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루종일 진료와 검사를 받느라 지친 어머니가 CT검사를 받기 위해 들어가셨다
▲ CT 검사실 하루종일 진료와 검사를 받느라 지친 어머니가 CT검사를 받기 위해 들어가셨다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어머니의 발바닥 통증과 만성기침은 몇년간 동네병원 여러 곳을 돌아 다녔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것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보호자가 진료실에 함께 들어가 앉아 있는데도 성의 없는 의사들의 진료 행위였다. 그들은 "노인들은 원래 그러니 약이나 받아 가려면 받아가고 아니면 다른데 가보라"는 식의 태도였다. 그러니 보호자도 없이 혼자 온 노인들에게는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결국 지난 3일 어머니를 모시고 부산에 있는 한 대학병원으로 갔다. 그 병원은 내가 2013년부터 쭉 갑상샘암 치료를 위해 다니고 있는 병원이었다. 나는 8월 3주차에 외래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는데 어머니가 진료 받을 정형외과와 내과 진료를 같은 날 받기 위해 예약을 변경했다.

우리집에서 그 병원까지는 차로 40분 거리다. 하지만 외래 진료가 있는 날엔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가 많아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주차장 입구에서 기다릴 시간까지 감안해 일찌감치 집을 나왔다. 그런데 도착한 시간이 마침 점심시간 때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병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 어머니가 진료 받으실 곳은 두 곳으로 오후 1시 50분에 정형외과, 3시 30분에 내과 진료였다. 정형외과와 내과 진료시간 사이인 2시 30분에 내 갑상샘암 진료도 예약되어 있었는데 나 같은 경우엔 진료 2시간 전 혈액 검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진료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일찍 병원으로 왔다.

대학병원의 진료 시스템은 복잡하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 효율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일 테지만 나이가 많은 노인분들을 위한 간편 시스템도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같은 병원에서 2개과 진료를 받는데 원무과만 5번

이 병원 초진 환자의 경우엔 1층에 있는 원무과에서 '접수'를 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진료를 예약하고 왔지만 이 과정이 생략되진 않았다. 1층에서 접수를 하면 앞으로 이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사용될 '평생진료카드'를 발급해준다. 그 카드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신분증과 같은 개념이며 환자의 정보가 카드에 저장되어 있다.

1층에서 접수를 하고 병원비를 계산하면 영수증과 함께 예약증이 발부된다. 그 예약증을 해당 과 진료 접수 창구에 가져다 주면 진료를 볼 수 있다. 정형외과가 먼저 진료 예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모시고 정형외과로 올라갔다.

정형외과 접수 창구에 예약증을 내고 잠시 앉아 기다리면 간호사분이 환자 이름을 부른다. 이름이 불려진 환자는 진료실에 들어가 진료를 받는다. 어머니 순서가 되어서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나왔다. 발바닥 통증 때문에 왔다고 하니 '사진'부터 찍어 보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진료실을 나와 다시 간호사분의 설명을 들었다. 가까운 원무과로 가서 진료비 계산을 하고 영상의학과에 가서 발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다시 오라고 했다. 영상의학과로 가는 길목 중간에 있는 의자에 어머니를 잠시 기다리게 한 뒤 원무과에서 진료비를 계산했다. 진료비 계산을 하고 영상의학과에 들러 다시 접수를 하니 엑스레이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정형외과로 돌아갔다. 사진을 찍고 왔다고 하니 또 잠시 기다리라고 했고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니 아까 진료를 받은 옆 진료실에서 어머니 이름이 불려졌다. 그 진료실에 들어가니 원래 진료 받던 교수님이 아니라 '인턴'쯤 되어 보이는 분이 어머니의 발바닥 통증 이력에 대해서 자세히 물었다. 워낙 환자들이 많다 보니 교수님의 진료 시간을 줄이기 위한 조치 같았다. 그 인턴은 어머니의 대답을 전산에 상세히 입력했고 교수님은 그 입력된 대답을 보며 진료했다.

어머니의 발바닥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어디 부위가 아픈지 확인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동네 병원에서 발바닥에 주사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은 아프지 않고 평소 아플 때는 어디 부위가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진료를 마치면서 교수님은 예상한 대로 '족저근막염'이 맞는 것 같은데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발바닥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보통 그래도 확인이 안되면 CT검사까지도 고려해 봐야 하는데 지금 어머니의 상태는 초음파 검사로 보면 나올 것 같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처음 듣는 말이었다.

진료실을 나와 잠시 기다리니 간호사분께서 다시 나에게 설명을 해주셨다. 원무과에 가서 진료비 계산을 하고 검사예약센터로 가서 초음파 검사를 예약하라고 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로 정형외과 예약일을 맞춰 방문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니 먼저 검사 가능일정에 맞춰 예약을 하고 다시 오면 예약일을 조정해 주겠단다.

다시 원무과 근처에 있는 의자에 어머니를 잠시 기다리게 한 뒤 원무과에서 진료비 계산을 했다. 그리고 검사 예약센터로 가서 어머니의 발바닥 초음파 검사 일정을 확인해서 예약했다. 아직 내과 진료는 받지도 않았는데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정신없는 시스템에 어머니는 힘들어 하시며 절대 혼자서는 못 오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의사도 아니다'

1개 병원 2개과 진료를 받는데 총 5번의 원무과를 들려야 했다
▲ 병원비 영수증 1개 병원 2개과 진료를 받는데 총 5번의 원무과를 들려야 했다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내가 계속 같이 올테니 걱정 마시라"며 어머니를 독려해 내과 진료를 보러 갔다. 내과 역시 1층 원무과에서 받은 예약증을 내과 접수 창구에 내고 기다리면 간호사가 이름을 부른다. 내과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잠시 뒤 내과 간호사가 이름을 불러서 진료실에 들어가려고 하니 진료실 갔다가 어차피 또 검사 받고 다시 오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미리 검사를 받고 앉아 있으라고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또 원무과에 가서 진료비 계산을 하고 영상의학과로 가서 가슴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번엔 심전도실에서 심전도검사도 했다. 2가지 검사를 끝내고 다시 내과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있으니 이내 어머니 이름이 불려졌다.

어머니는 기침한 지가 내 기억으로도 상당히 오래 됐다. 게다가 어머니의 오빠인 우리 큰외삼촌께서는 몇 해 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혹시 모를 그 가족력이 두려웠다. 내과 교수님은 청진기를 어머니의 등에 대고 크게 쉼호흡을 하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크게 숨을 쉴 때 가래 끓는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내 교수님은 몇 년간 마른 기침을 계속하는 상태이고 엑스레이 사진 상으로도 폐가 조금 안 좋은 것 같으니 몇가지 추가 검사를 더 해보자고 했다.

어머니는 평소 동네 병원에 다닐 때 자주 들으셨던 "기관지가 조금 안 좋다더라"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자 교수님은 그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의사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듣고 보니 그랬다. 기침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기관지가 좀 안좋다는 말은 의사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성의 없이 진료하던 그 동네병원들에 또 화가 났다.

진료실을 나와 폐 검사를 하기 위해 CT실로 갔다. 역시 원무과에서 진료비를 계산하고 검사 예약센터를 들른 뒤였다. 시간이 벌써 오후 늦은 시간이 다 되어서 CT검사 마감이 되기 일보직전이라 간호사분께서 '긴급'이라며 부탁을 넣어 검사를 그 날 바로 받을 수 있었다.

폐기능 검사와 기관지 유발검사는 일정상 당일 검사가 불가능해 예약을 해두었다. 각자 검사 가능일정과 진료일정이 제각각이라 나는 다시 정형외과와 검사예약센터, 내과를 돌아다니면서 다음 병원 방문일정을 조율해 같은 날로 조정했다.

이렇게 어머니의 첫 대학병원 진료는 끝이 났다. 12시에 도착한 병원은 진료가 끝나니 오후 5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2개과 진료를 받는데 오늘 들른 곳은 1층 원무과, 정형외과, 2층 원무과, 영상의학과, 정형외과, 2층 원무과, 검사예약센터, 내과, 2층 원무과, 영상의학과, 심전도실, 내과, 2층 원무과, 검사예약센터, CT실, 채혈실이었다.

여러 층으로 나뉘어진 각종 검사실과 복잡한 시스템에 진료를 마친 어머니는 혀를 내두르셨다. 노인네들은 이런 복잡한 시스템에 진료 받을 수 있겠냐며 고개를 흔드셨다. 나도 오늘 병원을 나오면서 정신 없는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머니는 오죽하시랴.

동네 병원에서는 성의 없는 진료로 대학병원에서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래저래 노인들은 자기 몸 제대로 건사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그:#병원, #진료, #대학병원, #시스템, #검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