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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음에 커서 붓글씨를 쓰고 바둑을 잘 두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외손자 우혁이 이다음에 커서 붓글씨를 쓰고 바둑을 잘 두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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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화요일은 내 외손주 우혁이의 첫돌이다.

재작년, 그 난리(?)를 치고 치른 결혼식(관련 기사 : "신부 어머님이 이상해요"... 혼이 쏙 빠지다) 이후 지난해 가을에 태어났다. 추석이 코앞이니 춥지도 덥지도 않고 먹을거리마저 풍성한 계절이니 먹을 복은 타고난 셈이다. 울산에서 태어나 조리원에 한 달을 지내다가 외가인 부산의 우리집에 와 몸조리를 하고 간지도 벌서 한 해가 지났다.

내 아내의 꿈에 담을 넘은 호랑이가 갑자기 발목을 물었다는 태몽을 꿔 뱃속에 있을 때에 우리는 그를 '호발'이라고 부르며 건강하게 태어나길 기원했다. 다행히 산모도 아기도 모두 건강했는데, 태어나기 두어 달 전에 검진 결과 의사가 "태아가 거꾸로 섰다"며 "좀 더 두고 보자"고 했었다. 그런데 출산이 임박해도 아기가 제자리로 돌아서지 않아 할 수 없이 수술로 태어났다.

 갑오년 청마해에 태어났다
▲ 외손자 탄생 갑오년 청마해에 태어났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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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내가 태어날 때에도 거꾸로 태어났다. 음력 유월이 가까운 한여름 밤의 소동을 지금도 가끔씩 누님과 숙모님들이 말씀하신다. 그때는 집에서 출산하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어머님께서 엄청 고생하셨단다.

태어날 때부터 거꾸로 태어나서 그런지 나는 가끔 엉뚱한 발상으로 보통 사람들과 좀 다르게 일을 하곤 한다. 그러면 친척들은 '역시 거꾸로 태어나서 그렇다'며 웃곤 한다. 나 때문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아내가 우혁이를 보며 한마디한다.

"거꾸로 태어난 너의 별난 외할배 때문에 너도 고생 많았다."

손주 방에 금줄을 치다

 금줄이 처진 방문에 붓을 걸어두었다
▲ 붓과 금줄 금줄이 처진 방문에 붓을 걸어두었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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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혁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올 때 나는 시집가기 전에 딸이 기거하던 방을 깨끗이 청소했다.

좀처럼 집안일을 하지 않던 내가 옷장과 서랍의 먼지는 물론 천장의 전등까지도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흔하게 보았던 금줄을 만들어 방문에 매달았다.

고추로 유명한 시골 형님 댁에서 가져온 영양고추를 숯과 함께 볏짚 대신 흰줄에 끼워 정성껏 만들었다. 예전엔 이기가 태어나면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태어나서 21일 동안 집 대문에 약간 늘어지게 걸어둬 아무나 드나들지 못하게 해 부정을 방지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여도 모양과 걸어두는 방법은 비슷했다. 내 고장 영양에서는 금석줄이라고 했으며 볏짚밑동 쪽 끝을 반 뼘쯤 남기면서 새끼를 꼬아 가닥 사이에 아들이면 붉은 고추와 검정 숯을 끼워 매달았고 딸이면 푸른 솔가지를 덧달았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드문 금줄이라 아내도 신기해했다. 사위도 신경써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우리 집은 날씬하다?

건강하게 태어났다.
▲ 외손자 우혁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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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가족은 모두 호리호리하다. 반려견으로 오랫동안 함께 사는 보롱이도 그렇다.

아내가 시집 온 처가에는 모두가 몸집이 통통한데 아내는 야위었고 심지어 처남 집에서 얻어 온 팡팡한 화분의 화초도 우리 집에선 언제 부터인가 키만 삐쭉하게 커 올라간다. 물론 베란다에 키우는 다른 많은 화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장가를 온 우리 사위 최서방도 키만 큰 마른 체격이다.

외손주 우혁이가 입이 짧은지 아니면 내 외손자라 그런지 조금 야윈 듯해서 마음에 걸린다. 보통의 아이들은 애기 때는 분유를 잘 먹어 살집이 붙어 팔다리가 두세 겹으로 주름이 잡혀 통통하지만 우혁이는 겹친 살집도 없어 가냘프다. 이건 외할아버지만의 마음인가?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못 다한 것에 대한 나의 바람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랐다
▲ 유모차 탄 우혁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랐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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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둑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다.

지금도 거실에서 TV를 보면 가끔씩 뉴스나 야구 중계를 시청하지만 늘 바둑채널로 고정하고 밤낮으로 대국을 감상한다. 그러다 보면 "또 바둑이냐"라는 아내의 핀잔을 듣곤 한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나면 그림도 그리다가 붓글씨를 쓰기도 한다.

금줄이 처진 문기둥에다 붓 한 자루를 걸어뒀다. 언젠가 전남 담양에서 사온, 내가 아끼는 붓인데 혹시나 거꾸로 태어난 외가의 영향인 외택이 조금이라도 있어 붓글씨를 잘 썼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서예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보상심리일까. 뭐, 그런 생각이었다. 또 하나는 바둑 역시 좋아만 하지 제대로 쌓은 실력이 못되니 그 역시 같은 생각이어서 투명하고 자그만 통에다가 흰 바둑돌 셋, 검은 바둑돌 셋을 담아 방에 뒀다.

 외손자가 모자를 쓰고 외가에 왔다
▲ 내가 최고 외손자가 모자를 쓰고 외가에 왔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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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는 딸과 함께 우리 집에서 두어 달 정도 있다가 울산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우혁이가 떠난 집안은 썰렁했다. 허전한 마음이 괜히 울적해서 딸에게 전화해 "우리가 우혁이를 키워 줄 테니 네가 다니던 직장에 복귀하라"고 말했다. 사위와 의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애 키우기에 전념하기로 해서 어쩔 수 없이 외손자가 보고 싶을 때 두세 번 주말을 이용해서 아내와 같이 다녀오곤 했다.

외손주 돌잡이에 거는 기대

그래서 나는 우혁이의 첫돌 돌잡이에 다른 물건들과 함께 붓과 바둑돌을 함께 놓아볼 것이다. 내가 꼭 하고 싶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해 아쉬웠던 그것을. 외손주 우혁이는 과연 잡을 것인가.

 어느덧 한해가 지나 첫돌을 맞았다
▲ 외손자 우혁이 어느덧 한해가 지나 첫돌을 맞았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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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외손자, #우혁이, #첫돌, #돌잡이,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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