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족·국제

포토뉴스

지난 4월 25일, '세계의 지붕' 네팔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지 3개월여가 지났습니다. 이후 평화여행단체인 이매진피스 임영신 공동책임자와 신주희씨는 네팔로 달려가 공정무역 생산자들 및 신두팔촉 피해지역 현황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이매진피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네팔 현지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매진피스의 동의를 얻어 최근 네팔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편집자말]
3개월 전, 매일 뉴스를 뒤덮으며 세상의 통점을 아프게 누르던 네팔의 소식은 모든 속보와 타임라인에서 스러지며 먼 곳의 일이 돼 버렸다. 그러나 지진 100일 후, 네팔의 사람들 속에서 마주하는'4월의 지진'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밤 통증을 유발하는 몸의 상처 같은 것이었다.

지난 4월, 지진 직후의 카트만두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간신히 구한 차를 타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는 길, 거리와 광장 곳곳은 온통 폐허와 텐트의 물결로 덮여 있었다. 무너진 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매캐한 먼지와 냄새로 마스크 없이는 돌아다닐 수 없던 거리, 언제 또 올지 모를 지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질 무렵에도 집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불안을 달래던 사람들, 금이 가고 기운 집들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집을 코앞에 두고도 텐트촌에서 불안의 날들을 견디던 카트만두의 풍경들은 지진의 크기를, 통점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지진 직후 찾아간 카트만두. 시장에 차려진 임시텐트촌 앞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소식을 듣고 있다. ⓒ 신주희
더르바르 광장으로 향하는 길, 카트만두 곳곳의 건물이 완파되었다. ⓒ 신주희
지진 100일 후 다시 찾은 카트만두. 불과 백일 남짓한 시간이 흘렀건만 사람들은 곳곳의 폐허를 차분히 정리해 내고 난민촌을 이루었던 광장들 또한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진이 가져다 준 아픔의 통계는 도무지 줄어들 줄을 몰랐다.

네팔 정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지난 4월 25일(강도 7.8), 5월 11일(강도 7.9) 두 차례의 고강도 지진으로 인한 네팔의 사망자수는 8942명, 부상자는 약 2만2천 명, 파손된 가옥은 무려 84만 채에 달했다(6월 15일자 정부발표 기준).

무엇보다 집을 잃은 채 길 위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재민의 규모는 약 8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무려 넉 달 가까운 기나긴 우기를 황막한 길과 산자락에서 보내고 있는 사람의 수가 무려 네팔 인구의 4분의 1에 달한다는 뜻이었다.

네팔 정부는 역사상 82년만의 지진, 사상 최악의 재해로 평가되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만 50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재건을 위해 필요하다고 파악되는 비용은 무려 67억 달러(7조 4300억 원)로 추산한다.

긴박했던 긴급 구조에서 구호로, 또 이제 재건으로 고통을 대처하는 걸음은 조금씩 긴 호흡으로 치환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고통의 통계는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를 채우는 새살처럼 자꾸만 웃자라는 듯했다.

사망자 약 70%가 '여성과 아이들'
박타푸르의 더르바르 광장으로 가는 길, 한켠에 건물들의 잔해들을 모으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냈다. ⓒ 신주희
무너진 흙벽에서 풀들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 신주희
숨진 사망자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 8193명을 가만히 살펴보면 희생자의 약 45%가 남성으로 3696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성은 4497명으로 전체 희생자의 약 54.8%(성인 3145명, 어린이1352명)를 차지하고 있었다(5월 19일, 네팔 경찰 발표자료 기준).

그러나 이 통계를 성별이 아니라 여성과 어린이로 변환해보면 아픔의 등고선은 보다 선명히 드러난다. 전체 희생자의 약 70%(69.8%)에 달하는 5726명의 사망자가 여자와 아이들이다. 지진이든, 전쟁이든 삶의 피할 수 없는 고통들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를 여지없이 가장 깊게 할퀴고 마는 것이다.

고통은 죽은 자의 몫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난 7월 25일, 지진 직후부터 현장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해 온 네팔 옥스팜의 지진 100일 리포트에 의하면 네팔의 이재민 중 약 40%가 여성 가장 세대였다. 문제는 이들 여성과 아이들이 보안은 꿈꿀 수 없는 허술한 임시 주택 속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성폭력의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네팔 14개 지역 어린이 1838명을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그것이 기우가 아님을 분명히 마주하게 된다.

임시거주지에서 아이들을 위협하는 것은 성폭행 같은 이재민촌에서 자주 발생하는 범죄들이다. 돌라카 지역의 한 소년은 "임시 천막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자기 때문에 늘 엄마와 누나를 지켜야 해요"라며 불안을 호소하기도 했다. 트라우마 치유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그려보인 그림들은 지진의 두려움과 버텨내야 할 앞날에 대한 걱정을 그대로 담고 있기도 하다.

"지진이란 게, 사람만 무서운 게 아니었나 봐요"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네팔의 지진은 4월과 5월, 두 차례의 거대한 강진뿐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진과 함께 100일을 살아낸 네팔 사람들에게 '지진'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매일 찾아오는 여진과도 같은 통증이었다. 강도 4.0 이상의 여진만을 기록하고 있는 네팔 지진센터의 여진기록은 100일간 무려 140여 차례.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여진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처럼 찾아왔다. 

집 안에 있어도 집 밖에 있어도 안심할 수 없는 어떤 불안. 그것은 다만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커피'와 함께 신두팔촉 커피 농가들을 방문하며 피해 현황을 묻던 여정, 한 농부가 마당의 소가 겁먹은 눈으로 사람을 피하니 애닳는 목소리로 소들의 상태를 설명해 주셨다.

"지진이란 게 사람만 무서운 게 아니었나 봐요. 저 어미 소가 지진이 나고 두 달 동안 젖이 나질 않았어요. 염소들도 마찬가지구요. 전에 없이 사람이 다가가면 손길을 피하고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요. 소도 염소도 다 아직 아물지 않은 거죠."
"저 어미 소가 지진이 나고 두 달 동안 젖이 나질 않았어요. 염소들도 마찬가지구요. 전에 없이 사람이 다가가면 손길을 피하고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요. 소도 염소도 다 아직 아물지 않은 거죠." ⓒ 신주희
하물며 아이들이야. 겉으로는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고, 엔지오들이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아이들을 만나가고 있지만 여진 위의 치유작업은 흔들리는 땅 위에 짓는 집만큼이나 더디고 느리기만 했다.

그러나 그 산을 내려오며 카르마 파운데이션의 길부씨는 말한다.

"모두 어렵죠. 텐트촌의 사람들도, 산위의 사람들도. 하지만 기억해야 해요. 이 어려움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이 어려움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문득 그의 말에 저 두려움의 시간을 버텨내고 아이들과 가축들의 아픔까지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은 거대한 엔지오가 아니라 산 위의 농부들이었음을 깨닫는다. 한 그루의 커피나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무너진 마당에 옥수수를 널어 말리며 일상을 일으켜 가는 저 사람들 속에 더디고 느리지만 희망이 있음을. 

'나는 지금 네팔에 있습니다'

모든 여정을 마치던 날, 카트만두 한 켠에 자리한 공정무역 카페 카르마 커피에서 소셜투어의 라지씨와 길부씨를 다시 마주했다. 지나온 여정들과 앞으로 나누어갈 여정을 나누는 자리. 라지는 아주 특별한 커피라며 한 잔의 따뜻한 커피를 건네왔다.

"지진 속에 살아남은 가티의 커피 열매들이에요 . 너무 소중해 정성껏 로스팅해 가티를 함께 돕는 사람들과 나누고 있어요."

한 잔의 커피에 가티의 검은 어둠 속에 번지던 태양광 불빛이 따스하게 살아오는 듯했다. 한밤중에 도착한 우리를 위해 삽을 들고 나와 돌무더기로 막힌 길을 열어주고 보건소 침대를 내어주며 환히 웃던 가티 사람들 웃음이 스민 듯도 했다.

한 잔의 커피를 나누며 그 마을에 다시 세워갈 학교와 도서관,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갈 놀이터 이야기에 지진은 다 지난 일인 양 마음이 밝고 환해졌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카페의 한 친구가 우리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넸다. 종이 위에 한 문장이 선명했다.

" I am in Nepal, now(나는 지금 네팔에 있습니다)."
소셜투어의 SNS 사진첩에는 캠페인에 참여한 각국의 사람들이 가득하다. (출처: 소셜투어 페이스북) ⓒ 소셜투어 페이스북
지난 7월, 소셜투어가 시작한 SNS 캠페인에 올라온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의 사진이 종이위로 겹쳐왔다. 우리 또한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을 담듯 정성껏 사진을 나누었다. 종이를 건네받으며 라지가 이야기한다.

"지진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이 네팔에 오는 일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 여전히 사람들이 있는 걸요. 이렇게 수많은 벗들이 여전히 네팔에 오고 함께 하고 있잖아요. 그걸 알리고 싶어서, 더 많은 벗들을 초대하고 싶어서 시작한 캠페인이에요."

내년 1월의 여정을 기약하며 네팔을 떠나는 길, 한 장의 종이 위에 적혀있던 한 문장은 우리의 일상 깊은 곳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지진의 폐허와 무너진 집들을 다시 세워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은 어쩌면 네팔을 기억하는 새로운 일상을 꾸려가는 일일 듯하다.

신두팔촉 커피 농부들이 지진 속에서 지켜낸 커피나무를 기억하며 한 잔의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일, 산사태로 무너진 포카라 룸리 마을에서 만들어진 공정무역 가방 하나를 사는 일, 히말라야를 향해 다시 배낭을 꾸리며 스스로 마을과 사람들을 세워가는 네팔의 공정여행을 택하는 일, 그 배낭 속에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작은 마음과 온기를 담아 길을 나서는 여정이 네팔 사람들에게 가장 크고 소중한 위로가 될 것이므로...
네팔의 재건을 도울 수 있는 '공정한 일상'
1. 네팔 공정무역 제품들 선택하기

▹ 공정무역 그루 http://www.fairtradegru.com
네팔의 여성 수공예품 생산자들을 지원할 뿐 아니라 모금과 수익금 지원을 통해 지진 피해 여성들을 돕고 있습니다.

▹ 아름다운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 http://www.beautifulcoffee.com
마을의 90%까지 무너진 곳들이 속출하고 가장 사상자 피해가 컸던 신두팔촉 지역 커피 농부 450가구 뿐 아니라 지진 피해 농부들을 위해 긴급식량지원, 씨앗 지원, 커피 묘목지원 및 펄핑머신 공급 등 다양한 지원으로 장기적인 재건을 돕고 있습니다.

2. 스스로 돕는 네팔 사람들 _ 함께하는 공정여행

▹ 포카라 룸리 지역 및 신두팔촉 산간마을을 지원하는 공정여행사 스리시스터즈 www.3sisters.com

▹ 신두팔촉 가티 굼탕지역 9개의 학교를 세워가는 소셜투어 공정여행 www.socialtours.com

▹ 카르마 커피 : 가티 지역 커피 농부지원 및 공정무역 커피 투어 www.karmacoffee.com

트래킹 안전관련 조사
최근 네팔 정부는 미국을 기반으로 한 미야모토 인터내셔널 엔지니어링에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에 대한 안전검사를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가장 인기 있는 안나푸르나/에베레스트 트래킹 코스에 대해 트래킹을 재개해도 좋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 안나푸르나 서킷 안전도 검사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래킹 안전도 검사
* 이매진피스는 환경재단 아름다운 커피와 함께 아름다운 커피 협동조합 커피 농부들 및 가티 굼탕지역 지진피해 학교 및 보건소에 360개의 태양광 램프를 전달했습니다. 또 멜람치 지역 175세대가 있는 커피마을에 워터파이프 시스템을 지원하는 일을 카르마 파운데이션과 함께 진행중에 있습니다. 2016년 1월 18일부터 28일까지 가티 굼탕 지역에서 학교 도서관 재건 및 트라우마 힐링캠프,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함께 해주신 귀한 걸음, 참 고맙습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네팔, #네팔지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을 바꾸는 여행, 세상을 돌보는 일상의 여행자, 희망의 지도를 그려가는 느리고 더딘 길 위의 삶, IMAGINE PEACE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