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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국회에선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강신명 경찰청장과 조송래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장이 참석해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씨의 사망 의혹에 관한 현안을 보고하고 질의했습니다(관련기사: 야 "국정원, 경찰 따돌려" - 경찰 "그렇지 않다").

국회 상임위 회의를 이날처럼 집중해서 본 적은 없었습니다. 나름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원들의 지나친 의혹 제기에는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국정원 직원이 사건 현장에 개입해 경찰을 따돌렸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이를 부정했습니다. '야당의 의혹 제기-경찰과 소방의 해명-여당의 변호'가 반복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몇몇 의원들과 일선 소방공무원이 주고받은 질의-응답입니다. 소방교, 소방위(정확하게 말하면 '지방소방교', '지방소방위'입니다)는 의원들의 추궁에 긴장한 나머지 몸이 굳었습니다. 이 지방직 말단 공무원들은 '존경하는 의원님'의 질문에 답변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목소리는 떨리고, 말을 더듬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2010년 4월부터 2012년 3월까지 2년간 의무소방으로 대체복무했습니다. 이번 임 과장 사망 사건과 그에 관련한 의혹들을 보면서 든 생각을 제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경찰의 상황은 잘 모르기 때문에 소방과 관련된 의혹만 다뤄보겠습니다.

'화산리 34'가 아닌 '직장동료의 진술'을 따른 이유

일선 소방서에 복무하면서 위치추적 출동을 수십 차례 나갔습니다. 그때마다 '이걸 어떻게 찾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열 번 나가면 한 번 찾기도 어려운 것이 위치추적 출동입니다. 실제로 위치추적 출동에서 요구조자를 찾아본 기억이 손에 꼽습니다. 그마저도 지도에 표시된 위치에서 찾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대부분 신고자나 주변 지인이 알려준 정보로 요구조자가 갈 만한 곳을 수색해 찾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이처럼 위치추적 출동에서 지도에 표시된 위치보다는 지인의 진술이나 요구조자에 관한 정보를 더 중요한 단서로 삼습니다. 조송래 본부장도 말했듯이 위치추적은 2km까지 오차가 발생합니다. 지령서에는 요구조자의 정확한 위치가 뜨는 것이 아닌 근처 기지국의 위치가 표시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방서에서는 출동할 때 나오는 지령서에 찍힌 위치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소방공무원들이 처음 표시된 화산리 34번지로 향하다가 '실종자가 낚시를 즐겼기 때문에 저수지 주위를 찾아보라'는 상황실의 지시에 따라 화산저수지 쪽으로 이동했다는 설명이 저는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통상 위치를 추적할 때 사건 현장이 아닌 기지국으로 좌표가 나오기 때문에 오차범위가 크다, 현장에 나온 가족의 증언 등 정보 등을 취합해 (수색 범위를) 판단한다"라고 말한 조송래 본부장의 해명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당시 소방엔 '화산리 34'보다 현장에 나타난 '직장 동료'의 진술이 더 믿음이 갔을 것입니다.

소방이 경찰에 위치를 잘못 알려준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조송래 본부장은 "기계적 오류 때문이다"라고 답변했는데, 이는 맞는 말입니다. 소방의 위치추적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류도 자주 발생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장비 개선과 시스템 정비 등을 논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소방을 탓하는 건 무리... 국정원에 책임 물어야

양근서 경기도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소방 상황실이 '위치추적 관계자'를 언급한 부분이 논란이었습니다. 이 대목을 두고 소방이 그 관계자를 '위치추적이 가능한 국정원 직원'임을 인지했다는 것도 섣부른 판단입니다.

저는 그것이 '위치추적 (요구조자) 관계자' 즉 '임 과장과 직장 동료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한 번 물어보라'는 요청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교통사고 출동이었다면 피해자 주변인을 '교통사고 관계자'로 부르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직장 동료'가 어느 직장 사람인지 몰랐다는 소방공무원들의 답변도 수상하지 않습니다. 소방공무원들은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수사 목적으로 관련자들의 신원을 일일이 파악하지 않습니다. 수색하는 데 도움되는 정보 위주로 수집합니다. 결과적으로 '직장 동료'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것이 이 사건에서 중요해졌지만, 당시 소방공무원들에겐 그의 직장이 어디인지는 수색 과정에서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시 나타난 임 과장의 동료 국정원 직원은 소방공무원에겐 고마운 단서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직장 동료'라며 나타난 그의 말을 듣기 위해 세 차례 통화한 것을 소방이 국정원과 긴밀히 접촉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국정원 직원에겐 긴밀한 접촉이었을지 모릅지만, 소방공무원에겐 일반적인 수색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위치추적장치(MDM)를 통해 사건 현장에 교묘히 침투한 국정원 직원을 문제삼아야지, 그것을 소방공무원의 탓으로 돌리는 건 무리입니다.

소방이 만약 국정원에 장악돼 협조했다면 현장 직원이 아닌 상황실에서 긴밀하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상황실은 모든 현장을 통제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황실과 현장 직원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보면 국정원 직원이 현장 소방공무원을 교란했다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소방이 국정원에 긴밀히 협조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상황실에선 '직장 동료'에 관한 정보를 잘 몰랐습니다. 현장 직원이 그의 존재와 정보를 알려줬습니다.

'거미줄'(휴대전화)로 소통했다는 부분도 안행위 회의에서 큰 쟁점이었습니다. 조송래 본부장은 "현장 출동했을 때 간단한 내용만 무전으로 교신하고 상세한 내용은 휴대전화를 통해 상의할 수도 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현장에서 무전은 간단하게 상황을 보고하는 것에 사용합니다. 세세한 내용은 무전이 아닌 휴대전화로 소통합니다. 또한 조 본부장은 사건 당시 열두 건의 다른 출동도 있었다고 했는데, 이런 상황이면 더더욱 무전으로 소통하기 어렵기에 전화로 보고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무전을 피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양근서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도 유선 통화 내역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무전이 아닌 휴대전화로 보고한 것이 소방대원 수칙에 어긋나거나 보안상 문제삼을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현장 소방 활동과 크게 다른 '수상한 대처'는 아닙니다.

의혹 집착은 국정원이 바라는 일

물론 구급차 블랙박스의 28분 분량이 사라진 점, 시신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 초기 보고서 작성이 미흡했던 점 등은 저도 의아합니다. 마티즈를 왜 그리 서둘러 폐차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아울러 소방과 경찰 당국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면 그에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번 사건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달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관련기사: 사면 논란 중심에 선 정봉주 "정청래 징계했으면, 이용득도 해야").

"정부가 일부러 의혹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음모론은 종말론보다 더 위험하다. 사안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타살설이 있었다. 만약 그게 크게 불거졌다면 노 대통령 죽음의 의미는 더 퇴색됐을 것이다. 똑같은 게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이고 이번 마티즈 논란이다. 이번 국정원 사건으로 반짝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정원에서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고 해킹으로 사찰을 했다. 댓글조작과 해킹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국정원의 정치적 일탈을 문제 삼아야 한다."

저는 정 전 의원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는 국정원이 임 과장의 위치를 추적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국정원 직원이 교묘히 개입한 것에도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날 안행위 회의에서 경찰과 소방에 의혹을 덧씌운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소방과 경찰이 국정원에 장악당했고, 그에 협조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질의에 나섰습니다. 

어떤 의원은 자신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소방공무원을 심하게 다그쳤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2학년 학생 혼내듯이 말입니다. 말단 소방공무원은 의원의 말에 얼어붙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들은 현재 용인에 근무한다는 점, 그리고 하필 그날 당번 근무였다는 점이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이렇게 큰 사안이 될 줄도 몰랐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정원이 불법 해킹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국가 정보기관이 '직원 일동'으로 성명서를 낸 정치적 단체 행동을 했다는 점도 전례없는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이러한 국정원의 행태에 확실한 처벌과 추궁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곁가지 의혹에 빠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밝혀질 가능성이 낮은 음모론에 집착하면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에서도 유병언 타살설을 비롯한 여러 음모론에 휘말렸습니다. 결국 지금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혹을 제기하다가 밝혀지는 것이 없으면 국민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낍니다. 얼마 전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제기한 '임 과장이 들른 가게에 번개탄을 팔지 않는다'는 의혹은 하루 만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국민들은 '국정원 해킹 사건' 전체에 염증을 느낄 것입니다.

의혹이 있으면 규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임 과장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차후 해결해도 될 문제입니다. 당장 명확하게 드러난 불법의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곁가지 의혹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국정원이 원하는 바일 수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임성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국정원 해킹 사건, #임 과장 사망 의혹, #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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