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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보물 제78호)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보물 제78호)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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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 속에 건물도, 사람도 사라진 옛 절터를 찾아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잃어버린 세월의 파편에 울컥 가슴에 치미는 슬픔도 느껴지지만, 이 세상에 와서 선물 같은 삶을 살다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치를 사색하게 된다. 절터에서 역사 속으로 들어가 옛사람이 되어 보고 싶은 하루다.

지난 10일 오전 8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원주 거돈사지(사적 제168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께. 현계산 기슭의 작은 골짜기를 끼고 자리 잡은 거돈사는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지어져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발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 절이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는 하나 언제 없어졌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멈춰 버린 듯한 절터 풍경, 그 쓸쓸함에 대하여

  원주 거돈사지(사적 제168호)에서. 우리 일행이 삼층석탑과 금당터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원주 거돈사지(사적 제168호)에서. 우리 일행이 삼층석탑과 금당터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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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돈사 절터에는 금당터, 강당터, 회랑 등이 확인되었다. 멀리 절 뒤편 언덕 위로 원공국사탑(보물 제190호)을 재현한 원공국사의 사리탑이 보인다.
 거돈사 절터에는 금당터, 강당터, 회랑 등이 확인되었다. 멀리 절 뒤편 언덕 위로 원공국사탑(보물 제190호)을 재현한 원공국사의 사리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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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달려와 그런지 더욱 설레는 마음을 안고 절터 동쪽에 위치한 원공국사탑비(보물 제78호)를 먼저 보러 갔다. 비석은 고려 현종 16년(1025)에 세운 것으로 고려 초 고승인 원공국사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비석 받침돌은 용의 머리 모양에 양쪽 귀가 물고기 비늘같이 생겨서 인상적이었다.

육각형 거북등무늬에는 '卍'자와 연화문을 돋을새김했고, 구름을 타고 여의주를 얻기 위해 다투는 것 같은 두 마리 용의 모습이 새겨진 머릿돌은 생동감이 넘치면서 화려하다. 비문은 우리나라 사학의 원조라 할 수 있는 9재학당을 세워 당시 해동공자로 불리던 최충이 글을 짓고 예빈승을 지낸 김거웅이 글을 썼다. 이 비문 외에 김거웅의 행적에 대해 전하는 기록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고려 시대의 금석문 중에서 매우 뛰어난 글씨체로 평가되고 있다.

아직도 여름이 묻어나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절터는 깊은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한때는 고려 초기 불교계의 중심인 법안종의 주요 사찰이었던 곳이 저항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그대로 멈춰 버린 듯한 절터 풍경에 어느 날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쓸쓸한 삶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역사의 흔적을 남겨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인생의 진솔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보물 제750호) 뒤로 있는  금당터에는 부처님을 모시던 불상 대좌가 남아 있다.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보물 제750호) 뒤로 있는 금당터에는 부처님을 모시던 불상 대좌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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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탑식 가람배치 형식을 지닌 거돈사는 석축을 높이 쌓아 조성한 평지에 중문을 세운 자리가 있고 그 뒤로 삼층석탑, 금당터, 강당터, 그리고 승방터와 회랑, 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우리는 이중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삼층석탑 (보물 제750호) 앞에 이르렀다. 부처님을 향한 깊은 신심을 표현한 것일까. 사각 축대 안에 흙을 쌓고 그 위로 탑을 세운 점이 참 특이하다. 그리고 탑 앞에 연꽃 무늬가 새겨진 배례석이 놓여 있었다. 아마 예불을 드릴 때 향을 피우던 곳으로 짐작되는데 소박하면서 이쁘다.

절의 중심 건물인 금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2층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당터에 남아 있는 불상 대좌가 높이 2m 정도 되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어 단층 목조 건축으로는 불상 높이를 수용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절 뒤편 언덕 위에는 원공국사탑(보물 제190호)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원주시에서 큰 돈을 들여 재현한 작품이다. 원래 있던 원공국사 사리탑은 일제 강점기 때 어떤 일본인이 어처구니 없게도 서울에 있는 집으로 가져갔던 것을 해방 후 1948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왔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나라 잃은 설움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기막힌 사연이다.

법천사지 나서며 <가시나무새> 노래를 떠올리다

손수 만든 두부로 요리한 해수두부전골이 담백하면서 아주 맛있었다.
 손수 만든 두부로 요리한 해수두부전골이 담백하면서 아주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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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천사지(사적 제466호)에 도착하니 발굴조사가 한창이었다. 멀리 동편 산기슭에 있는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가 아스라이 보인다.
 법천사지(사적 제466호)에 도착하니 발굴조사가 한창이었다. 멀리 동편 산기슭에 있는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가 아스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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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출출해서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 법천사지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국산 콩과 바닷물로 이 집에서 손수 두부를 만들어 요리한 해수두부전골은 담백하면서 아주 맛났다. 주인이 양봉도 겸하고 있어 설탕 대신 꿀을 넣어 요리해서 그런지 반찬들이 향긋하면서 맛깔스럽고 감칠맛이 났다. 점심을 맛있게 먹어 한결 즐거워진 마음으로 법천사지(사적 제466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를 향했다.

명봉산 자락에 자리한 법천사지에 도착하니 (재)강원고고문화연구원에서 시행하는 발굴 조사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절터 동편 산기슭에 있는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만 보고 내려와야 했다. 신라 말 산지 가람으로 세워진 법천사는 고려 시대에 이르러 법상종의 대표적인 사찰로 왕실과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아 번성한 것으로 보인다.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는 고려 선종 2년(1085)에 지광국사 해린의 삶과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옆에 세웠다. 지광국사탑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1915년에 되돌려 받아 현재는 경복궁 경내에 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 거북의 등에 王자를 새기고, 몸돌 양 옆면에는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 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턱 밑으로 달려 있는 길다란 수염이 인상적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 거북의 등에 王자를 새기고, 몸돌 양 옆면에는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 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턱 밑으로 달려 있는 길다란 수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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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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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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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체 높이는 4.55m다. 거북의 등에 王자를 새기고 머릿돌에는 구름 속의 용과 연잎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 용을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몸돌 양 옆면도 아름답다. 비의 뒷면에는 1370여 명의 제자들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부릅뜬 눈에 턱밑으로 기다란 수염이 달린 얼굴 모습 또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유난히 잠자리들이 눈에 띄었다. 생각지도 않게 손등에 사뿐 내려앉아 기쁨을 주기도 하고, 춤추듯 신나게 맴돌다 발굴 조사 현장 주위에 쳐 둔 줄 위에 한 줄로 앉아 있곤 했다. 그 정겨운 풍경에 가을이 우리들 곁으로 성큼 다가왔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법천사지를 떠나면서 문득 <가시나무새>의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가득 채워져 있으면 담을 수 없는 법, 내 마음을 더 비워야겠다.


태그:#거돈사지, #법천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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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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