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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기억순례에 참가한 시민들이 단원고 명예3학년 학생들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416기억순례에 참가한 시민들이 단원고 명예3학년 학생들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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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교실, 안산 단원고등학교 명예 3학년 교실에 가보셨나요?

교실에 학생들 책상도 있고 의자도 있고, 선생님이 쓰던 탁자도 있는데 칠판엔 보고 싶은 이름들이 가득한, 세상의 마지막인 줄 몰랐던 이들이 맑게 웃으며 때로는 장난치며 찍은 선생님과 아이들의 사진이 있는 그런 곳.

책상 위의 국화꽃, 그리고 과자와 음료수, 엄마 아빠와 형제자매들 그리고 친구들이 남긴 메모들이 책상 가득 있는 그런 교실. 학습 참고서가 빈자리에 놓여 있기도 하고, '3선 슬리퍼'와 체육복도 놓여 있는 그런 교실에 뜨겁지 않은 여름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더군요, 내가 찾아갔던 지난 주말의 그 교실에는.

'살아서 돌아오기'란 숙제도, '살아서 만나자'는 다짐도 이미 색이 바래졌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가 있는 그 교실을 엄마 아빠들은 말끔하게 청소를 하고 먹을거리를 놓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망연자실 앉았다가 눈물 훔치고 일어서고는 하는, 그런 교실을 둘러보았습니다. 곳곳에 얼굴과 이름을 알아버린 아이들, 엄마 아빠들의 사진이 있는 그곳은 가장 참혹한 인권 피해 현장이었습니다.

또 다른 4개의 교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살아온 이들이 공부하는 곳입니다. 10개 반에서 살아온 75명의 학생들을 4개 반으로 재편해서 공부하게 하는 그곳에는 또 다른 아픔이 있었습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도 다니고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니던 친구를 늘 생각하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데, 17살, 18살 그 나이로 그걸 견뎌야 하는데….

세상은 잔인하게 그들의 상처를 후벼 팠습니다. 이 아이들 중에는 병원을 8군데, 10군데나 다니며 치료를 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순간 생의 경계를 훌쩍 넘어가 버리는 건 아닐까, 그 학생들의 부모들은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요. 평생 트라우마를 이겨내야 하는 학생들인데, 인간적인 모욕까지 견디도록 하는 건 참 해도 해도 너무 한 것이지요.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있고  20여 일이 지난 뒤인 2014년 5월 9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청와대 인근의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던 자리가 생각납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그곳에 생존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학생들을 대신해서 학부모 대표가 말하던 게 기억납니다.

"우리만 살아와서 죄송합니다."

어떻게 그게 죄송할 일인가요? 그 뒤 진도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에서는 아이들의 시신을 찾아 올라가는 유가족에게 남은 이들이 축하한다고 인사하고, 아이의 시신을 찾은 부모들은 미안하다고 하는 그런 장면들,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은 "유가족이 되게 해주세요"하고 울부짖었고, 그 모습들은 교실들에서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 교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그들이 금방이라도 나타나 책상에 앉아 공부도 하고, 장난도 칠 것만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다고 탁자를 두드릴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거기 책상과 의자의 주인공들은 없었습니다.

수많은 세월호 인권피해자들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다가 경찰 차벽에 막힌 채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고 있다.
 세계노동절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다가 경찰 차벽에 막힌 채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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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인권피해자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과 그 주변의 친인척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생존한 학생과 선생님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세월호에서 한 명이라도 더 건지려고 물질을 해야 했던 잠수사들이 있고, 그중에는 암 투병으로 돌아가신 분도 있고, 심지어는 해경에 의해 과실치사죄로 법정에 서야 하는 기막힌 일을 당한 이들도 있습니다.

생존한 승객 중에는 살려내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어민들은 그 참혹한 현장을 보고 또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그 주변과 주변의 사람들. 아픔에 공감하고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응에 분노했던 많은 시민들도 인권피해자입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서 인간적인 공감과 유대를 확인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면서 끊임없이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고 덮으려는 정치인들과 관련 책임자들과 언론들과 그들의 거짓 선동에 놀아난 일부의 시민들을 빼고는 우리 모두는 하나였고, 우리 모두는 나름의 이유로 인권피해자였습니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부의 시행령이 발표되고, 엉터리 배보상 방침을 발표하여 세월호 참사를 덮으려 했던 정부와 대통령에 맞서서 싸울 때 경찰들은 차벽으로 추모의 길을 막았고, 청와대 가는 길을 물대포와 캡사이신으로 막아섰습니다.

명박산성에 이은 근혜차벽이란 인권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벽 앞에서 우리는 같이 울고 분노했습니다. 아니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지난 4월 16일 이후 우리는 끝까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끝까지 밝히겠다고 약속했고, 끝까지 행동하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래서 잡은 손 놓지 않고 지금까지 오는 동안 공권력과 언론, 정부의 인권침해는 더해만 갔습니다.

삼권분립이란 헌법 정신마저 훼손하면서까지, 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하는 정부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까지 호령하는 중세봉건국가의 여왕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억지 눈물을 짓던 그때의 대통령이 아니라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못하도록 틀어막겠다는 오기에 절은 대통령을 보았고, 그의 신하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인권'을 말하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얼마나 가슴 뛰게 하는 말로 가득 차 있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존엄함을 추구하는 인권이 현실세계에서는 얼마나 쉽게 무시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참한 상황 속에서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애도 받아야 하고, 위로 받아야 하고, 국가와 사회의 지원,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들, 그럴 권리를 가진 주체들이 현실에서는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인권 침해의 다양한 양상들

세월호 유가족과 4·16연대 회원들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정부 시행령 개정을 촉구하는 398,727 명의 국민서명을 청와대에 전달하려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계속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거부하고 탄압으로 대신하려 든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는 여지없이 반복될 것이다"고 말했다.
▲ 국민서명 전달 가로막힌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과 4·16연대 회원들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정부 시행령 개정을 촉구하는 398,727 명의 국민서명을 청와대에 전달하려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계속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거부하고 탄압으로 대신하려 든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는 여지없이 반복될 것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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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모든 원인과 배경, 전개과정은 마치 히틀러가 인권의 가치를 무시하여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처럼 우리가 사는 국가와 사회가 인권을 얼마나 철저하게 무시하여 왔던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안에 탄 승객들은 생명권과 안전권을 무시당했고, 국가로부터 재난상황에서 구조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침몰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해상사고로 그쳤을 일을 대형 참사로 발전시킨 이면에는 이윤추구정책이 낳은 무분별한 아전의 외주화 정책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들로 인해 심각한 고통에 처한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당연한 진실을 알려야 함에도 모든 것에서 반대로 나갔습니다. 피해자들의 진실을 알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당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 나서자 공권력을 동원해서 물리력을 행사하며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했고, 이제는 피해자 가족들의 사단법인도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우리는 인권의 눈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은 어떠했습니까.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과 연대할 권리는 종종 공권력에 가로 막혔습니다. 국민을 죽인 정부에 항의한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고 구속되고 벌금형을 받아야 했습니다. 각종 의혹들에 대해서 알 권리는 철저하게 침해당했습니다. 그중에는 대통령의 7시간과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 등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알 권리는 가볍게 무시되었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이 필요하다면서 전국에서 6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하여 청원한 것도 국회에 의해서 무시되었습니다. 물론 국회의 뒤에는 청와대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심화인 반인권 정책의 실현과정이 결국 세월호 참사의 배경을 이루고 원인으로 작용했으므로 그에 대해서 시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도 정치권도 기업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인권의 철저한 무시와 인권에 대한 광범위한 침해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권'할 때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이제는 4월 16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너른 공감대가 형성된 적이 있었던가 할 정도였고, 전국에서 다종다양한 방법으로 실천하는 시민들의 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가만히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행동하기 시작한 우리는 이미 인권을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인권을 어렵다고 느끼고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권이 모든 걸 보장해 줄 수 없지만, 인권으로 우리를 지키는 무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단순한 사고가 참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위험사회를 넘어 안전사회로 가기 위해서 그리하여 모두가 존엄한 연대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인권을 말해야 하고, 토론해야 하고, 의지를 모아가야 할 때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세상은 거기로부터 모습을 나타낼 것입니다.

어린 생명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울었다면, 그래서 약속하고 다짐을 했다면, 그래서 옆 사람의 손을 잡았고,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곁을 지켰다면 당신을 벌써 인권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그 꿈을 담아서 인권선언을 제정하려고 합니다.

어느 전문가가 아니라 가장 절실하게 인권침해를 느꼈고, 부당하게 생각했고, 심지어 행동하기까지 한 우리가 못 할 일은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자신의 처지를 인권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서 풀뿌리 네트워크로부터 단체와 기업과 조합과 학교에서 지역에서 우리는 인권을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 드립니다. 416연대가 추진하는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제정운동'에 함께 해주십시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꿈을 모아주십시오. "생명, 안전, 진실, 치유, 구조, 회복의 권리들"을 담아내는 이 운동에 유가족과 함께 참여해주십시오. 세상을 바꾸는 실천, 인권선언 제정운동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든 인권침해에 침묵하지 말고, 인권을 경시하는 모든 정책과 법에 저항하며, 인권을 경멸하는 세력에 맞서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고, 안전사회를 주창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배우고 인권을 고민하고, 인권을 실천하고자 할 때 세상은 바뀌고, 세월호 참사가 반복되는 그 고리는 끊어질 것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 교실에서 말없이 눈물짓는 유가족들과 그 어린 친구들이 외롭지 않게, 그들이 힘을 잃지 않게, 세월호에서 죽어간 이들의 생명이 헛되지 않게 우리는 인권선언 제정운동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4.16 인권선언 추진단 전체회의가 7월 11일 수운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4.16 인권선언 추진단 전체회의가 7월 11일 수운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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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인권중심 사람 소장이자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입니다.



태그:#인권선언, #4.16,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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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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