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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엄사의 중심 영역. 너른 마당에 석탑 두 기가 서 있다. 석단 위에 각황전과 대웅전이 보인다.
 지리산 화엄사의 중심 영역. 너른 마당에 석탑 두 기가 서 있다. 석단 위에 각황전과 대웅전이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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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면서 더위가 또 한풀 꺾였다. 여름도 다 가고 있다. 마지막 여름을 잡으러 갔던 지리산 화엄사을 떠올린다. 지난 15일이었다. 화엄사는 지리산 여행의 시작 지점이다.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지리산의 종주도 화엄사에서 시작한 걸 으뜸으로 친다.

화엄사는 사철 넉넉한 모습으로 맞아준다. 하루 어느 때라도 색다른 풍경으로 어루만져준다. 한낮은 물론이고, 새벽이나 동이 틀 무렵에 가도 좋다. 해질 무렵에 찾으면 고요한 산사의 풍경을 선사한다. 절집 옆으로 흐르는 계곡의 풍치도 아름답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544년) 때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다. 보통 절집이 하나의 중심법당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화엄사는 대웅전과 각황전이라는 두 개의 중심 법당을 갖고 있다.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화엄사 계곡을 따라가는 숲길.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게 잘 단장돼 있다.
 화엄사 계곡을 따라가는 숲길.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게 잘 단장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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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의 중심영역 배치도. 아래 '현위치'로 표시돼 있는 보제루를 돌아가면 각황전과 대웅전, 석탑이 펼쳐지는 중심 영역과 만난다.
 화엄사의 중심영역 배치도. 아래 '현위치'로 표시돼 있는 보제루를 돌아가면 각황전과 대웅전, 석탑이 펼쳐지는 중심 영역과 만난다.
ⓒ 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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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에는 국보가 4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러면서도 가장 큰 목조건물인 각황전이 제67호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인 각황전 앞 석등은 제12호로, 사사자 삼층석탑은 제35호로 각각 지정돼 있다.

보물도 9점을 보유하고 있다.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이 각각 제132호와 제133호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은 제299호, 원통전 앞 사자탑은 제300호로 지정돼 있다. 보제루는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올벚나무와 매화나무는 천연기념물이다. 규모도 크지만, 품격 높은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절집이 화엄사다.

화엄사는 일주문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만난다. 절집의 규모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는 일주문이다. 생김새도 고풍스럽다.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는 금강문을 지나면 보제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중생을 두루 살핀다는 뜻을 지닌 누각이다. 법회의식을 진행하는 곳이다.

화엄사 보제루. 2층의 누각이지만 아래로 지날 수 없게 돼 있다. 오른편으로 돌아가야 한다.
 화엄사 보제루. 2층의 누각이지만 아래로 지날 수 없게 돼 있다. 오른편으로 돌아가야 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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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금강문 주변에 피어있는 목백일홍. 진분홍색의 배롱나무 꽃이 절집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화엄사 금강문 주변에 피어있는 목백일홍. 진분홍색의 배롱나무 꽃이 절집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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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루는 아주 독특한 누각이다. 보통 루(樓)는 2층 형태를 띠고 있다. 보제루도 2층이다. 하지만 아래로 지날 수 없는, 1층이 막혀있는 누각이다. 일반적인 누각과 다르다. 오른편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보제루는 단청을 하지 않아서 고색창연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 누각의 기둥도 삐뚤삐뚤하다. 미려하면서도 자연미가 흐르고 있다. 보제루를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대웅전과 각황전이 자리하고 있는, 화엄사의 중심 영역이 펼쳐진다.

보제루를 돌아가게 만든 데에는 건축학적인 배려가 담겨 있단다. 보제루 스스로 자신을 낮춰 대웅전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덕분에 화엄사의 중심 영역인 각황전과 대웅전, 대석단과 석탑의 경관을 더 감동적으로 만난다.

중심 영역에 들어서면, 각황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인지상정이다. 대웅전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제루를 돌아감으로써 상대적으로 작은 대웅전이 각황전과 대등하게 보인다. 작은 대웅전이 앞에, 큰 각황전이 뒤에 보여 원근감이 되살아난다.

그 덕분인지, 보제루를 돌아가면 대웅전과 각황전이 언뜻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착각일 뿐이다. 이렇게 화엄사의 중심 영역 경관을 돋보이게 해주는 전각이 보제루다. 1636년에 지어졌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화엄사 보제루 전경. 중심 영역에서 본 보제루의 모습이다. 1층의 공간이 보이지 않아 흡사 단층 같다.
 화엄사 보제루 전경. 중심 영역에서 본 보제루의 모습이다. 1층의 공간이 보이지 않아 흡사 단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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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앞에서 내려다 본 화엄사의 중심 영역. 너른 마당에 서오층석탑과 동오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석단 위에 보이는 전각이 대웅전이다.
 각황전 앞에서 내려다 본 화엄사의 중심 영역. 너른 마당에 서오층석탑과 동오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석단 위에 보이는 전각이 대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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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낮춰 다른 전각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보제루 덕분에 화엄사의 중심 영역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보제루의 마루에 앉아서 보면 지리산을 배경으로 대웅전과 각황전이 펼쳐져 있다. 높은 석단으로 둘러싸인 너른 마당에 두 기의 탑도 돋보인다. 화엄사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전각과 석탑의 묘미도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정면으로 보이는 5층 석탑 두 기는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생김새는 5층으로 같은데, 모양새가 다르다.

보물 제132호로 지정돼 있는 동오층석탑은 탑신에 아무런 조각장식이 없다. 수수해 보인다. 기단도 단층으로 돼 있다. 왼편의 서오층석탑은 보물 제133호로 지정돼 있다. 2층의 기단이고 탑에 12지신과 여덟 무리의 신들, 사천왕을 함께 조각해 놓았다. 조각과 장식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준다.

화엄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대신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보제루와 함께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화엄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대신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보제루와 함께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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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대웅전과 각황전. 화엄사를 대표하는 중심 법당이다. 보통의 절집이 하나의 중심 법당을 갖고 있는 것과 차별화된다.
 화엄사 대웅전과 각황전. 화엄사를 대표하는 중심 법당이다. 보통의 절집이 하나의 중심 법당을 갖고 있는 것과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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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으로 이뤄진 석단을 오르면 대웅전과 각황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은 대개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지만, 여기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대적광전'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고, 옛 현판을 그대로 걸어서 지금까지 대웅전으로 남아있다. 대신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보제루와 함께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각황전은 1702년에 중건됐다. 규모나 아름다움에서 화엄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불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본디 석가여래 입상을 모신 장육전 터에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장육전 자리에다 전각을 지으면서 숙종이 이름 지어준 각황전으로 바뀌었다.

각황전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전각이다. 우리나라의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고, 크다. 국보 제67호로 지정돼 있다. 뒤편의 동백숲도 아름답다. 각황전을 보호하는 방화수림으로 조성된 숲이다.

대웅전과 각황전의 활주도 눈길을 끈다. 활주는 밖으로 돌출된 목조건축물의 추녀를 지탱해 주는 보조기둥을 일컫는다. 활처럼 휘어져서 처마를 떠받치고 있다. 처음부터 휘어진 나무를 활주로 사용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나무기둥이다.

화엄사 각황전과 석등. 각황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됐으면서도 가장 규모가 큰 목조 건축물이다. 각황전 앞 석등은 우리나라의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 둘 다 국보로 지정돼 있다.
 화엄사 각황전과 석등. 각황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됐으면서도 가장 규모가 큰 목조 건축물이다. 각황전 앞 석등은 우리나라의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 둘 다 국보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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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과 사사자 삼층석탑. 각황전과 석등은 국보, 사사자 삼층석탑은 보물로 각각 지정돼 있다. 각황전의 처마를 받치고 있는 활주도 휘어져 있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과 사사자 삼층석탑. 각황전과 석등은 국보, 사사자 삼층석탑은 보물로 각각 지정돼 있다. 각황전의 처마를 받치고 있는 활주도 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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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앞에 있는 석등은 통일신라 때 조성됐다. 높이 6.4m로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 국보 제12호로 지정돼 있다. 이 석탑을 통해 옛 장육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옆에는 보물 제300호인 사사자 삼층석탑이 있다. 네 마리의 돌사자가 사천왕상을 받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사사자 삼층석탑은 각황전 뒤 언덕에도 있다.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 73과를 모셔 와서 봉안했다는 석탑이다. 108계단을 따라 올라 거대한 소나무 밑에 있다. 암수 두 쌍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석탑이다. 네 마리의 사자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있다. 국보 제35호로 지정돼 있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전망도 아주 좋다.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지리산과 섬진강 물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108계단을 통제하고 있다. 사사자 삼층석탑 앞에 적멸보궁을 짓는 공사를 하고 있어서다.

화엄사 숲길에서 만나는 나무다리. 화엄사 계곡을 넘나들 수 있도록 놓여 있다.
 화엄사 숲길에서 만나는 나무다리. 화엄사 계곡을 넘나들 수 있도록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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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암 앞 숲길. 나무가 빼곡해 한낮의 햇볕도 허락하지 않는다.
 연기암 앞 숲길. 나무가 빼곡해 한낮의 햇볕도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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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에 딸린 암자도 멋스럽다. 구층암과 연기암이 대표적이다. 구층암으로 가는 길은 대숲길이 아늑하다. 바람에 일렁이는 대숲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요사채의 기둥도 독특하다. 다듬지 않은, 울퉁불퉁한 모과나무를 그대로 가져다 받쳐 놓았다. 아름다운 섬진강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연기암도 가깝다.

암자로 오가는 길에 만나는 화엄사계곡도 시원하다. 숲길도 예쁘게, 걷기 편하게 단장돼 있다. 숲에서 만나는 식물과 동물, 생태계에 대한 설명판도 반갑다. 여행의 피로도 맑은 계곡물에 실려 보낼 수 있는 숲길이다.

화엄사계곡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피서객들. 지난 15일 모습이다.
 화엄사계곡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피서객들. 지난 15일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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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화엄사, #각황전, #보제루, #활주,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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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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