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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위기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재직 중이던 지난 2013년 자신이 데리고 있던 인턴을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공채에 합격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보도자료를 내며 '관련 없음'을 주장하고 있지만 상황은 유리하지 않다. 해당 기관의 전 부기관장이 실명을 내걸고 외압 당사자를 '최경환'이라고 지목하고 나섰다. 지난 7월에 나온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에도 여러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L을 합격시키기 위한 부당한 노력들 - 서류전형편

10월 8일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취업청탁 및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겨레> 10월 9일자
▲ 최경환 정면조준! 10월 8일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취업청탁 및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겨레> 10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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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감사원에서 중진공의 '정규직 신입직원 채용업무 부당 처리'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2012년과 2013년도 채용 감사를 진행했는데 매년 채용비리가 적발됐다. 2012년 채용에서는 3명(감사보고서 상 F, G, K로 등장)에 대한 '서류점수 조작'에 의한 부당한 합격이 있었다.

2013년 채용에서 문제의 L이 등장한다. 중진공 인사부서는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L을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 이는 전년도 F, G, K의 경우와 동일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앞의 세 사람은 면접에서 잡음 없이 합격한 것과 달리(F에 대해서는 1차 면접점수 조작), L은 면접에서 외부 심사위원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탈락하게 된다. L을 입사시키기 위해 중진공은 서류조작과 면접점수를 조작했다. 이는 감사원 감사결과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제의 L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살펴보자. 4500명 지원자 중에서 L은 서류평가 결과 2299위를 기록했다. 중진공의 서류평가는 학력(10점), 전공(15점), 어학(10점), 연령(5점), 경력 등 기타(10점), 학교성적(20점), 입사지원서(20점) 등의 합산점수로 매겨지며, 이를 외부업체에 위탁해 서류전형 합격자 170명을 선발하는 프로세스다.

L을 합격시키기 위해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운영지원실장이 나선다. 실장은 인사과장에서 "L을 잘 봐주라"고 지시하고 인사과장은 점수조작에 나선다. 외부업체가 산정한 점수 중 일부를 조정해 점수를 올려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의 등수는 1200위를 기록했다. 인사과장은 L을 제외한 서류전형 합격자 결재를 올리고 상사인 팀장은 승인한다.

운영지원실장이 "L에게 기회를 한번 더 주라"고 지시하며 결재서류를 반려한다. 그러자 L을 합격시키기 위해 동원가능한 모든 노력이 이뤄진다. 감사보고서 내용을 인용해 보자.

그러자 위 사람(인사과장)은 L의 자기소개서 점수 및 경력 등 요소 점수를 당초 8점, 4점에서 10점, 5점으로 각각 변경하였을 뿐 아니라 서류전형 기준에 따라 12점으로 평가하였던 학교 점수를 15점으로, 어학 점수를 0점에서 3점으로 변경하는 등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L가 176위로 불합격 대상자에 해당되자 L을 합격시키기 위하여 '장애인 채용확대를 위한 행정직 서류전형 합격인원 조정'이라는 사실과 다른 이유를 들어 서류전형 합격자 인원수를 174명으로 늘려서 L을 서류전형에서 부당하게 합격시켰다. - 감사원 감사보고서 내용 중

L을 어떻게든 서류전형에 합격시키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 채용확대'를 위한 인원조정을 해도 서류합격자를 174명까지 늘릴 수 있었다. 그러자 인사과장은 서류전형 8위, 50위, 63위를 기록한 3명을 탈락시키고 176위였던 L을 합격시키게 된다.

L을 합격시키기 위한 부당한 노력들 - 면접편 그리고...

서류전형에 통과한 L은 그 해 7월 15일에 1차면접을 보고 통과하고 7월 31일 최종면접을 보게 됐다. 최종면접 과정에서 중진공 이사장이 L에 대해 "책임감도 강해 보이고 인성도 괜찮아 보이며 참 성실한 것 같다"고 노골적으로 사인을 주었다. 그러나 외부위원(리크루트사 대표)이 '면접위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L의 합격에 '강하게' 반대함에 따라 중진공은 L을 불합격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다음날인 8월 1일 이사장이 운영지원실장과 인력팀장을 불러서 'L을 합격시킬 것'을 지시한 것이다. 두 사람은 결국 다음날인 8월 2일 L을 최종 합격자 36명에 포함시켜 발표하게 된다.

도대체 7월 31일과 8월 1일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이사장에게 있었기에 800명 규모의 큰 공단에서 이사장, 부이사장, 실장, 외부인사가 참여해 선발한 인력의 당락이 말 한 마디로 뒤집어지게 됐는가. 바로 여기에 '최경환'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그는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취업청탁 및 압력을 행사했다고 증언했다. <한겨레> 10월 9일자
▲ 중소기업진흥공단 전 부이사장의 증언 그는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취업청탁 및 압력을 행사했다고 증언했다. <한겨레> 10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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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L의 면접에도 참여했던 김범규 중진공 전 부이사장은 9일자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 부총리가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7월 31일 면접하고 나서 최 부총리에게 (L의 불합격) 의견을 전달해야 할 거 아니냐"면서 당시 최 부총리에게 연락한 정황을 전하며 "(8월 1일 퇴근 무렵 최경환 원내대표 보좌관으로부터) 의원님 시간된다고 전화가 왔다. 이사장이 그때 여의도 주변에서 머무르고 있다가 나와 비슷한 취지로 설명하러 최 부총리를 만나러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전 부이사장에 따르면 이사장을 만난 최 부총리가 '내가 결혼까지 시킨 아이니까 그냥 (취직) 시켜줘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이사장이 중진공 실장을 불러 'L을 뽑아주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렇게 L은 중진공에 합격했다.

재미있는 감사원 보고서, 숨기지 못한 L에 대한 몇 가지 힌트

<감사원> 7월.
▲ 중진공 채용비리에 대한 감사결과보고서 <감사원>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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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공 채용비리를 담은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A4 29쪽 분량이다. 앞서 보았듯이 2012년 채용비리 3건, 그리고 2013년 L씨 관련 1건 등 모두 4명에 대한 채용비리를 다루고 있다.

재미있는 대목은 2012년 3명에 대한 분량보다 2013년 L에 대한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위에 자세하게 기술한 내용도 감사보고서상 자세히 기술돼 있기에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감사보고서 상 재미있는 또 다른 대목은 L에 대해서만 유독 내부 인사담당자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기술한 대목이다. 2012년도 G 경우를 보면 서류전형 발표 당일 상사로부터 '합격시킬 것'을 지시받자 항의를 하는 대신, 서류전형 11위를 탈락시켜 버리고 그 자리에 258위였던 G를 합격시켜버리는 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2014년 기준 L씨가 취업한 중진공 종업원수는 8백여명. 인당 평균급여는 7천 2백여만원이다.
▲ 중진공 평균급여 7천 2백만원 2014년 기준 L씨가 취업한 중진공 종업원수는 8백여명. 인당 평균급여는 7천 2백여만원이다.
ⓒ 중소기업진흥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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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L에 대해서는 감사보고서 상 '반대의사'란 표현이 거듭해서 등장한다. 먼저 인사팀장 D가 등장한다. 그는 L에 대한 서류전형 불합격 결재를 직속상사인 실장이 반려하고 합격시킬 것을 지시하자 부이사장을 찾아가 '구두로 한 차례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이후 최종면접 후 불합격 결정된 L에 대해 이사장이 합격으로 처리할 것을 지시하자 상사인 실장을 통해 이사장에게 '구두로 한 차례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이사장이 재지시하자 따랐다.

인사팀장의 상사인 운영지원실장 E도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L을 이사장이 합격처리하라고 지시하자 '구두로 한 차례 반대의사'를 표시하였으나 이사장이 재지시하자 따랐다.

감사보고서 상의 압권은 L을 청탁한 주체에 대한 표기다. 2012년 부당하게 합격시킨 3명(F, G, K)에 대해서는 청탁의 주체가 명기돼 있다. G는 전 이사장이 청탁했다. K는 이사장이 기획재정부에 근무할 당시 동료로부터 청탁을 받았다. F는 '이사장이 국회의원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고 진술했지만 누군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함'으로 기록돼 있다. 어쨌든 국회의원이 청탁했다.

그럼 문제의 L은 어떻게 기록돼 있는가. L은 이사장이 '외부로부터 청탁을 받아 이를 인사담당자에게 전달하는 등'으로 기술돼 있다. 감사원은 그 '외부'를 '국회의원인데 기억하지 못함' 정도로도 기술하지 못했다. 그 '외부'를 당시 부이사장과 실장은 감사원 진술에서 '최경환'이라고 증언한 것이다. 

L은 최경환 지역구 인턴 근무, 과연 무관한가

감사보고서에 L로 등장하는 최경환 부총리의 전 인턴 황모씨의 트위터. 인턴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11년 그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큰 사람 밑에서 근무한 그는 중진공에 입사했다.
▲ "나도 클 수 있을까?" 감사보고서에 L로 등장하는 최경환 부총리의 전 인턴 황모씨의 트위터. 인턴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11년 그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큰 사람 밑에서 근무한 그는 중진공에 입사했다.
ⓒ L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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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인사청탁 의혹에 대해 최 부총리는 부인하고 나섰다. 그는 8일 보도자료를 내고 "김범규(전 중진공 부이사장) 증인의 주장과는 상반되게 당시 인사권자였던 박철규 전 이사장이 '최경환 의원으로부터 인사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진술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주장했다. 최 부총리 주장이 맞다면 박 전 이사장은 왜 인사청탁한 사람을 거명하지 못하는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당장 언론에서도 최 부총리에 대한 의혹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0일자 사설 '최경환 부총리의 취업청탁 의혹 중진공뿐인가'에서 "이미 공공기관에는 '최경환 인사'라는 말이 적잖게 나돌고 있다"며 지적한 뒤 "박 전 이사장의 부당지시 선에서 이 사건을 적당히 매듭지으려 한다는 인상을 줄 경우 법의 잣대가 권력 앞에서 무뎌졌다는 비판과 함께 최 부총리에 대한 의혹은 더 커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아예 '최경환 게이트'라고 규정했다. 10일자 사설 '부당 압력과 거짓말이 키운 최경환 게이트'에서 "검찰은 구체적인 증언까지 나온 만큼 최 부총리를 수사해야 마땅하다. 한 점 의문이 남지 않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 애꿎은 사람을 희생양 삼아 꼬리 자르기로 끝낸다면, 청년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최 부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감사원 감사결과 2013년 중진공 신입 공채에 합격한 36명 중 1명인 L은 취업청탁 및 총 3차례에 걸친 점수조작(서류 2회, 면접 1회)을 통해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최종면접관이었던 중진공 간부들은 외압의 실체를 '최경환 부총리'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문제의 L씨는 최 부총리 지역구 사무실에서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그는 현재 중진공 대구경북연수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연수원의 위치는 경북 경산시로 최 부총리 지역구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최경환, #중진공, #L, #채용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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