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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자료사진)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자료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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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연이어 내놓는 대법원에 실망한 과거사 피해자들이 헌법재판소(아래 헌재) 문을 두드리고 있다.

2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 긴급조치 변호인단과 긴급조치피해자 대책위원회, 사단법인 민청학련계승사업회는 헌재에 대법원 판결의 위헌성을 따져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박정희 정부 시절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금 청구소송을 지난 7월 23일 대법원이 원고 패소로 확정한 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대법원, 과거사 판결 두고 '돌변'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1월 8일 유신헌법 반대활동을 전면금지하는 대통령 긴급조치 1호를 발동했다. 2010년 대법원은 이 긴급조치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 현재의 헌법은 물론 유신헌법에도 맞지 않는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한다. 헌재도 2013년 위헌결정으로 긴급조치에 공식 사망선고를 내렸다. 긴급조치 1호 최초 위반자로 기소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던 백기완 소장은 이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2014년 6월 국가배상금 청구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그런데 지난 3월 대법원은 다른 긴급조치 피해자의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면서 "이 일은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국민 개개인의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할 책임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한 달 뒤 백 소장의 국가배상금 청구소송 항소심 재판부는 이 판결을 근거로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의 결론도 동일했다.

☞ 과거사 피해자들, 헌재에선 웃고 대법원에선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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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에게 호소할 길이 막힌 백기완 소장은 마지막으로 헌재를 찾았다. 헌법소원을 대리하는 민변 이상희 변호사는 24일 헌재에 청구서를 제출하기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부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법원은 2010년 긴급조치가 처음부터 위헌·무효이며 그로 인해 중대한 인권침해가 이뤄졌다고 하고선 최근 '긴급조치 발동은 통치행위라 국가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너무나 모순인 판결을 내렸다"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은 법원 판결을 대상으로 하는 헌법소원(재판소원)을 금지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과거사 피해자들이 헌재를 찾는 까닭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기 때문이다.

과거사 피해자들의 마지막 하소연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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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심정의 과거사 피해자들은 더 있다. 파출소장 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정원섭 목사는 지난해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재심 무죄 판결을 바탕으로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국가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소멸시효 완성)'고 한 대법원 판결 때문이었다.

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4년 6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2항이 위헌이라는 한 긴급조치 피해자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 사건들은 모두 헌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정 목사 사건은 재판소원인 만큼 재판관 3명으로 꾸려진 지정재판부의 사전심사단계에서 각하당할 가능성이 커보였다. 하지만 헌재는 일단 이 사건을 전원재판부에서 살펴보기로 했다. 민주화운동보상법 문제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월 22일 '민주화운동보상금을 받으면 국가배상금 청구권이 없다'고 못 박긴 했다. 그러나 이 조항 자체가 위헌인지 아닌지를 두고 헌재는 아직 고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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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조영선 변호사는 "대법원이 노골적으로 과거 잘못을 부인하면서 과거사 피해자들이 어쩔 수 없이 헌재를 찾고 있는 것"이라며 이 상황을 대법원이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또 백기완 소장이 자기의 소송뿐 아니라 헌법재판소법 재판소원 금지조항의 위헌 여부도 함께 판단해달라고 청구한 점도 언급하며 "헌재가 사법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세워진 만큼 이제는 법원 판결도 헌법소원으로 다툴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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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과거사, #대법원, #헌법재판소, #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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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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