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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수업제가 전면 실시된 지난 2012년 3월 3일 오전 서울시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토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해 수업을 받고 있다.
▲ 즐거운 토요일 주5일 수업제가 전면 실시된 지난 2012년 3월 3일 오전 서울시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토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해 수업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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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독서논술 강사로 일하는 수현씨(가명)를 만났다.

그녀는 일주일에 2번 초등학생들에게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다. 책 읽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만, 아이들이 책의 재미를 차츰 알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예전에 지역 아동센터와 지역도서관에서 독서지도를 한 경험도 있다. 올해는 북아트지도사 1급 자격을 얻기 위해 평생대학원에 다닌다.

이처럼 책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과후강사 수현씨이지만, 학교에는 차마 하지 못할 말이 있다.

아래는 지난 15일,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수현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허술한 강사계약서, 무료로 수업하는 날도?

- 8월 14일이 갑자기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학교에서도 큰 혼란이 빚어졌다고 들었는데, 방과후학교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내가 다니는 학교 컴퓨터와 수학은 그대로 수업했다. 나머지 과목은 휴강을 하고 다음에 보강을 하라고 했다. 컴퓨터, 수학은 거의 매일 수업이 있어 보강하기가 어려워서인 것 같다. 그런데 다른 학교 독서논술 수업은 보강 없이 수강료에서 하루 강의료만큼을 제외했다고 들었다. 학교마다 다 달랐다."

- 휴강과 보강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강사계약서에 명시되어있나?
"계약서에는 없다. 계약서에는 주당, 연간 수업시간만 정해져 있다. 교장은 내게 일주일 2번, 한 달 8번 수업이 원칙이라고 했다. 학교 일정이 생기거나 한 달 일수가 부족해서 7번 수업하게 될 경우에는 꼭 보강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달마다 날짜가 다르니 그 다음달에는 9번 수업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다. 무료로 수업하는 게 된다.

반면 다른 학교에서는 9번째 수업 날은 쉬라고 한다. 하지만 쉴 수 없다. 수업이 없으면 아이들은 그 시간에 갈 데도 없고, 헛갈려 하기 때문에 그 날만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월 단위 계약도 아니고 1년 단위 계약이니까 두 달을 합쳐 8번 수업하는 식으로 계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면 모를까, 우리 입장에서는 학교에 말할 수가 없어 속병만 앓는다."

- 그렇다면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어떤가? 계약한 시간만큼 실제 일을 하게 되나?
"오후 1시 20분에 첫 수업이라 20분 전, 1시까지는 교실에 도착해야 한다. 그 전에 교무실, 행정실에 들러 출근부에 사인한다. 한 차시당 40분 수업하고 10분 쉰다. 그러나 쉬는 시간에도 휴식은 힘들다. 아이들마다 오가는 시간이 다르고, 활동지 푸는 시간도 달라 쉬는 시간까지 도와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 하교할 때 교문까지 데려다주라고 하는데 불가능하다. 교실에 남아있는 학생도 있고, 다음 차시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2~3차시 수업을 끝내고나면 교실 뒷정리, 문단속하고 열쇠 반납까지 30~40분이 걸린다. 공개수업이 있을 때면 대청소를 해야 해서 복도며 창문틀이며 구석구석 닦느라 시간은 훨씬 더 걸린다."

- 생각보다 오랫동안 학교에 있게 되는데 방과후 선생님들을 위한 교실이나 사물함 등 수업환경은 어떤가?
"우리 학교는 별도의 방과후교실이 있어 2~3개 과목이 같이 사용한다. 교실 뒤편에 사물함 하나를 강사들끼리 나눠 쓰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물품을 가지고 다닌다. 독서논술 과목이라서 수업 때마다 필요한 책이 달라지기도 하고 학년별로 다르게 줘야하니까 권수가 많고 무겁다. 나 같은 경우에는 차가 없으면 수업하러 다닐 수가 없다.

우리도 우리지만 학생 교육환경도 열악하다. 휴지 낭비가 심하다는 이유로 화장실에 휴지를 비치하지 않는 데도 있다. 대신 교실마다 두루마기 휴지 하나씩을 나눠줬다는데, 방과후교실에는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 돈으로 사서 교실에 비치하고 쓰게 한다.

작년 교실은 냉난방도 안 되는 곳이었다. 선풍기 2대를 받았지만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수업인데 밖은 시끄러워서 창문을 열수도 없다. 겨울에도 난방을 못하게 했다. 너무 추워서 내가 온풍기, 전기히터를 구입했다. 물론 여러 번 다른 교실로 바꿔 달라도 해봤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답은 '남는 교실이 없다'였다. 그런데 황당했던 건, 올해 사용하고 있는 교실이 작년부터 계속 비어있었다."

- 정부나 학교는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방과후학교 목적상 수강료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방과후강사로서 어떻게 느끼나?
"지난 10년 동안 수강료가 3만원으로 고정되어 있다. 근 20년간 2만5000원을 받았다는 분도 있다. 오히려 수강료가 하락하기도 한다. POP, 아트공예 같이 수강생이 많이 몰리는 미술 분야 과목에서는 누가 더 잘 가르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수강료를 싸게 받는가를 둘러싼 가격경쟁이 벌어지는 실정이다. 학교에서도 더 적은 액수를 부르는 강사를 뽑아 쓰기 때문이다."

- 실제 강사료 지급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수강료는 선수납을 원칙으로 한다"는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강사료 지급이 안정화되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제때 강사료를 받기 위해 우리가 직접 애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수강료 대납 관행이 있다. 내가 지금 다니는 한 학교는 스쿨뱅킹 출금일이 매월 15일이다. 이때 1차로 미납된 학생 명단을 코디 선생님이 보내준다. 그리고 2차, 3차 스쿨뱅킹을 돌리고 21일쯤 되면 최종 미납자 명단이 넘어온다. 나는 그 부모님들에게 26일까지 납부해달라는 문자를 보낸다. 항상 3~4명, 어떤 때는 5명인 경우도 있다. 수강료 대납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말일까지 3명의 수강료 9만 원을 우리가 대신 내지 않으면 다음 달 5일에 강사료를 못 받기 때문이다. 한 과목도 빠짐없이 모든 수강료가 다 입금되어야 강사료가 나온다. 이게 학교의 원칙이다.

반면 다른 학교는 대납은 없다. 행정실에서 직접 연락을 돌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 달 강사료가 이번 달 하순에 나올 정도로 늦어진다는 것이다. 제일 일찍 받아본 게 15일이다. 26일에 받아본 적도 있다. 생계형 강사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미약한 지원, 교재비 부담도 만만찮다

- 독서논술 과목이니까 교재비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비용은 어떻게 처리하나?
"나는 따로 교재를 쓰지 않고 수업에 필요한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쓴다. 대신 독후활동지를 스프링제본해서 제공한다. 재료비 명목으로 1년에 1만 원이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아예 받지 말라고 했다. 수강료 외 돈은 강사이름으로 학부모와 절대 연결이 되면 안 된다는 거다. 그래서 인쇄 총비용을 학생 수로 나눠 계산한 금액을 인쇄소에서 견적서를 받아 학교에 제출한다. 내가 만든 교재인데 교재의 아이디어에 든 비용은 1원도 못 받고 제작비용만 받는 셈이다.

독서신문도 만드는 데, 한 학교에서는 4절지, 색종이, 기타비용으로 2000원을 받았다. 그런데 재료비를 못 받게 하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직접 사오라고 한다. 그러면 80%는 가져오더라도 20%는 안 가져온다. 맞벌이부부 집이 많기도 하고, 1~2학년 아이들이라 재료준비를 잘 못해오기도 하고, 학교 주변 문방구에서 팔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대신 사오고 아이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도 안 낸 사람이 있다.

학교와 거래하는 문구센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지출결의서, 견적서, 품의서 등 필요한 서류가 만만치 않고, 그 서류작성도 방과후학교 담당 선생님의 업무라 부탁드리기도 어렵다. 담당 선생님, 교감 선생님과는 내년 계약 때문에라도 이야기할 엄두를 못 낸다."

- 여러모로 많이 속상할 것 같다. 다음 주말(8월 22일) 방과후강사의 처우문제를 다루는 첫 국회토론회가 열린다. 마지막으로 방과후강사로서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말해 달라.
"방과후강사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한해 계약을 마치면 다음 해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는 수학 선생님은 올해 학교가 위탁운영으로 전환하면서 잘렸다. 학교는 서류를 제출할 때조차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고, 선생님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수학은 주 4회 수업이라 1개 학교에서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학교는 알아보지도 못하고 기존의 학교에만 원서를 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공모절차를 실시하는 게 교육의 질, 우수강사 모집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재계약, 채용의 실상을 보면 학부모들께 민망할 정도다. 내 경우만 봐도 그렇다. 수업하다가 도중에 나와 5분간 수업시연하고, 수업 관련 질문 3~4개 받고 끝났다. 채 10분을 넘지 않았다.

우리 방과후강사들은 2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다음 해 재계약 여부가 가장 큰 걱정거리이자 관심사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심각하다. 형식적이고 무성의한 채용절차가 대신, 방과후강사들이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아이들만 생각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제도개선이 꼭 필요하다."


태그:#방과후학교, #방과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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