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질문이 있는 교실>, 유동걸 지음(한결하늘)
▲ 질문이 있는 교실 책 표지 <질문이 있는 교실>, 유동걸 지음(한결하늘)
ⓒ 한결하늘

관련사진보기


'질문이 있는 교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올해 출간된, 같은 제목의 책 세 권이 뜬다.  9월 1일 출간된 유동걸 교사의 책 외에도, 7월에 하브루타교육협회에서 '질문이 있는 교실' 초등편과 중등편 시리즈 2권을 출간했다. 이미 서울시교육청, 광주교육청, 충남교육청 등이 중심이 되어 '질문이 있는 교실 만들기'를 중점 추진 과제로 선정하기도 했으니, 바야흐로 우리 교육계에 '질문' 열풍이 불어닥치고 있다고 할 만하다.

하브루타교육협회는 유태인의 하브루타 교육법을 연구해 온 단체로, 협회에서 펴낸 '질문이 있는 교실' 시리즈는 이 교육법을 수업에 적용한 사례를 담은 책이다. 시리즈의 초등편 저자인 하브루타수업연구회는 '듣는 공부를 말하는 공부로, 혼자 하는 공부를 함께 하는 공부로, 하나의 정답을 다양한 해답으로, 지식을 외워서 시험 보는 교육에서 학생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하브루타 정신에 공감하고 모인 교사들의 연구 모임'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다. 입시 위주 한국 교육을 우려하고 오랫동안 우리 교육계의 화두가 되어 온 '자기 주도 학습', '질문과 토론으로 소통하는 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노력이 이 낯선 이름의 유태인 교육법에서 그 해답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동걸 교사 역시 우리의 교육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의 출발점은 좀 다르다. 그는 일방통행식 우리 교육 현실에서 토론 수업의 씨를 뿌리기 위해 오랫동안 고군분투해 온 토론 교육 1세대 교사이다. 우리 교육에 토론이 존재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비민주적,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교육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동걸 교사의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단히 밀착되어 있다. 그가 토론 교육 연구 교사 모임을 '토론의 전사'라고 명명한 것에서도 토론 문화가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그 나라의 민주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인식 아래 토론 교육을 확산하는 일은 곧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전사를 길러 내는 실천적 과업이라는 의식이 엿보인다. 그리고 그 경험을 집대성한 것이 <토론의 전사> 1, 2권과 <공부를 사랑하라>는 책이었다.

그런 그가 '토론'에서 '질문'으로 그 화두를 옮겨 갔다. 계기가 된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이다.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가 불러일으킨 각성은 우리 교육을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누게 만들었다. 올봄에 출간한 <강자들은 토론하지 않는다>에서 토론하지 않는 문화와 세월호 참사의 관계를 파고들었던 유 교사는, 이 책 <질문이 있는 교실> 서문에서 "'질문이 있는 교실'의 뿌리는 세월호에서 시작되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로 질문과 소통을 꼽는 유 교사에게 세월호 참사는 토론 이전에 질문이 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순응주의적 교육에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어야 한다는 통찰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이제 초점은 토론에서 질문으로 넘어갔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까? 그건 잘 모르겠다. 밝혀질지도, 밝혀진다 하더라도 세상이 얼마나 좋아질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그릇된 편견과 왜곡된 논리로 재포장되어 물밑으로 가라앉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질문이 있는 교실>, '질문은 합리적 의심이다' 중에서)"

이것이 우리가 현실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또 질문해야 하는 이유라고 유 교사는 말한다. <강자들은 토론하지 않는다>가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촉발한 유 교사의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라면, <질문이 있는 교실>은 유 교사 스스로 구한 대답에 해당하는 책이다.

유 교사가 생각하는 질문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토론의 전제이자 토론의 과정을 이끄는 동력이다. 그는 질문의 힘과 본질에 대해 '사랑, 치유, 자유, 합리적 의심'이라는 4가지 키워드를 부여하여 그 의미를 궁구해 낸다. 2장에서는 질문이 있는 학교를 실현하기 위해 학교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고, 3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질문이 있는 교실을 위한 수업 방안을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질문을 위한 환경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질문의 방법론을 펼치고 있다. "우리가 질문을 한다는 것은 단지 모르니까 가르쳐 달라는 투정이 아니다. 질문이란 본질에 대한 물음이며 그것은 나와 이 세계가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에 대한 지난한 사고의 과정이고 그 사고의 흐름을 한 차원 높게 바라보는 과정이다(<질문이 있는 교실>, '질문은 고차원적 앎이다' 중에서)". 질문과 대답이 상호 작용하며 인식을 확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으로 승화될 때, 질문은 혁신과 변화의 힘이 된다.

올해 초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정책 과제로 '질문이 있는 교실, 우정이 있는 학교, 삶이 있는 교육'을 내걸었다. 이에 화답하는 듯한 현장 교사의 책이 누구보다 반가웠을 조희연 교육감은 추천사에서 이 책이 어둔 밤길을 밝히는 등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질문이 있는 교실'을 핵심 과제로 내세운 장휘국 광주시 교육감 역시 이 책이 창의적인 미래에 대한 질문이 샘솟는 교육의 길을 찾아가는 나침반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는 추천사로 공감을 나타냈다.

저자 유 교사는 국민TV에 출연하여 조희연 교육감의 정책 과제에서 영감을 얻어 질문의 가치와 의미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집필 일화를 소개했다. 이렇듯 <질문이 있는 교실>이 현장 교사의 고민과 교육 혁신을 위한 정책 구상이 절묘하게 일치하는 지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책이 우리 교육 현실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너무 어렵고 거대한 교육 담론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내용들은 무수한 예시를 통해 풍성하고 흥미롭게 전달된다. 저자가 교단에서 보낸 시간은 실천적 사례로 집적되고, <대장금>이나 <미생> 등 저자가 접한 다양한 대중문화들은 적절하고도 흥미로운 소재로 책 속에 녹아들어 있다.

유 교사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예를 들어, <대장금>에서 한 상궁이 어린 장금에게 물을 떠오라고 시키는 대목을 소개한다. 수랏간 범생이 장금이 고분고분 순종하며 한 상궁의 반복적 지시를 따르다 못해 급기야 원망에 찬 항변에 이르게 되었을 때, 장금의 질문이 시작된다. 질문은 답을 품고 있고, 그 답은 지혜와 사랑을 장금에게 깨우쳐 준다. 읽는 독자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책장은 술술 넘어가고 심오한 철학적 통찰은 청량음료 마시듯 가볍고 유쾌하게 마음속으로 흘러든다.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 있다."

유 교사가 국민TV에서 소개한 정약용의 말이다. 또한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라가 자주성을 잃으니 학교도, 교육도, 선생도 자주성을 잃어버렸고, 교사가 자주적이지 못하니 학생들도 질문과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학생들이 질문을 찾으면 자주적인 인간이 되고, 학생이 자기 삶과 현실의 주인이 된다면 학교도, 나라도 바뀐다. 정치가 달라지고 국제 정세도 바꾸어 나갈 수 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영 불가능한 꿈도 아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학생들이 스스로 묻고 답을 찾는 교육이 가능한가이다."

순응의 물밑바닥에 기울어진 몸을 눕히고 있는 우리 교육을 고민해 본 교사라면 이 책에 조언을 구해도 될 성싶다.


태그:#교육, #질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의 의무를 다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