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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태항산 팔리구 입구 풍경
 중국 태항산 팔리구 입구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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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풍경은 어느 도시나 그저 그렇고 그렇다. 목적지는 태항산, 근래 개방되었다는 새로운 관광지다. 북경 공항에 내린 일행들은 북경서역에서 남쪽으로 달리는 고속철을 탔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중국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고속철이다. 그러나 역 대합실은 기다리는 승객들에 비해 턱없이 좁고 편의시설도 부족하여 와글와글한데다, 무덥고 짜증나는 환경이었다.

"이렇게 무더운데 선풍기도 없다니, 중국이란 나라 아직은 멀었구먼."

일행들이 짜증스런 불만을 드러낸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였지만 냉방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그야말로 찜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국인들은 불만스런 표정 없이 무덤덤하기만 하다. 그들 특유의 여유롭고 넉넉한 만만디문화가 빚어내는 표정이리라. 고속철을 타러가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태항산으로 가는 끝없는 밀밭 평야

"뭐야! 고속열차 타는데 웬 검색이 이렇게 심하지?"

흡사 국제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처럼 짐이며 몸수색을 철저하게 했다. 국민 총생산이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이며 머지않아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이 시대의 거대제국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열차에 타고 내리기 편리하게 만들어진 승강장에서 고속철에 탑승하자 분위기가 확 바뀐다. 깔끔하고 제법 넉넉한 실내와 좌석이 조금 전까지의 짜증스럽던 기분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열차는 아주 부드럽게 출발했다. 바퀴가 구르는 진동이나 흔들림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객실 천장에 붙어있는 속도계는 금방 시속 200km를 돌파하여 300km에 육박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창문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이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열차는 가끔씩 300km를 돌파하기도 했지만 대개 285~295km대로 달렸다.

고속철 창문밖으로 바라본 끝없이 펼쳐진 밀밭 평야
 고속철 창문밖으로 바라본 끝없이 펼쳐진 밀밭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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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시내를 벗어나자 창밖으로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졌다. 반듯반듯하게 경지정리가 잘된 밀밭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풍경이 참으로 부럽기도 하고 경이롭다. 열차가 달리고 있는 이 평야지역이 바로 중원이다. 중원은 중국의 역사에서 항상 중심에 있었다. 중원을 차지하는 세력이 바로 거대한 중국대륙을 차지하는 지배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벼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연중 강우량이 적어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밀농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선 옛날부터 강남의 주식은 쌀이요 강북의 주식은 밀이라고 했다. 강 남북의 경계선이 되는 강은 장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길이 6300km의 양자강을 일컫는 이름이다. 열차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밀밭 풍경만을 보여주면서 무려 3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신향역에 도착했다.

거대한 산맥의 귀퉁이를 돌아보며 만난 색다른 풍경

"오늘은 이 도시에서 주무시고, 내일 가시는 태항산은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산이 아닙니다. 산맥이지요, 그 규모와 면적이 거의 남한의 크기와 비슷할 겁니다."

도착 무렵 가이드가 안내한 말이다. 신향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행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태항산으로 향했다. 태항산은 그냥 불쑥 솟아 있는 한 개의 산이 아니었다. 하북성과 하남성, 산동성과 산서성 등 4개의 성에 남북 400km 동서 250km에 걸쳐, 높이 1500~2000m의 산군으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험준한 산맥이었다.

먼저 찾은 곳은 팔리구 구련산, 하남성 쪽의 남태항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날따라 안개가 자욱했다. 골짜기로 들어서자 좁은 길 양쪽이 대부분 바위절벽들이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모습에 조금은 긴장이 되었지만 무사히 주차장에 도착했다.

팔리구 광장 건물 안에 있는 칸막이 없는 화장실
 팔리구 광장 건물 안에 있는 칸막이 없는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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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따란 광장 주변에 음식점 등 관광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한쪽의 건물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서자 놀라운 풍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남자 화장실은 벽면을 향하여 소변기 몇 개가 설치되어 있고, 뒤편에는 대변기 4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대변기들이 낮은 칸막이 하나 없이 바닥에 그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마침 그 대변기 하나에 중국인 남자 한 사람이 앉아 용변을 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중국인은 그렇게 민망한 상황에서도 전혀 낯부끄럽다는 표정 없이 덤덤하게 앉아 용변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로만 듣던 중국의 화장실 문화를 이곳 태항산 팔리구 관광지에서 직접 목격한 것이다.

팔리구 입구에는 중국 특유의 모양을 한 거대한 문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작은 오픈카를 타고 들어가며 바라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렸지만 구름 속까지 뻗친 거대한 바위절벽 위의 봉우리가 중국무협지의 장면들을 연상 시켰다.

팔리구를 돌아보고 나온 일행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하늘과 땅의 경계를 이룬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천계산으로 향했다. 천계산 역시 하남성에 위치한 1725m 높이의 산으로 가이드는 태항산의 진수라고 설명했다. 골짜기에서 산으로 오르는 길은 지그재그로 굽이굽이 아슬아슬했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피땀 흘려 건설한 세계최장의 인공 수로

특히 머리 위로 올려다 보이던 바위절벽을 안쪽으로 뚫어 만든 터널들을 통과할 때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오른 천계산 광장, 그러나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카는 때마침 휘몰아치는 강풍으로 운행이 중지되어 아쉬움으로 남겨야 했다. 대신 오픈카를 타고 산허리를 한 바퀴 돌아본 후 광장 한편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점 주인은 한국인이었다. 점심 후 밖에 나와 커피를 사마셨는데 커피집 주인도 역시 한국인이다. 관광지로 개발되어 개방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이곳 태항산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중국인 아니면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음식점도 커피집도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걸까? 반갑기도 하고 세계화 시대의 좋은 현상인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졌다.

천계산에서 내려와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 임주에 이르렀다. 숙소는 중국공산당이 직영한다는 홍기거영빈관이었다. 이곳에서 1박하고 아침 일찍 버스에 분승하여 태항산 대협곡으로 향했다. 길가에는 인공으로 조성한 듯한 수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이곳의 특별한 관개시설인 홍기거에 대한 설명을 했다.

산맥을 넘어 인공으로 만들어진 관개수로 홍기가
 산맥을 넘어 인공으로 만들어진 관개수로 홍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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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보이는 수로가 홍기거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도 손색없는, 인민들이 피땀으로 만들어진 인공수로입니다."

홍기거는 옛날부터 강우량이 적어 물이 귀했던 이곳 하남성 안양과 임주의 백성들이 가뭄과 물 부족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인공수로다. 태항산 산간지역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수로시설은 산맥 너머에 있는 산서성 고원지대의 풍부한 수원에서 물을 끌어오는 간선주수로인 70km의 총간거(總干渠)가 있고, 이 총간거에서 1간거, 2간거, 3간거로 갈라진다.

간거에서 다시 지류로 분리되어 마을과 논밭으로 뻗어나갔다. 마치 심장에서 동맥을 거쳐 정맥, 그리고 실핏줄까지 이어지는 구조와 비슷하다. 그런데 그 길이가 무려 1500km나 된다. 수로는 1960년 2월부터 1969년 7월까지 10년 동안 건설되었다.

1250개의 산봉우리와 151개의 다리, 211개의 터널 등 길이 70km, 높이 4,8m, 폭 8m인 간선수로는 초당 18.3 입방미터의 물이 흐르도록 되어 있었다. 중간에 중소형저수지 338개, 관개시설 250여개, 수력발전소 52개, 각종건축물 1만2408동이 건축되었다.

옛날 주은래 수상은 신중국의 2대 기적으로 남경의 창장대교와 임주의 홍기거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판 우공이산(愚公移山)으로 불린다. 인조천하라는 또 다른 별칭을 갖고 있으며, 세계 8대 기적 중의 하나로 현대 중국의 건설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토목공사시설물로 손꼽히고 있었다.

태항산맥은 그 산군의 면적이 우리나라 남한 전체면적과 비슷한데 산맥을 경계로 서쪽은 고원지대, 동쪽은 평야지대로 구분된다. 산맥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태항산 대협곡은 태항산맥 여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곳이다. 대협곡은 최대 표고차가 1000m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르다.

태항산 비룡협
 태항산 비룡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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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도 엄청 크고 일제의 침략과 민초들의 고달픈 삶이 녹아 있는 태항산

고원 위에 마치 돌로 깎아 만든 거대한 병풍들이 세워져 있는 듯한 풍경이다. 한때 한국인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다는 남쪽 호남성에 있는 장가계와 비교되는 산이기도 하다. 장가계가 아기자기하게 아름답고 고운 여성스런 산이라면 이곳 태항산은 규모가 크고 근육질인 남성적인 산이었다.

오픈카를 타고 산맥의 허리를 감싸고 이어진 도로를 따라 달리며 바라보는 풍경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 지역은 중국의 옛 역사에서도 중원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격렬한 전쟁을 많이 벌였던 곳이다. 특히 일제가 침략했을 때는 팔로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전적지이기도 하다.

전쟁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들의 만행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 높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산속에 피난한 것이다. 지금도 까마득한 절벽 위에 지붕을 얇고 판판한 돌로 덮은 집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대부분 빈집들이었다.

절벽 위에 돌로 축대를 쌓아 만든 층층의 밭들도 위태로워 보이고 경이롭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이나 도시로 떠나고 남아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노인이라고 한다. 30여 채의 집이 있는 어느 마을에는 80대 노인 한사람만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 한다. 잡초가 무성한 빈집들이 힘없는 민초들의 서글픈 삶과 잔혹한 일제 침략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태항산 1천미터 고지 절벽 위에 있는 83세 할머니의 집
 태항산 1천미터 고지 절벽 위에 있는 83세 할머니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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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항산 피난민들이 살았던 집의 돌판 지붕
 태항산 피난민들이 살았던 집의 돌판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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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곡으로 불리는 태항산 협곡과 왕상암 코스를 오픈카를 탄 채 둘러보고 숙소인 홍기거영빈관으로 돌아왔다. 태항산의 바위절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듯한 홍기거영빈관에서 2박하고 태항산의 마지막 코스인 통천협으로 달렸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져 걱정했지만 곧 날씨가 좋아졌다.

하늘로 통하는 협곡이라는 통천협은 작년부터 개방된 신개발관광지로서 아직도 일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들 일행 외에 다른 관광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곧장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올랐다. 원숭이 떼들이 붉은색에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겁먹고 올랐는데 원숭이는 겨우 한 마리만 볼 수 있었다.

아기자기한 능선길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태항산의 다른 곳들과는 많이 달랐다. 뭐랄까? 웅장함보다는 섬세함 같은 경치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바위 틈에서 피어난 예쁜 꽃들도 눈에 많이 익숙하여 친근감이 느껴졌다. 코스가 길지 않아서 잠깐 둘러보고 정상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통천협 풍경
 통천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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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호텔 홍기거영빈관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호텔 홍기거영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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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경치에 취한 통천협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북경으로 가는 고속철을 타기 위해 안양시로 달렸다. 산악지역을 벗어나자 창밖 풍경은 한없이 드넓은 밀밭으로 바뀌었다.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잠깐 쉬어간 휴게소의 커다란 관광 안내판에는 중국의 새 한자와 함께 우리 한글 안내문도 병기 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일본인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음식점에서 일본인들에게는 음식도 팔지 않고, 일제 차량에는 주유소에서 기름도 팔지 않았을 정도로 반일감정이 깊은 곳입니다."

자기네들이 저지른 잔악한 역사인 남경대학살을 부정하는 일본 탓에, 일본에 대한 반감이 중국 내에서도 가장 높다는 이곳. 일본인 관광객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하남성지역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동병상련의 좋은 친구로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중국에서는 중소도시에 해당하는 안양동역은 광장이 엄청 넓고 약사시설도 좋은 편이었다. 고속철은 시간에 맞춰 정확히 출발했다. 북경을 향해 달리는 창밖의 풍경은 마치 3일 전에 봤던 모습인 듯했다. 다만 북경이 가까워질 무렵 한 차례 소나기가 쏟아진 하늘에 커다랗게 떠오른 무지개가 우리 일행들을 반기는 듯해 기분이 좋았다.

광장도 넓고 시설이 좋은 안양동역
 광장도 넓고 시설이 좋은 안양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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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듯 둘러본 북경의 역사유적 이화원

마지막 날 코스인 중국의 상징적인 정원공원 이화원으로 달렸다. 정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와글거리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더러 보였지만 대부분 중국인들이다. 이화원은 북경의 서북부에 있는 정원공원이자 옛 궁전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드넓은 인공호수와 나지막한 산 위에 있는 커다란 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의 손으로 이 넓은 호수를 파내어 만들다니, 힘없는 백성들의 피눈물이 호수물이 되었겠구먼." 

누군가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다. 탑이 세워져 있는 산이 인공호수를 만들 때 파낸 흙으로 쌓아 올린 만수산이다. 높이는 60m, 이화원의 면적은 2.9평방킬로미터이고 이중에 3/4인 2.2평방킬로미터가 호수다. 호수의 이름은 곤명호다. 호수는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낯익은 모습이었다.

본래 이름은 청의원이었다. 1750년 건륭제 15년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호수는 기존에 있던 작은 연못을 확장하여 항주의 서호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이화원은 1860년 제2차 아편 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연합군에 의해 파괴당했다. 1886년과 1902년에 서태후에 의해 재건되었다.

북경 이화원 풍경
 북경 이화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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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현재의 이화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서태후는 이곳을 여름 피서지로 사용하였다. 2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 북경의 수많은 역사 유적 중 하나로 청조의 영화와 패망의 애환이 깃든 곳이었다. 공원이 너무 넓어 정문 안쪽 호수 주변만 잠깐 둘러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북경올림픽 스타디움이 자리 잡고 있는 올림픽타운에서 점심을 먹고 북경공항으로 달렸다. 드넓은 북경 시내는 높게 치솟아 있는 수많은 빌딩들과 아파트들이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쭉쭉 뻗어 있는 도로들도 넓고, 길가의 가로수들도 풍성하다. 그러나 가로수들의 수종이 단조롭고 모두 비슷한 풍경이어서 아쉬움이 남는 모습이었다. 패키지여행으로 스치듯 둘러본 여행, 4박5일이 그저 짧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6월1일부터 5일까지 4박5일 다녀온 중국 북경과 태항산 여행기입니다



태그:#북경, #태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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