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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났다. 숨만 쉬고 있어도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흐르는 여름날의 오후. 멀쩡히 가동하던 장비가 노동자를 향해 추락했다. 원인은 용접불량이었다. 다행히 작업자가 크게 다치진 않았다. 재해자가 찾아간 병원에서는 '요추긴장 및 염좌'라는 진단을 냈다. 누가봐도 전형적인 '안전사고', 사람이 다친 '인사사고'였다.

그러나 회사는 '안전사고'가 아니라고 말한다. '장비고장 사고'란다. '안전사고'에 대해 대책협의를 요구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누군가 죽거나, 피가 터지고, 뼈가 부러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라인을 돌리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 문제가 발생한 용접불량에 대해 조치를 하고 '일하자'고 말한다.

사고 재발을 막기위한 대책협의가 우선이고, 합의서가 마무리 될 때까지 라인가동을 할 수 없다고 하자, 급기야 회사는 관리자들을 대거 동원해 라인가동에 나섰다. 노동자들도 노사가 기왕에 합의한 대로 선 대책협의 후 라인가동을 요구하며 맞섰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상당시간 동안 라인가동이 중단되었다.

7월 3일 의장1부 11라인 16반 샤시 엔진데킹장에서 마운팅 볼팅시스템 장비가 용접불량으로 작업자한테 추락했다.
 7월 3일 의장1부 11라인 16반 샤시 엔진데킹장에서 마운팅 볼팅시스템 장비가 용접불량으로 작업자한테 추락했다.
ⓒ 현대차 1공장 사업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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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지구 반대편 우리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면 좋으련만. 지난주 7월 3일 금요일 낮부터 지금까지, 자동차 산업 세계 초일류를 지향한다는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에서 현재 진행중이라는게 가슴 아프다. 

실소를 자아낸 질문 "아프냐? 진짜 아프냐?"

더욱 기가막힌 일은 재해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태도다. 사고가 벌어진 당일 저녁, 회사의 관리자 3명이 재해노동자의 집을 찾았다.

관리자들은 몇 가지 실소를 자아낼 질문을 던졌다. "아픈 거 맞냐? 진짜 아프냐?" 덧붙인 질문도 어이가 없다. "누가 시켜서 병원을 간 것이냐?"

사람의 도리란 무엇일까? 회사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을 찾은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던져야 할 말은 무엇일까? 다친 노동자의 집을 찾은 이유가 진정한 위로와 쾌유를 바라서가 아니라는 채워지지 않은 공백을 두고, '마땅한 사람의 도리'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초일류 기업의 '안전사고'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에 또 다시 아픔을 느낀다.

생산이 멈추고 이 문제에 대해서 노사가 근로감독관의 방문을 요청했다. 현장을 찾은 근로감독관은 "라인가동에는 문제가 없다"라면서도, "인본 중심이면 노동자들의 대책 마련 요구가 타당하며, 대책협의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회사는 근로감독관이 '라인가동에 문제가 없다'라고 했던 말만을 반복하며, 대책협의를 거부하고 당장 라인가동을 해야겠다는 의지만 보일 뿐,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협의에 미온적이다. 게다가 생산이 멈춘 것에 대해서 노동자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불안함을 조장하기 위해, '무노동 무임금'을 얘기하며 생산에 나설 것을 협박하는 상황이다.

라인을 가동하려는 사측에 맞서 노동자들이 안전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라인을 가동하려는 사측에 맞서 노동자들이 안전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1공장 노동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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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근로계약을 통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측이 기본적인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위험한 상황을 거부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작업중지권' 행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당연히 행사되어야 할 노동자의 권리이다. 게다가 '안전사고'가 발생한 마당에 이를 어물쩍 넘어가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라인이 가동된다면 필연적으로 사고가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럽다.

몸쓸 관행 지속하는 사측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현재의 사건만이 아니라는 것, 그동안 지속되어 왔던 하나, 하나의 연속선 상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현장의 노동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자동차 회사가 지난 7일 1공장장 권영만 이사의 명의로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난 3일 벌어진 안전사고와 유사한 사례가 "다른 공장에서도 '9건이나 발생'했지만, 그 중 4건은 협의조차 진행되지 않았고 나머지 사고 또한 협의시간이 40분 정도로 마무리된 바" 있다는 내용을 버젓이 소개하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소모적인 상황은 자제하라고, 생산과 임금손실의 문제에 대해서 누가 책임져야 하냐고 호소(?)하고 나섰다.

그러나 회사의 입장문은 그동안 현대차가 얼마나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를 도외시하고, 생산에만 주력했는지를 단적으로 시인한 내용으로,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유사한 사고가 9건이나 발생했지만, 그동안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없이 어물쩍 넘겨왔던 사측의 태도가 또 다른 형태의 사고를 불러온 원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또한 지적하듯이 이 문제는 분명 노동자와 회사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그 이해관계의 다름이 무엇인지 확인돼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노동자는 먹고 살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지, 생산을 위해 기꺼이 생명과 건강까지 내주려고 노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생존을 위해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안전하고 쾌적한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한 '정치', 보다 나은 삶의 질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분명히 다른 노사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마치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호도·왜곡 하는 것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는 아닐까.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쓴 손진우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입니다.



태그:#현대자동차, #작업중지권, #금속노조, #안전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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