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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터라 종종 서점에 들른다. 한꺼번에 여러 권을 주문하는 버릇이 있어 책을 구입할 때는 주로 인터넷서점을 이용하지만, 집에서 깜빡하고 책을 빠뜨리고 오거나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생길 때는 일부러 시간을 내 서점엘 들른다. 서점에 들어서면 광활하게 진열돼 있는 책의 바다가 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인문사회 관련 책에 관심이 있어 그런지 발걸음은 자동적으로 인문사회 쪽 진열대로 향한다. 진열대 위에 누워있는 책들을 이리저리 훑다보면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많이 띈다. 밥, 생각, 희망, 이미지, 관찰, 광고, 엄마 등등…. 인문학이 붙지 않은 제목을 찾기 힘들 정도다. 서점의 사방팔방이 인문학으로 가득하다. 

제목에 많이 쓰인다는 건 그만큼 '인문학'이란 단어가 판매량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는 뜻일 테다. 하지만 마케팅 수단으로써의 인문학이 남발될수록 인문학 본연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고 만다. 이원석 작가는 <인문학 페티시즘>이란 책을 통해 '인문학 아닌 인문학'이 판치는 세태를 비판한다.

인문학 페티시즘

(이원석 지음 / 필로소픽 펴냄 / 2015.03. / 1만3500원)
▲ <인문학 페티시즘> (이원석 지음 / 필로소픽 펴냄 / 2015.03. / 1만3500원)
ⓒ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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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인문학적 상황은 어떠한가? 실로 활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에나 인문학이 넘실대고, 누구라도 인문교양을 주목한다. 당장 사회의 음지에서는 인문고전을 손에 들고 숱한 독서 멘토, 인문 멘토들이 찾아간다.

마치 인문학이 이제 한반도를 점거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 <인문학 페티시즘> 본문 9쪽 중에서

"마치 인문학이 한반도를 점거하고 있는 듯하다"며 약간의 과장을 섞긴 했지만, 저자의 지적은 타당하다. 실제로 인문학을 표방하지만, 인문학보다는 시류에 편승해 오로지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는 수준 이하의 책들이 출판시장을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인문학은 진짜라는 수사를 붙여야 할 정도로 더럽혀졌다.

저자는 이러한 "도구 혹은 장식이 되어버린 인문학에 대한 열광(18쪽)"을 가리켜 '인문학 페티시즘'이라고 명명한다.

페티시즘은 물신 숭배라는 뜻으로 특정 사물에 초자연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그것을 숭배하는 일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를 차용해 인문학에 신적인 속성을 부여하고 숭배하며, 인문학이 자기계발의 도구가 된 현실을 명쾌하게 짚어낸다.

인문학 시장의 아이돌 강신주

2012년 3월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2012년 3월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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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는 전통적 철학자와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기계발 강사들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하고 있다. (중략) 사실 지금 그의 모습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철학적 상담이라기보다 철학적 자기계발이 아닐까?" - <인문학 페티시즘> 본문 45쪽 중에서

<인문학 페티시즘>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인 강신주를 소위 '저격'하고 있어서였다. 돌직구 철학자로 불리는 강신주는 책을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요컨대 강신주 자체가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이 모자라서 강연을 못 할 정도로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는 강연 부자다. 철학자면서 대중성까지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마냥 강신주의 방식을 상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신주의 책과 강신주가 출연하는 팟캐스트 등을 즐겨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정답이라고 판단한 바를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내리찍는 화법에 질려 등을 돌렸다. 철학은 정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성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여러 갈래의 길을 터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가지 길을 정해 그곳으로 가라고 등 떠미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강신주는 일종의 도깨비방망이다. 돌직구로 그것을 내리치면 정답이 툭 하고 튀어나온다. 반면 자기 성찰은 상당한 노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의지를 동원해야 하는 능동적인 행위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수동적인 생활을 강요당해왔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정답지를 받아 외우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강신주가 내리치는 도깨비방망이에 환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돈벌이로 전락한 인문학

분명 자기계발서인데도 겉에 인문학을 두르고 있는 책이 있다. 저자는 인문학으로 둔갑한 자기계발서를 쓴 대표적인 인물로 이지성을 꼽는다. 이지성은 'R=VD'라는 공식을 설파한 책 <꿈꾸는 다락방>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런데 '생생하게 꿈꾸면 이뤄진다'는 신비주의적 내용을 다루던 이지성은 급작스럽게 종목을 인문고전으로 바꾼다. 인문고전을 다룬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인문고전과 성공학을 교묘하게 결합한 이 책은 소위 대박을 쳤다. 시류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야 할까. 최근에는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책을 냈다. 인문학이 범람하는 현 세태를 정확하게 읽었는지 제목에 '인문학'을 박아놓았다. 이 책 역시 현재 인기도서 목록 상위권에 있다.

"자기계발 작가들이 생존과 성공의 수단으로 인문학을 활용하는 현실은 실로 개탄스럽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인문학이며, 그들이 참된 인문학도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보다 이렇게 인문학을 활용해서 정말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는 더욱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 - <인문학 페티시즘> 본문 127쪽 중에서

이 같은 모습은 인문학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밀접한 독서와 글쓰기 쪽에서도 발견된다. 몇 년 안에 수백 수천 권의 책을 읽기만 하면 성공한다거나, 자신에게 글쓰기를 배우면 베스트셀러 작가로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속삭이는 책들이 난무한다. 인문학이라는 탈을 뒤집어쓴 자기계발서가 호시탐탐 독자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

인문학의 본령을 향해

문학평론가 김현은 <한국문학의 위상>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는 질문에 답한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고 말이다.

김현의 말을 풀이하자면 이렇다. 문학은 쓸모없어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이 욕망하는 대상(단적인 예로 돈을 들 수 있다)은 그 대상을 욕망하면 할수록 인간을 억압한다. 쓸모에서 자유로운 문학은 인간이 욕망하는 대상이 도리어 인간을 억압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의 본령도 여기에 있다. 인문학이 인문학이 아닌 시대다. 다시 한 번 김현의 답을 곱씹을 때다.

PS
저자는 <거대한 사기극>이란 책으로 자기계발서가 횡행하는 현 사회를 제대로 꼬집었다. <인문학 페티시즘> 역시 비판할 만한 현 세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시종일관 밀어붙이는 투의 문체, 매끄럽지 못한 문장, 무성의한 편집은 책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글의 신뢰성까지 무너뜨린다. <거대한 사기극>에서 보여준 깊이와 통찰이 <인문학 페티시즘>에서는 보이지 않아 아쉽다. 이를 본문에 남기기엔 저자의 본의를 해칠 것 같아 글 말미에 남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인문학 페티시즘>(이원석 지음 / 필로소픽 펴냄 / 2015.03. / 1만3500원)

이 기사는 김무엽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페티시즘 - 욕망과 인문의 은밀한 만남

이원석 지음, 필로소픽(2015)


태그:#자기계발서, #자기계발서 비판, #사회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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