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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풀벌레 소리에는 향수가 묻어 있다. 잠결에 들려오는 이 소리, 가을의 소리다. 그러고 보니 가을 내음을 맡은 지 꽤 오래다. 메뚜기와 개구리 그리고 코스모스와 국화, 억새가 바람에 날리는 고향의 가을이 그리워진다.

고려가 망하자 전신민이 지은 정자다. 이 정자는 북향이다. 임금이 있는 송도를 향해 서 있다.
▲ 독수정 고려가 망하자 전신민이 지은 정자다. 이 정자는 북향이다. 임금이 있는 송도를 향해 서 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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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독수정을 찾았다. 독수정은 광주호 주변에 위치한 정자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우선 시대적 배경의 차이다. 식영정, 환벽당 등이 이조시대 가사문화 활동의 터전이었다. 독수정은 고려 말 공민왕 때 병부상서를 지낸 서은 전신민이 지은 정자이다.

하모니카 음악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다

서은은 고려가 멸망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며 절개를 지켰다. 특이한 것은 건물의 방향이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이 계신 송도를 향해 아침마다 절을 올리기 위함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정몽주의 단심가

조선 태종 이방원의 회유에 단심가를 지어 화답하며 지조를 지켰던 고려 말 정몽주를 사모했던 서은은 매일 아침 조복을 입고 곡배를 올렸다. 독수정은 이러한 충신의 절개를 상징하는 정자로 알려져 있다. 각종 이권과 권력을 좇아 불나비처럼 따라다니는 사람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멀리서 들릴 듯 말 듯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 하모니카 소리다. 스와니 강, 메기의 추억 등 어렸을 때 들었던 음악이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진다. 울창하게 욱어진 나무숲 사이를 바람 타고 흘러온다. 은은히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독수정 계곡은 물이 메말랐다. 맑은 물이 흘러내렸을 흔적은 있다. 몇 백 년 인고의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킨 나무 밑동이와 바위들에 이끼가 덮여 있다. 만약 지금 들려오는 하모니카 연주와 물 흐르는 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면 분명 과거와 자연, 그리고 현대 음악의 공존인 셈이다.

독수정 밑자락에 심어 놓은 상사화가 활짝 피었다. 흡사 임을 위한 일편단심 절개를 상징하여 선비가 꽃으로 환생한 듯하다.
▲ 상상화 독수정 밑자락에 심어 놓은 상사화가 활짝 피었다. 흡사 임을 위한 일편단심 절개를 상징하여 선비가 꽃으로 환생한 듯하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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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나간 아들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의 등처럼 휘어 자란 나무도 내 눈에는 특이하다. 비탈진 계곡 밑자락으로 상사화가 꽃 무릇을 이루었다. 황금색 꽃이 석양의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난다. 그 위로 새까맣게 붙어 있는 제비나비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상상화 위에 제비나비들 이 무리지어 앉아 있다.
▲ 제비나비 상상화 위에 제비나비들 이 무리지어 앉아 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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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로 날아다닌다. 꽃 색깔 대비 검은색은 배색이 맞아 눈에 확 들어온다. 거기다가 임을 위하여 절개를 굽히지 않은 선비의 일편단심이 꽃으로 환생한 듯하다. 갓 조성된 꽃무릇 단지를 보고 느낀 이런 소회가 나만의 지나친 상상일까.

부쩍 가까워진 가을의 정취

독수정 원림에는 양서류인 개구리와 곤충류인 잠자리, 나비등이 서식하고 있다.
▲ 개구리 독수정 원림에는 양서류인 개구리와 곤충류인 잠자리, 나비등이 서식하고 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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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에 새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 보는 듯하다.
▲ 독수정 나무위에 새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 보는 듯하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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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사이에 개구리가 펄쩍 뛰고 도망간다. 실은 개구리울음소리도 들어본 지 오래다. 어렸을 때 5월 못자리철이면 논갈이 물 논에서 울던 개구리다. 개구리가 향수를 자극한다. 나뭇가지 위에서는 새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본다.

담양군 남면 연천리에 전신민이 1390년 전후에 건립, 주변의 원림은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 독수정 담양군 남면 연천리에 전신민이 1390년 전후에 건립, 주변의 원림은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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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정은 높다란 언덕 위에 자리잡았다. 밑으로는 서은 전신민의 후손인 듯 묘가 3, 4기가 서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서은의 26대손이라는 분 이야기로는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묘지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전해 준다. 서은의 묘는 정자 위쪽에 모셔져 있다.

원림의 울창한 숲과 꽃, 나비에 취해 천천히 비탈길을 걸어 정자에 오르니, 남자는 하모니카를 불고 여인은 기타를 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산 밑에까지 은은히 들려온 악기를 연주한 주인공이다. 광주 북구에서 왔다는 부부, 60을 넘은 노후에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고 있다.

독수정 원림에서 우리가 보존해야 자연과 문화유산 등을 들여다 보면서 모처럼 가을의 정취에 취해 보는 하루였다.


태그:#독수정,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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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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