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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 222-14에 소재한 김좌근 고택 앞 연못. 뒤편 우측에 김좌근 고택이 보인다
▲ 연못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 222-14에 소재한 김좌근 고택 앞 연못. 뒤편 우측에 김좌근 고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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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인근에서만 돌다가 모처럼 길을 나섰다. 가까운 곳이라도 바람을 쐬러가자는 생각에서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주변에 문화재는 늘 있기 마련이다.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 222-14에 소재한 김좌근 고택. 경기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고택은 99칸 집으로 유명했던 옛집이다.

99칸, 예전 우리나라의 권력의 상징이었다. 100칸을 지으면 '궁궐'이라고 하여 사대부들이 가장 크게 지을 수 있는 집이 바로 99칸이다. 지금은 안채와 별채만 남아있지만 원래 사랑채와 행랑채, 담장 등 주변이 모두 김좌근 고택이었다는 것이다. 연꽃 봉우리가 맺혀 올라오고 있는 연못까지 이 집이었다고 하니 그 위용을 알만하다.

"저 연못도 저 옛날 집에 따른 것이었지. 저 집 앞에 논이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 등이 있던 곳이었어. 이 연못도 그 집 연못이었고, 그런데 그 집에서 건물도 팔아버려 딴 대로 가져갔다고 하지. 연못은 마을에 팔았어."

김좌근 고택 경기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 되어 있는 김좌근 고택
▲ 김좌근 고택 경기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 되어 있는 김좌근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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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10칸으로 지어진 김좌근 고택의 안채
▲ 안채 10칸으로 지어진 김좌근 고택의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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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 김좌근 고택의 안채에 ㄱ자로 꺾여 붙인 광
▲ 광 김좌근 고택의 안채에 ㄱ자로 꺾여 붙인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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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택의 그림을 그려보다

연못 앞에서 한 낮의 더위를 피하고 계시던 마을 어르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연못과 현재 남아있는 고택 사이에 논이, 꽤 거리가 먼데 그 안에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 집이 얼마나 대단한 집이었나를 가늠할 수 있다. 예전 우리의 고택을 보면 대개 '배산임수(背山臨水 : 뒤로는 산을 두고 앞으로는 내를 둔다)' 형태로 짓는다.

이 김좌근 고택은 앞으로 내가 흐르지 않아 연못을 파서 내를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천천히 걸으면서 집의 형태를 살핀다. ㄱ 자 형태로 지어진 안채와 그 옆에 정자방을 들인 별채가 나란히 서 있다. 안채 앞에는 주춧돌이 일렬로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곳이 사랑채가 있던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김좌근은 영의정을 세 번이나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안동김씨 세도의 중심인물로 순원왕후의 남동생이자 익종의 외삼촌이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로, 이 고택은 김좌근의 아들이자 고종 때 어영대장을 지낸 김병기가 부친의 묘지관리를 위해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다.

별채 안채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별채
▲ 별채 안채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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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 별채의 끝에 마련한 정자방도 불을 땔 수 있도록 했다
▲ 아궁이 별채의 끝에 마련한 정자방도 불을 땔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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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 뒤편 별채 뒤편도 ㄱ자로 지었다. 이곳에서 안채로 들어가던 회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별채 뒤편 별채 뒤편도 ㄱ자로 지었다. 이곳에서 안채로 들어가던 회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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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집만 보아도 당시의 세력을 알만 해

묘지를 관리하기 위해 지은 집이 99칸이었다고 한다. 조선조 후기 당시 안동김씨의 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집만 보아도 알만하다. 이 집은 어르신들이 기억을 하고 있는 이야기만 들어도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와 행랑채가 두 겹으로 안채를 싸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조 말 사대부가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는 김좌근 고택.

후손들이 관리가 어렵다고 신흥재벌에게 집을 팔았는데, 사랑채와 행랑채를 뜯어 이건을 하던 중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나마 안채와 별채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원래 구조는 대문과 중문을 지나 안채로 통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ㄷ자로 중문과 연결된 사랑채가 있었다는 것이다.

집을 한 바퀴 돌아본다. 지금은 별채와 안채 사이에 작은 일각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별채와 안채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땅을 밟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물은 새로 보수를 한 듯 기와며 벽들이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지만, 예전 모습을 그려보기에는 그리 어렵지가 않다.

안채 안채의 건물에는 툇마루가 길게 연결을 하였다
▲ 안채 안채의 건물에는 툇마루가 길게 연결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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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안채 부엌의 위는 다락방으로 꾸민 특이한 형태의 집이다
▲ 부엌 안채 부엌의 위는 다락방으로 꾸민 특이한 형태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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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물 집 주변에는 많은 석물들이 남아있다
▲ 석물 집 주변에는 많은 석물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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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다

별채 뒤편으로 연도를 통해 쌓은 굴뚝이며, 안채로 들어가면 튓마루를 건물 전체에 연결해 놓은 것만 보아도 이 집이 과거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이나 영의정을 지낸 김좌근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아들 김병기가 지었다는 99칸 집. 당시 안동 김씨들의 세도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알 수 있는 집이다.

집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난 뒤 안채를 돌아 나오니 곁에 모아놓은 장초석들이 보인다. 아마도 이 집의 일부를 이건해 갈 때 남겨놓은 듯하다. 그런 장초석이며 집 여기저기 놓인 석물들을 보아 사랑채와 행랑채가 그대로 남았다면 얼마나 대단한 집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세월은 무상하다고 했던가?

김좌근 고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도는 언젠가는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인덕만년훈(人德萬年薰)'이라 했던가? 즉 사람이 덕을 쌓고 베풀면 그 향기가 천년만년 후대에 퍼지므로 살아생전 덕을 쌓으라는 가르침이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남아있는 이 집도 그나마 주변 사람들에게 덕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와 네이버블로그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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