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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흰돌리마을(안성시 금광면 석하양지편길) 이종필 이장님의 아침 마을방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아~ 알리것습니다. 13일 초복이라 마을회관에서 노인회가 준비한 삼계탕을 먹을 예정이오니 마을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점심때 나오셔유."

초복이라고 마을 노인회에서 삼계탕을 준비해 마을 잔치를 벌이고 있다.
▲ 초복 삼계탕 초복이라고 마을 노인회에서 삼계탕을 준비해 마을 잔치를 벌이고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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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 소집방송 시각은 항상 도시에선 어림도 없는 시각에 이루어진다. 이장님이 일찍 일어나시니 아침 6시쯤 방송이 나온다. 이보다 더 신기한 건 대부분 소집방송이 당일 아침에 이루어진다는 거다.

도시사람들이야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지만, 시골 분들은 당일 아침에 말해도 모두 받아들인다. 오히려 며칠 전에 미리 이야기 하면 까먹으시니 당일 이야기 하는 게 더 낫다. 당일 아침에 모임을 소집해도 대부분 오시니까.

11시 20분쯤, 나도 삼계탕 먹으러 마을회관으로 나섰다. 그리 넓지 않은 마을회관에 상마다 삼계탕과 웃음꽃이 가득하다. 방에는 제일 고령 어머니들 위주로 상이 차려졌다. 거실에는 남자상 2개, 여자상 1개 그리고 주방엔 조그만 상하나. 도합 5개의 상이 차려졌다.

수다가 오가고, 삼계탕이 오가고, 맥주와 소주가 오가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는 맘이 절로 든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좋았다. 태평성대가 따로 없었다.

"이봐! 사무장(우리 마을은 농촌체험마을이고, 나는 거기 사무장이며 마을주민이다) 말이여. 내가 할 말이 있어."

순간 무슨 말씀을 하실까 긴장이 살짝 된다.

방에 자리 잡은 고령할머니들의 자리다. 지금은 삼계탕을 드시고 난 후 후식으로 수박을 잡수시는 중이다. 맨 안 쪽에 자리한 두분이 바로 그 유명한 호랑이 할머니들이시다.
▲ 간식 중 방에 자리 잡은 고령할머니들의 자리다. 지금은 삼계탕을 드시고 난 후 후식으로 수박을 잡수시는 중이다. 맨 안 쪽에 자리한 두분이 바로 그 유명한 호랑이 할머니들이시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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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을회관에 6년 만에 왔자녀. 근디, 오늘 마을회관과 마을체험관 사이에 있는 가마솥 앞에 쓰레기들을 우리가 다 치웠어. 앞으로는 체험 온 학상들한테도 분리수거 잘하라 허고 좀 치우고 살어."

헉! 그랬다. 나를 부르신 어머니(편의상 호랑이 할머니)는 6년 만에 마을회관으로 납신 거다. 6년 전 부군께서 작고하시고, 그 어머니도 쓰러지신 후 마을회관에 발길을 끊으셨다. 6년 만의 귀환, 그러니까 호랑이 할머니의 귀환이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어른 말씀에 토 달거나 말대꾸를 또박또박 하는 것만큼 큰 결례는 없으렷다. 오랜 만에 마을회관에 귀환하셔서 나 딴에는 반가워서 인사하러 갔다가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삼계탕 식사가 끝나고 가마솥 아궁이 곁으로 나갔다. 거기엔 부녀회장 형수와 부녀회장 총무 형수와 울 마을 어머니 등 3분이 가마솥을 열심히 씻고 계셨다.

"형수님! 저 좀 전에 호랑이 할머니께 야단 들었시유. 안 치운다고."

그랬더니 그분들도 당장 응답이 온다.

문제의 가마솥 아궁이다. 이 앞에 어질러진 쓰레기들을 호랑이 할머니들이 귀환하셔서 싹 다 치우신 거다. 뿐만 아니라 가마솥에 불 때서 삼계탕 끓이라셔서 그렇게 하고는 설거지까지 싹 마친 상태다. 마을 공동 물건은 항상 깨끗하게 해놓아야 한다는 호랑이 할머니들의 엄명을 받들어서. 하하하하
▲ 가마솥 아궁이 문제의 가마솥 아궁이다. 이 앞에 어질러진 쓰레기들을 호랑이 할머니들이 귀환하셔서 싹 다 치우신 거다. 뿐만 아니라 가마솥에 불 때서 삼계탕 끓이라셔서 그렇게 하고는 설거지까지 싹 마친 상태다. 마을 공동 물건은 항상 깨끗하게 해놓아야 한다는 호랑이 할머니들의 엄명을 받들어서. 하하하하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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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덜도 야단 맞았자녀. 안 치워놓았다고. 아침에 2시간을 저 아줌니들이 여기를 다 치웠대유. 그라고 가마솥 놓아두고 가스로 삼계탕 끓인다고 뭐라셔서 가마솥에 불 때서 삼계탕 끓였자뉴."

헉! 오늘 뭔 날인가 벼. 삼계탕 먹는 날이 아니라 '호랑이 할머니들의 귀환 일'이었던 거다.
육순 어머니(칠순이 다 되가는)가 설거지를 하시면서 한 말씀하신다.

"우덜도 야단 맞았는디....... 근디 사람은 깔끔한 사람도 있고, 칠칠맞은 사람도 있지. 어찌 사람이 다 똑같디야...... 호호호호."

그 어머니 옆에서 무슨 공모자인양 나도 한 마디 거든다.

"맞어유. 저도 너무 깔끔한 것보다 좀 지저분한 게 맘 편혀유. 근디 엄니는 진작 며느리도 보셨는디 마을회관서 시어머니(?) 잔소리 들어셨네유. 하하하하."
"글게 말이여. 근디 사무장! 말 작게 혀. 누가 들어?"

이렇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어머니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신다. 헉! 또 다른 호랑이 할머니다. 들으셨나. 못 들으셨겠지. 다행이다. 못 들으신 게 분명해 보인다. 모르지. 들으시고도 못 들으신 척하는 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울 마을 호랑이 할머니 1 님의 포스를 보라. 지금 아궁이 앞에서 한 말씀 하시는 중이다. 나는 말씀 듣다가 얼른 사진을 찍었다.
▲ 호랑이 할머니 1 울 마을 호랑이 할머니 1 님의 포스를 보라. 지금 아궁이 앞에서 한 말씀 하시는 중이다. 나는 말씀 듣다가 얼른 사진을 찍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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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 말이여! 오늘 여기 가마솥 앞을 우리가 다 치운 겨. 다른 동네 사람들이 와도 깨끗허야재. 안 치워놓으면 뭔 망신이여. 학상들 한테도 잘 치우라고 혀."

좀 전에 호랑이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또 다른 호랑이 할머니에게 또 듣는다.

그랬다. 우리 마을에는 호랑이 할머니가 두 분이 계신다. 두 분 다 팔순이시고, 성격이 칼 같으시다. 우리 마을에선 여성분들 중에선 최고령에 속하시는 분들이다. 한 분은 '6년 만에 귀환'이고, 한 분은 '몇 달 만에 귀환'이다. 두 분 다 건강이 안 좋으셔서 그랬다. 

두 분이 귀환하셔 제일 먼저 한 일이 마을회관 청소를 하신 거다. 그러면서 아랫사람들에게 훈시하는 것까지. 아직도 본인들이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알리는 역사적 현장이었다.

그나저나 육순 어머니와 나는 '깨갱'할 수밖에. 험담한 건 아니지만, 괜히 무슨 포도 서리 하다가 들킨 사람들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순한 양이 되어 "네 알겠습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다시 마을회관에 들어가려니 한 어머니가 나에게 거수경례를 하시면서 웃으신다. 앞의 장면들을 멀찍이에서 지켜보던 칠순 어머니시다.

"사무장 말이여. 너무 맘에 두지 말어. 나이 들면 다 그러시는 겨."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애써 위로하시는 그 어머니가 귀여우시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일련의 상황들이 웃겨서, 난 또 한바탕 웃었다.

이 할머니가 6년 만에 귀환하신 분이다. 그동안 건강상의 이유로 집에 계시다가 오셔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시고는, 여전히 마을에서 건재함을 보여주셨다. 이 할머니의 포스도 장난이 아니다. 하하하하.
▲ 호랑이 할머니 2 이 할머니가 6년 만에 귀환하신 분이다. 그동안 건강상의 이유로 집에 계시다가 오셔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시고는, 여전히 마을에서 건재함을 보여주셨다. 이 할머니의 포스도 장난이 아니다. 하하하하.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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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어머니들이 오랜만에 귀환해서 아랫사람들에게 모범과 함께 잔소리를 하시고, 그 잔소리를 들은 육순어머니와 형수들이 잔소리를 듣고 실행을 하고, 중간 연배인 칠순 어머니가 아랫사람들을 위로하고. 사실 내가 다시 마을회관으로 들어간 것은 호랑이 할머니 한 분을 뵈러 간 거다.

"6년 만에 오셔서 너무 좋아유. 그 전에 건강이 안 좋으셔서 못 오실 땐 맘이 별로 였거던유."

그랬다. 호랑이 할머니들의 귀환이 좋은 것은 아직 그들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잔소리를 잔소리로만 받지 않고 기꺼이 행하는 아랫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옛날 가난하던 시절, 마을공동체에선 자연스러운 일(어른이 있고, 아랫사람이 있고, 공동체의 질서가 있었던)이 요즘 그리운 시절이다. 그녀들의 귀환으로 인해 우리 마을이 또 한 번 공동체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그나저나 삼계탕 식사를 마치고 나는 얼른 집으로 향했다. 왜? 우리 집 마당에 자란 풀들을 뽑으러. 호랑이 할머니 두 분이 모두 우리 집 뒤편에 사신다. 그 어머니들이 우리 집 마당 옆을 지나가시기 전에, 아니 지나가시다가 "사무장 말이여"라고 부르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했다.

마당엔 비가 내렸지만,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슈퍼맨의 힘'으로 마당 풀을 순식간에 다 뽑았다. 휴! 다행이다. 그분들이 지나가시기 전이라서. 하하하하하.


태그:#흰돌리마을, #공동체, #마을, #호랑이 할머니,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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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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