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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총 뜻 받들어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총 뜻 받들어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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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혁신의 길 대신 과거로의 퇴행을 선택했다.

새누리당은 의원들이 스스로 뽑고 재신임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8일 결국 끌어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의 주역으로 낙인 찍은 지 13일 만이다.

원내대표를 교체하라는 청와대의 노골적인 압박과 그 뜻을 따르는 친박(박근혜) 돌격대에 여당 의원들은 무기력하게 '백기'를 들었다. 유 원내대표는 헌정사상 최초로 청와대와 대립하다 자리에서 물러나는 비운의 원내사령탑이 됐다.

의원들이 직접 선출한 원내대표의 거취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면서 새누리당의 당내 민주주의는 과거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를 겸했던 '제왕적 총재' 시절로 후퇴했다. 김무성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라며 수평적 당·청 관계를 부르짖었지만 실천은 없었다. 유 원내대표가 물러난 새누리당에는 '청와대 2중대'라는 낙인이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원내대표가 되든 여당의 청와대 종속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고, 여당의 청와대 눈치 보기 속에 대야 관계마저 꼬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 원내대표는 사퇴의 변에서 13일간 버텼던 이유에 대해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라고 밝혀 박 대통령이 촉발한 당내 민주주의 후퇴를 정조준했다.

새누리당 정책 노선 혁신, 좌초 불가피

'따뜻한 보수의 길을 가겠다'던 유 원내대표가 물러난 후 새누리당 안에서는 '구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친박의 입김이 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의 정책 노선 혁신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좌초할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 왼쪽)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의원총회 뜻을 받아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며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오른쪽)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과의 오찬에서 박수치고 있다.
▲ 유승민과 박근혜 다른 표정 (사진 왼쪽)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의원총회 뜻을 받아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며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오른쪽)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과의 오찬에서 박수치고 있다.
ⓒ 유성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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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대선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배신'한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유일하게 '중부담 중복지' 노선에 따른 증세 및 복지 확대를 대안으로 모색해왔던 그룹이 유 원내대표 측이었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는 총선정책기획단(가칭)을 꾸려 다양한 정책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첫 삽을 떠보지도 못하고 물거품이 됐다.

또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낸 박 대통령의 서슬 퍼런 '제왕적 통치'로 인해 박근혜 정부의 노선에 반하는 정책 마련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에는 경제민주화에 비판적인 김종석 홍익대 교수가 원장으로 취임해 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내 수도권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총선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유승민 사퇴는 새누리당 내분의 끝 아닌 시작

유 원내대표가 사퇴했지만 새누리당 내분이 봉합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우선 후임 원내대표 선출을 놓고 파열음이 날 수 있다.

현재 당내에서는 그동안 서울시장 후보 경선, 국회의장 경선, 원내대표 경선에서 연패를 거듭한 친박계가 후보를 내지 않고 비박계의 반발을 사지 않을 중도성향의 인물을 합의 추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많다.

새누리당 김태흠 윤상현 김진태 의원이 8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 김태흠 윤상현 김진태 의원이 8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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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친박계가 당·청 관계 복원을 명분으로 원내대표 후보를 내는 욕심을 부릴 경우 당 내분 사태는 2라운드로 넘어가게 된다. 이 경우 원내대표 경선이 사실상의 '유승민 재신임' 투표의 성격을 띠게 돼 사생결단의 승부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당·청 갈등도 겉으로는 해소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내재돼 있다.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 벌어진 친박 대 비박의 이번 권력 투쟁은 내년 총선의 공천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초전 성격이 짙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는 선거에서 반드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한다"라고 했다. 내년 총선에서 당을 물갈이해 확실한 '친정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친박계가 유 원내대표를 끌어내리기 위해 일단 김무성 대표와 손을 잡았지만, 당이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들어가는 올 하반기부터는 김무성 흔들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렇게 보면 유 원내대표 사퇴는 당 내분 사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력 못 보여준 김무성... 당내 '김무성 책임론'도 뇌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8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8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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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당내에 일고 있는 '김무성 책임론'도 뇌관이다. 비박 내에서도 이번 사태를 제대로 중재하지 못한 김무성 대표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김 대표는 13일간 이어진 '거부권 정국'에서 청와대의 눈치를 보다 갈팡질팡했다. 유 원내대표와 함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유 원내대표로부터 등을 돌렸다. 

당·청이 극단의 충돌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의 회동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박 대통령에 눌려 별다른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여당 의원들이 임기가 2년 반 남은 대통령이냐, 아니면 스스로 뽑은 원내대표냐를 양자택일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는 비판이 크다.


태그:#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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