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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몽골 중서부의 반사막 지역인 엘승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의 바양고비(Bayan Gobi) 캠프의 게르(Ger) 안에서 몽골의 더운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식당에 식사를 하러 오라는 시간에 맞추어 대형 게르 안에 만들어진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게르 식당에서 몽골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달라고 했다. 그래서 먹게 된 것이 몽골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경양식인 '골랴시'다.

헝가리에 기원을 둔 이 음식은 몽골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러시아에 의해 몽골로 들어왔고 이제는 완전히 몽골화 된 음식이 되었다. 골랴시는 접시 위에 소고기와 밥, 감자가 담긴 상태로 나왔다. 보통 매콤한 수프에 담겨 있기도 한데, 이 식당의 골랴시는 외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해서 수프를 뺀 것 같다.

몽골에는 가축으로 기르는 소들이 워낙 많아서 음식에 포함되는 고기의 양은 항상 풍성하다. 골랴시에도 고기가 가득 담겨 나왔다. 몽골의 육류로는 양고기, 소고기, 말고기가 많이 사용되는 편인데 골랴시는 소고기로 조리되어 있다.

소고기와 감자를 주원료로 하는 몽골의 대중적인 식사이다.
▲ 골랴시 소고기와 감자를 주원료로 하는 몽골의 대중적인 식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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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랴시의 전체적인 맛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몽골의 초원에서 자유롭게 방목되는 소를 재료로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고기의 육질은 약간 질긴 듯하면서도 싱싱하다. 소고기를 쪄서 조리했기 때문에 갈비찜과도 비슷한 맛이 난다. 몽골의 고기는 핏물을 전혀 빼지 않고 조리해서 약간 비위가 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날 먹은 골랴시에서는 전혀 그런 맛이 없어서 괜찮았다.

몽골에서는 귀하다는 감자와 양배추가 소고기와 약간 어색하게 어울리고 있다. 같이 나온 샐러드에는 오이와 방울토마토가 주로 담겨 있다. 몽골음식을 몇 번 접하여 보니 채소는 주로 감자, 당근, 오이로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몇 종류에 편중된 것을 보면 몽골에는 채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채소를 조리하는 문화는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 샐러드에는 조미료가 많이 사용하지 않고 소금 간만 되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채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다.

야채가 귀한 몽골에서는 야채 조리법이 다양하지는 않다.
▲ 야채 샐러드 야채가 귀한 몽골에서는 야채 조리법이 다양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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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함께 여행 중인 몽골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과거에 몽골인들은 육류와 유제품만 먹고 채소는 전혀 먹지 않았다면서요?"

한국에서 13년을 살았다는 몽골 친구는 유창한 한국어로 답해 주었다.

"요새는 주변 국가들과 교류하면서 채소 소비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부분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고 오이 등 일부만 비닐하우스 등에서 생산하고 있어요. 몽골에 음식문화가 많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농사 없이 가축만을 길렀던 유목민들의 척박했던 과거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몽골인들이 먹는 것 두고 서로 위화감을 느낄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는 먹는 음식에서 누구든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대초원에서 몽골 말과 까치를 만났다

초원의 개울은 몽골 가축들에게는 젖줄과 같은 물줄기이다.
▲ 엘승타사르하이 개울. 초원의 개울은 몽골 가축들에게는 젖줄과 같은 물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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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고 몽골의 대초원으로 나가 보았다. 캠프 인근에는 몽골 유목민들의 게르가 있고 유목민들이 키우는 몽골의 온갖 가축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가축들 가까이 가서 보니 초원 한가운데로 제법 큰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젖줄 같은 물줄기가 있기에 유목민들이 이곳에 게르를 짓고 가축들을 풀어놓은 것이다. 초원의 바로 서쪽에 사막지대가 있는데도 이곳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이 초원의 물줄기는 동물들에게는 축복받은 물줄기이다.

몽골말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 초원의 말. 몽골말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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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안에 몽골 야생마들이 모여들어 발을 담그고 있다. 몽골의 말들은 여름의 한참 더운 낮에 무리를 이루어 호숫가나 연못, 그리고 개울가의 물속에 발을 담그고 쉬는 습성이 있다. 시원한 물에 발을 적시면 더위가 가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개울물에 발을 담그면서 겹겹이 에워싸며 무리를 이루는 것은 야수의 습격으로부터 망아지들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에서 나온 습성이다. 말들이 이렇게 천적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모여있을 수 있는 곳이 이 몽골 외에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말들이 바로 눈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본격적으로 말들을 관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몽골의 말은 제주도에서 만날 수 있는 조랑말들과 똑같이 생겼다. 작은 체구와 탄탄한 몸이 서로 닮은 것은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하던 당시에 몽골 야생마를 제주도에서 길렀기 때문이다.

눈앞의 몽고 말들은 키는 작지만 가슴이 잘 벌어져 있고 근육이 잘 발달하여 있다. 한눈에 봐도 다리가 튼튼하고 근육이 굵어서 오랫동안 달리는 지구력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몽골 말의 지구력이 원나라의 유라시아 원정을 가능하게 했고 결국 세계를 제패하게 한 것이다.

초원에서 태어난 망아지가 엄마 말의 젖을 찾고 있다.
▲ 망아지. 초원에서 태어난 망아지가 엄마 말의 젖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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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야생마들이 자라는 초원의 개울가는 말들에게는 아주 행복한 환경이다. 몽골에는 풀이 자라는 초원과 숲뿐만 아니라 엘승타사르하이 지역과 같은 사막지대도 있고 풀이 거의 없는 고산지대도 있기 때문이다.

몽골의 말이 물이 많지 않은 환경에서도 잘 버티는 것은 몽골의 이러한 다양하고 극한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온 유전자 때문이다. 겨울에도 언 땅에서 먹이를 찾아 먹는 강인함과 지구력은 그들을 지구상에서 가장 강인한 말로 만들었을 것이다.

엘승타사르하이 초원을 걷다 보니 납작하게 퍼져서 말라버린 말똥과 소똥이 지천이다. 가축의 똥들을 피해 걸으면서 보니 붉은 부리 까마귀 떼들이 모여서 곤충들을 찾아 먹고 있다. 붉은 부리 까마귀들은 나무가 많지 않은 산과 평원의 풀밭에 사는 몽골의 텃새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가끔 눈에 띄는 희귀종인데 이곳 몽골 초원에는 초원 새 그룹의 대표 새이다.

몸체가 조금 작고 부리가 붉은 까마귀가 풀밭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 붉은 부리 까마귀. 몸체가 조금 작고 부리가 붉은 까마귀가 풀밭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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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은 우리나라 까마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크기는 조금 더 작고 이름대로 부리가 붉어서 아름답다. 가늘고 붉은 부리가 마치 매니큐어를 칠한 듯이 검은 몸체에 포인트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까마귀같이 우는 소리도 음산하지 않고 귀엽게 들린다. 이름만 까마귀이지 생긴 모습이나 행태는 전혀 까마귀 같지 않은 예쁜 새이다.

초원에서 자유롭게 자란 새들이라서 그런지 사람인 내가 접근해도 별로 도망갈 기색이 없다. 내가 받은 느낌은 이 초원에서 사람과 새라는 구분은 없고, 그저 친구 같은 생명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다.

우리나라 까치와 똑같이 생겼지만 추운 겨울을 겪어서인지 거칠어 보인다.
▲ 몽골 까치. 우리나라 까치와 똑같이 생겼지만 추운 겨울을 겪어서인지 거칠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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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몽골의 까치는 우리나라 까치와 똑같이 생겼다. 우리나라 까치들이 농촌이나 도시에서 잘 먹어서 반질반질했지만, 몽골의 까치들은 거친 바람을 맞고 추운 겨울을 버티기 때문인지 상당히 거칠어 보인다.

똑같이 생겨서인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담도 몽골과 같다. 어디에서 전래되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와 몽골이 가까운 지역에서 함께 거주할 때에 공유했던 속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몽골 초원에서 들은 바람의 노래, 귓가 맴돈다

우리나라 황소와 달리 소들이 참 다양하게 생겼다.
▲ 몽골 소. 우리나라 황소와 달리 소들이 참 다양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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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 방목 중이던 몽골의 소들은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나무 밑으로 피해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의 소는 황소와 같이 몸체의 색이 대부분 같은 편이다. 그에 비해 몽골에는 검은 소도 있고 황소도 있고 점박이 소도 있다. 마치 몽골 초원의 다양한 부족들의 전통의상이 서로 다른 것과 비슷해 보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초원의 송아지들은 어미 소 옆에서 맘대로 뛰어놀고 있다.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 몽골 초원에 태어난 송아지들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우리에 갇혀서 길러지는 다른 나라 송아지들의 갑갑한 삶을.

게르 주변의 가축들은 유목민 주인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 유목민 게르. 게르 주변의 가축들은 유목민 주인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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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들을 키우는 게르의 주인은 말을 타고 가축들을 둘러볼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이곳의 유목민은 자기가 기르는 말을 타고 이동하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오토바이를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토바이는 몽골의 초원과 가장 어울리는 기계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길도 없는 초원 위를 달리려면 승용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더 적당하기 때문이다. 초원과 가축, 게르, 그리고 유목민이 탄 오토바이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편안해 보인다.

유목민이 이용하는 오토바이는 이곳 초원과도 잘 어울린다.
▲ 유목민의 오토바이. 유목민이 이용하는 오토바이는 이곳 초원과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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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낮에 아내를 데리고 다시 몽골 초원의 개울가로 나왔다. 개울가여서 그런지 전혀 여름의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개울가 풀밭 위에 궁둥이를 붙이고 나란히 앉았다. 개울 속에 발을 담근 말들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초원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몽골의 노래 같았다. 초원의 말 울음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귓가를 맴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엘승타사르하이, #바양고비,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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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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