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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산소에서 벌초를 시작하자마자 말벌에 쏘였습니다. 밤나무와 참나무 사이에서 나온 말벌!
▲ 어머니, 아버지 산소 어머니 산소에서 벌초를 시작하자마자 말벌에 쏘였습니다. 밤나무와 참나무 사이에서 나온 말벌!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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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엥~ "

순간 저는 몸을 휘청거렸습니다. 허리와 팔꿈치에 뭔가가 느껴져 자리를 피했습니다. 마치 칼에 찔린 것 같은 고통입니다. 벌이었습니다. 시골에 살 때도 어쩌다 보던 말벌!

청남방을 들춰 허리를 보니 피가 흐릅니다. 주위에 금방 독이 올라 붓기 시작합니다. 팔꿈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입니다. 그곳에서 둘째 사촌형이 아직도 예초기로 풀을 베고 있습니다.

"형, 형!!"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으나 예초기의 굉음에 묻혀 들리지 않습니다. 말벌이 사촌형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서너 마리가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순간 사촌형도 벌에 쏘였는지 어깨를 만지며 손을 젓습니다. 넘어지는가 싶더니 예초기를 정지시키고 벌을 피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주위를 맴도는 벌과 한참을 씨름하던 형이 우리 쪽으로 뛰어 왔습니다. 미간을 찡그리며 웃옷을 걷었습니다. 오른쪽 어깨 아래로 두 방을 쏘였습니다. 역시 그 자리에도 피가 나고 있습니다. 쏘인 자리가 크게 부었고 점점 주위가 빨갛게 변합니다.

말로만 듣던 말벌에 쏘인 겁니다. 사촌형과 저는 통증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제일 큰 형님이 병원에 가자고 합니다. 우리는 당황해서 형님이 잡아끄는 대로 산에서 내려와 차에 올랐습니다. 차는 금산 읍내로 향했습니다. 입술이 말라가고 바짝 타 들어갑니다. 손과 다리가 저리고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옵니다. 볼을 만져보니 감각도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산소에서 말벌에 쏘이다

지난 12일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추석을 2주 남기고 큰댁 사촌형 두분과 작은 집인 우리(형, 나)는 벌초를 하기로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 근무를 마친 저는 울산에서 바로 충남 금산군으로 향했습니다. 큰댁에 모인 형들과 잠시 얘기를 나눈 후 잠자리에 들었고, 토요일 아침 벌초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큰댁 뒤편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1시간 반 만에 깔끔하게 깎아 드렸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두 번째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에 도착했습니다. 예초기 두 대에 시동을 걸고 작업 시작. 50cm 넘게 자란 잡풀도 있지만, 먼저 산소 방향으로 길게 자란 밤나무와 새끼 참나무를 잘랐습니다. 이어 잘린 나무를 갈퀴로 걷어내는 순간 말벌의 공격을 받은 겁니다. 엄청난 크기였습니다.

약 4cm! 정말 딱 엄지손가락 만합니다. 잔뜩 살이 올라서 그런지 머리는 투구를 쓴 것 같고 몸집은 갑옷을 입은 것 마냥 통통합니다. 노란색과 검정색이 섞여있는 벌! 커다란 덩치와 귓가를 찢는 '엥~엥' 소리에 잔뜩 겁을 먹은 우리는 남은 벌초 일정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응급실로 가니 간호사가 네모난 플라스틱으로 벌침을 제거합니다.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장수말벌이었을까요?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에 이어 쏘인 자국에서 피가 흐릅니다. 그리고 주변이 금방 부어오릅니다.
▲ 말벌에게 쏘인 자국 장수말벌이었을까요?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에 이어 쏘인 자국에서 피가 흐릅니다. 그리고 주변이 금방 부어오릅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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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셋 같은 걸로 빼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벌 침은 핀셋으로 안 빠져요. 신용카드나 자 같은 것으로 살살 밀어내야 돼요. 그리고 말벌은 독침을 여러 번 쏠 수 있어서 정말 조심하셔야 돼요. 이 정도면 정말 다행입니다."

새삼 알게 된 토종 말벌의 위력

엉덩이 주사 두 방 맞고 약국에 들른 후 다시 큰댁으로 향했습니다. 통증이 굉장합니다. 어릴 때부터 꿀벌과는 친하게 지낸 터라 나름 벌에 내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말벌에 쏘이고 나니 꿀벌에 쏘였던 기억은 장난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방안에 누워 인터넷을 뒤적거렸습니다. 말벌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 말벌은 '말벌', '장수말벌', '털보말벌', '좀말벌', '황말벌', '검정말벌' 등이 있음 ▶ 그중에 '장수말벌'이 가장 독성이 강하며, 숫말벌의 경우는 초여름 영양상태가 부진할 경우에도 크기가 3cm~4cm가량 됨  ▶ 주로 밤나무나 참나무 아래 땅속에 집을 지음 ▶ 일반 말벌은 꿀벌의 70배, 장수말벌은 꿀벌의 500배가량 독성을 갖고 있음 ▶ 벌의 공격을 받으면 몸을 낮게 숙이고 있는 것은 위험하며, 일단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림 ▶ 장수말벌은 벌집 근처 10m 까지 방어하는 속성이 있어 벌초를 하기 전에 미리 주위를 살펴보아야 함 ▶ 사람에 따라 증상은 다르겠으나 머리에 쏘이게 되면 쇼크사나 호흡곤란이 올 수 있으므로 119를 부르거나 곧바로 병원으로 가야함

찬 물로 상처부위를 씻어낸 후 안정을 취하려 했지만 통증이 심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후엔 벌에 쏘인 자리가 점점 검게 변하더니, 새로 나온 10원짜리 동전만큼 커졌습니다. 마치 총에 맞은 자국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아픔은 더해 갑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또 '엥~'하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화들짝 놀라서 쳐다보니……. 모기였습니다. 말벌에 쏘여 놀란 가슴이 모기 소리에도 식겁합니다.

말벌에 쏘인 지 이틀째, 가려움에 안절부절

말벌에 쏘인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통증은 가라 앉았습니다만, 어제 아침부터 가렵기 시작했습니다. 출근해서도 하루종일 상처를 긁었습니다. 벌에 쏘인 자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위 20cm가량이 부어올라 따갑고 굉장히 가렵습니다. 상처 부위를 만지면 피부가 딱딱합니다. 아무래도 피부과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10대 중반부터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를 따라 벌초를 다녔으니 이제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한 번도 벌에 쏘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큰 경험을 했습니다. 예전에 일일이 낫으로 벨 때엔 벌에 쏘이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으나, 요즘처럼 예초기로 벌초를 하면서부터는 벌에 쏘이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벌에 쏘여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도 종종 접하니 말입니다. 무성한 잡풀 아래 벌집들을 미리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예초기의 날카로운 소리가 벌떼의 신경을 자극한다고 합니다.

좀 덥고 움직이기 불편하더라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산에 올라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지난주 부터 이번 주 사이가 고비입니다. 주말을 맞아 벌초객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벌초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차들로 인해 고속도로에선 연휴 능가하는 정체가 발생합니다.

12일 밤 울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북대구 근처에서는 차량 2충 추돌과 5중 추돌 사고가 100미터 간격을 두고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경주 근처에서도 사고가 있었습니다. 벌초를 하고 오는 차량 행렬일 수도 있는데 안타까웠습니다. 부디 안전 운전하시고 졸리면 쉬었다 가시기 바랍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벌초, #말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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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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