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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수문(北水門)은 방화수류정의 서쪽 44보 되는 곳에 있다. 광교(光敎) 대천(大川)이 성 전체를 가로로 자르며 흐르고 있어, 여름 장마 때마다 범람하는 환난이 있었다. 그래서 성을 쌓기 시작할 때에 물길을 내는 일을 먼저 하였다. 넓혀서 소통을 시키고 7간의 홍예로 된 돌다리를 하천 위에 걸쳐서 설치하였다. 그 동서로 각각 3간은 아래 너비가 8척, 높이가 7척 8촌, 가운데 한 칸은 너비가 9척, 높이가 8척 3촌이다.'

화성성역을 시작하면서 1794년 2월 28일 장안문, 팔달문, 화홍문, 남수문 터를 먼저 닦았고, 3월 1일부터 도랑 치는 일을 시작했다. 도랑 치는 일은 수원천을 준설하면서 도랑을 넓힌 것인데 화홍문 밖 5~6백보에서 시작해 남수문 밖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수원화성 축성에서 도랑 치는 일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여름 장마 때마다 범람하던 수원천의 치수가 해결되어야만 북수문과 남수문을 제대로 건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준설을 통해 나온 막대한 양의 자갈과 모래는 성을 쌓는데 이용되었을 것이다. 성을 쌓은 뒤에도 매년 여름 장마가 걷히면 개울을 쳐서 소통시키는 것을 연중행사로 한 것을 보면 치수(治水)야말로 가장 중요했던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원화성 화홍문앞에 이무기돌 한쌍이 있다.
▲ 수원화성 화홍문 수원화성 화홍문앞에 이무기돌 한쌍이 있다.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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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수문 동서 양 끝에는 8면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이무기를 새겼다.'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이다.

북수문의 구조는 아래 부분은 홍예로 된 7간 수문이고, 수문 위에는 화홍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누각을 세웠다. 누각 안쪽으로 다리를 넘나들 수 있는 5척 너비의 길을 만들었는데 길 양 끝에 이무기돌 한 쌍이 성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화성성역의궤' 북수문 내도(北水門 內圖)에 한 쌍의 이무기돌이 보이고, 뒤에 이무기 기둥돌인 이주석(螭柱石)이 북수문에 보인다며 그림으로 자세히 그려 놓았다. 그림을 보면, 양 같기도 하고, 해태 같기도 하고, 네발에 꼬리도 달려있는데 왜 이무기돌이라 하는지 아리송하다.

수원화성 화홍문 앞에있는 이무기돌, 이무기돌인데 모양은 동물이다.
▲ 이무기돌 수원화성 화홍문 앞에있는 이무기돌, 이무기돌인데 모양은 동물이다.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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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서쪽에 석각 이두(石刻 螭頭)를 설치하였는데, 물이 많이 차면 이 이두로 물을 화홍문 밖으로 뿜어내게 되어 있다.' 이무기 머리돌을 석이두(石螭頭)라 하고 그림으로 그려 놓았는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용머리와 비슷한 이무기 머리를 그려 놓았다.

화홍문에 있는 이무기 기둥돌인 이주석(螭柱石)과 용연에 있는 이무기 머리돌인 석이두(石螭頭)는 같은 이무기인데 생김새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궁금하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그림 외에 다른 기록이 없어 이무기돌의 단서를 다른 기록에서 찾아봤다. 이무기돌의 사전적 의미는 '성문 따위의 난간에 끼워서 빗물이 흘러내리게 하는 이무기 머리 모양의 돌로 된 홈'으로, 용연에 있는 석이두(石螭頭)가 생김새나 용도가 사전적인 의미와 비슷하다.

이무기 머리돌인 석이두
▲ 용연의 석이두 이무기 머리돌인 석이두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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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서울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보물 제1762호인 창덕궁 금천교(昌德宮 錦川橋)는 창덕궁 돈화문(敦化門)을 지나 진선문(進善門)으로 가는 길에 창덕궁 내부를 흐르는 금천(禁川)을 건너게 되는 돌다리로 태종 즉위 11년인 1411년에 축조되었다. '홍예 기석상의 간석(間石)에 사자두(獅子頭)를 부조하였으며 교상(橋床) 양변에 이주석(螭柱石)을 놓고, 회란석(廻欄石)을 연결하는 돌난간을 만들었다.' 금천교에 이주석(螭柱石)이 보이지만 용도를 알 수는 없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한옥용어로 이무기돌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무기돌은 홍예교 안쪽 가장 높은 곳에 설치하는 서수(瑞獸)머리 모양의 석물(石物)이라고 한다.

'홍예교(무지개 모양)의 원호 가장 높은 곳 안쪽 중앙에 설치하는 것으로, 상상 속 동물인 서수(瑞獸)머리를 조각한 것이 이무기돌 입니다. 이무기는 천년을 묵어야 용이 된다는 전설의 동물입니다. 천년의 오랜 시간을 용이되어 승천하지 못하니 그 서기가 이만저만 아니겠죠. 장마철 거칠 것 없이 불어난 수마가 다리를 삼킬 듯 달려오다 이 이무기돌을 보고 놀라 기세를 누그러뜨린답니다. 다리의 안전과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악귀를 막아낸다는 상상속의 동물입니다. 홍예로 조성된 궁궐의 금천교나 사찰의 세심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화성성역의궤에 나와있는 이무기돌인 석이두와 이주석 그림
▲ 화성성역의궤의 이무기돌 화성성역의궤에 나와있는 이무기돌인 석이두와 이주석 그림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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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홍문 앞에 있는 이무기돌은 8면으로 된 돌기둥 위에 이무기를 새긴 것인데,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의 이무기돌은 돌기둥 아랫부분과 윗부분이 깨어진 것을 붙인 흔적이 보이며, 오른쪽의 이무기돌도 돌기둥 아랫부분이 깨어진 것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이무기돌이 보는 방향이 틀어져 서로 보는 방향이 다르다.

1922년 7월에 있었던 대홍수 때 수원천이 범람하여 화홍문 누각이 소실되었는데, 이때 이무기돌도 파손 되었다가 이후 '수원명소보존회(水原名所保存會)'에서 1935년 화홍문을 복원할 때 같이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홍문에 있는 이무기돌은 벽사(辟邪)의 의미로, 해마다 수원천이 범람하는 환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치수(治水)에 대한 희망과 백성들을 편안케 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원화성, #화홍문, #이무기돌, #화성성역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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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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