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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관련 도서. 내가 기사를 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글쓰기 관련 도서. 내가 기사를 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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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친척 중에 거란족이나 여진족 출신 있니?"

심각하게 물었다. C는 피식하고 웃다 표정을 바꿨다. 또 물었다. "부모님 뭐 하시니?"란 질문에 '아버님은 장사하시고, 어머님은 그냥 집에 계시는데, 왜요?'라고 되묻는다. 편모나 편부 슬하에서 자라지 않은 건 확실했다.

말하듯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다

지난 7월 19일 일요일, 온종일 사무실에서 죽쳤다. 화천군의회 정례회가 시작됐다. 15일간 일정 중 '군정 질문'이 포함돼 있다. 의원들의 질문에 집행부 실·과장들이 답변한다. 국회에서 하는 대정부 질문과 형식은 비슷하다. 군정 질문 전, 의원질문에 대한 답변서를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의회 관련 업무는 기획부서 담당이다. 각 실·과에서 작성한 답변서를 취합해 의회에 제출하는 것이 내 일이기도 하다. 면밀한 검토는 필수다. 질문내용과 동떨어진 동문서답 식 답변, 핵심을 찾지 못해 불필요한 내용만 열거한 글, 매끄럽지 못한 문맥을 바로잡았다. 한동안 편집에 몰두하다 보면 <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들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8만여 명의 시민기자들이 쓴 글을 어떻게 다 볼 수 있을까!'하는 감탄이다.

부서는 다르지만 대충 읽어보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한다. 30여 년 가까운 공무원 짬밥 때문이겠다. 불필요한 접속사 빼고, 단문으로 고치길 수차례. 때론 핵심만 살려 놓고 다시 쓰기도 한다.

갑자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C 직원이 작성한 딱 반 페이지 분량의 글. 이해가 안 된다. 읽고 또 읽어도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결론을 내렸다. '이건 한국말이 아니다.'

다음날, 조용히 C를 불렀다. 친지 중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여진이나 말갈 말이 아닌 건 분명했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인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C는 '아! 이거요?'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너무 쉽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것도 모르느냐'는 투로 나를 흘낏 본다. 말로는 번지르르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왜 글로 옮기진 못했을까.

내게 보내기 전, 그는 몇 번을 다듬고 수정을 했을 거다. 그런데 그 내용은 C만 안다. 본인이 보기 위해 쓴 글이 아닐 텐데, 어쨌든 결과는 그랬다.

문제가 뭘까. 먼저 글쓰기 훈련이 되어있지 않는다는 거다. A4용지 반 페이지나 되는 글을 한 문장으로 썼다. 본인은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문장이 길어지면 주어와 서술어 구분이 모호하다. 숱한 수식어를 끌어다 붙인 글은 누더기가 되었다. 설명을 들은 후, 모두 삭제하니 딱 두 문장으로 정리됐다.

쉽게 쓴 글이 잘 쓴 글이다

지난해 화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시책을 추진했다. 심사위원인 나는 여러 편의 글 중 하나를 뽑았다. 아버지와의 갈등을 그린 내용이 가슴에 짠하게 와 닿았다. 전체를 한꺼번에 봤을 땐 그랬다.

심사위원들 모두 같은 생각을 했던지 그 작품을 일등으로 선정했다. <오마이뉴스> 기사 소재로 적합할 듯했다. 저작자로부터 기사로 써도 좋다는 승낙을 받았다.

기사작성을 위해선 최소한의 편집이 필요했다. 반복되는 문구, 불필요한 접속사, 장문을 단문으로 바꾸기 등 편집을 마치고 '초고'를 보냈다. 한참 뒤에 연락이 왔다. 자신의 글을 한 문장도 고치지 않는 조건으로 기사승낙을 하겠단다. 불가능했다. 단어가 뒤엉킨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작품은 빛을 보지 못하고 생명을 잃었다.

C와 비슷한 경우다. 글쓰기 초보의 경우 아집에 빠지기 쉽다. 자신이 쓴 글에(스스로 잘 썼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게 문제다. 객관성 결여가 원인이다.

'가장 잘 쓴 글은 쉽게 쓴 글이다.'

언젠가 <오마이뉴스> 김병기 국장이 지역 투어에서 한 말이다. 20년이 넘게 기자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중학생인 아들에게 검토를 받는다고 했다. 어렵다고 말하면 새로 쓴단다.

일기가 아닌 이상, 누구나 노출을 목적으로 글을 쓴다. 개중 글쓴이만 이해하는 글이 있다. 원인이 뭘까. 전문적인 용어를 남발할 때, 한 문장이 끝 간 데를 모르고 이어질 때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단문을 중시하는 이유다.

공문서, 쉽고 정확하게 써야 한다

"기안이나 계획서를 올릴 때, 계장이나 과장들이 좀 고쳐 줬으면 좋겠다."

주요 회의 석상, 최문순 화천군수는 실·과장들의 신중한 검토를 말했다. 오타는 차치하고라도 문맥이 맞지 않아 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미다. 담당자가 기안하면 1차로 담당(계장)이 검토한다. 이어 과장, 부군수를 거쳐 (주요 문서의 경우) 군수가 결재한다.

부군수는 실무선에서 충분한 검토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충분한 검토를 했는데도 그 모양이라면, 생각해 볼 일이다. 글쓰기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선 짬밥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의 능력 문제다.

1년에 서너 번 글쓰기 강좌에 나선다. 직장인, 선생님, 마을대표 등 대상도 다양하다. 지역주민을 위한 재능기부도 마다치 않는다(그의 자기소개란이 특별한 까닭). 그런데 정작 공무원들 글쓰기에 대해선 생각지 못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공무원 대상 글쓰기 강의를 생각했다. 일반인과 다르게 공무원들이 작성한 문서는 정확성을 요구한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애'다르고 '에'다르다고 했다. 정확하고 쉬운 내용전달은 필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글쓰기, #공무원 글쓰기, #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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