계셨다.

수입검사 담당자들이 시행하는 입고 검사에서는 전수 검사가 아닌 '샘플링' 검사를 시행한다. 입고된 제품들 중에 일정 수량을 무작위로 가져와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입고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AQL(Acceptable Quality Level)' 기준에 따라 불량으로 발견된 샘플 숫자가 기준보다 적을 경우 전체 입고된 제품을 합격 처리하는 방식이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김 대리님은 수입 검사실로 와서 우리가 합격처리 해 놓은 제품들에서 추가 샘플을 가져 오라고 하신다. 추가 샘플을 가져오면 직접 추가 검사를 하시는데 거기에서 하나라도 불량품이 발견되면 절대 퇴근을 시켜주지 않으셨다.

'QC'라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것이니 본 받아야 할 점도 있지만 정해진 기준에 따라 합격 처리된 제품에서 불량품이 발견될 때까지 추가 샘플링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에게 '일 을 똑바로 시키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젊은 친구들이 '일찍 퇴근 하는 꼴을 보기 싫어서'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가끔 추가 샘플링을 해서도 불량 제품이 발견되지 않아 '퇴근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때면 책장에 꽂혀 있는 문서들을 꺼내 '인덱스(문서목록을 보기 좋게 정리한 표지)'를 새로 만들자고 하시기도 했다. 'ISO(국제표준화기구) 심사 기간에만 문서 정리를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잘 관리해야 한다'며 자신이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작업을 시작하시는 바람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내려놓고 또 밤늦도록 문서 정리 작업을 해야했다.

우리 회사는 당시 'Single PPM(제품 100만개당 불량품을 10개 미만인 1자릿수로 관리하는 기법) 인증 업체'였다. 그리고 전 세계 여러 나라에 TV를 수출하는 기업이다 보니 해외 여러 인증기관에서 회사를 방문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인증기관들이 회사를 방문해서 가장 중점적으로 점검하는 항목이 '품질관리'다 보니 우리 부서에서는 그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사전 준비로 바빴다.

우리를 그렇게 못살게 굴던 대리님, 알고 보니...

주말에 등산 가자고 말하는 부장님들처럼 김 대리님은 주말에도 우리를 불러 내셨다.
▲ 등산 주말에 등산 가자고 말하는 부장님들처럼 김 대리님은 주말에도 우리를 불러 내셨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그 날도 마찬가지로 인증 심사관의 방문에 대비하여 문서 정리작업을 밤 늦도록 하던 날이었다. 다음 날이 쉬는 날이라 '내일은 늦게까지 푹 자서 피로 좀 풀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 대리님이 이제 그만 퇴근하고 '내일 보자'고 하셨다. 그 말에 놀라 '내일은 쉬는 날'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정색을 하시면서 '이렇게 바쁜 시국에 쉬는 날이 어딨냐'며 '전부 다 출근 하라'고 하셨다.

모처럼 휴일에 잠 좀 푹 자려고 했는데 도살장 끌려가듯 텅빈 회사에 출근하고 있으니 참 서러웠다. 회사 전체가 다 쉬고 경비 아저씨만 근무하는 날이었는데 수입검사원 3명과 김 대리님만 회사에 출근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김 대리님은 그 날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차에 우리를 모두 태운 뒤 1시간여를 달려 어느 산에 있는 '방갈로'로 데려갔다.

방갈로에 들어서면서 김 대리님이 우리에게 말하길 '한동안 계속 야근으로 고생해서 맛있는 밥 사주려고 나오라고 했다'고 하셨다. 이건 마치 TV에서 나오듯 주말에 억지로 등산가자고 불러내는 부장님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김 대리님 앞에선 웃을 수밖에 없었고 밥 다 먹고 '언제쯤 돌아가려고 하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렇게 김 대리님의 노총각 히스테리를 겪다보니, 앞서 수입검사실에서 일하다가 다시 생산 라인으로 돌아간 형의 말이 실감났다. 그 형이 왜 힘들어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다시 생산 라인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나의 멘토 신 과장님께도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 이 악물고 버텨 냈다.

김 대리님의 노총각 히스테리는 우리뿐만 아니라 회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김 대리님이 안 계실 때 우리를 만나면 사람들은 '많이 힘들지?'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곤 했다. 어느날 출하검사실에 볼일을 보러 갔던 날도 출하검사실 형들은 '김 대리님 때문에 힘들지?'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매번 듣던 말이라 그냥 웃으며 '괜찮다' 말하고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김 대리님이 우리가 없는 데서 누구보다 우리들을 먼저 챙기기 위해 노력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tvN에서 방영한 인기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우리 애'라는 말을 듣고 격하게 감동하던 장면이 있었다. 그 드라마 속 장면과 같이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하던 김 대리님이 우리가 없는 곳에서는 '우리 애들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냐'며 챙기고 계셨던 거다. 회사에서 나오는 혜택들 중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다른 부서에 뺏기지 않고 우리가 받게 하기 위해 애를 쓰셨고 팀장님께 '수입검사 애들 일 잘한다'며 계속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언제나 우리를 피곤하게 괴롭히려고 하는 줄로만 알았던 김 대리님이 우리를 누구보다도 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감동은 신 과장님께서 내게 배풀어주신 은혜, 그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와 닿았다. 그것은 애정표현의 '방식'이 달랐던 것일 뿐, '내 새끼'를 사랑하는 모든 어미들의 마음처럼 같았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태그:#직장인, #직딩, #품질관리, #상사, #심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