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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양대 포털이 추진 중인 정부·기업 오피셜 댓글 시스템 분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국정원이 실제로 작성한 댓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위 그림은 양대 포털이 추진 중인 정부·기업 오피셜 댓글 시스템 분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국정원이 실제로 작성한 댓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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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포털은 뉴스를 생산하지 않지만, 전송받은 뉴스를 배치 및 검색노출 시킴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가져가고 구조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2일 '다음'이 '오피셜 댓글' 서비스 도입 추진을 발표해, 상당한 논란이 불붙고 있다.

정부·기업 등이 인터넷 뉴스 바로 아래나 옆에 댓글을 달 수 있게 해, 잘못된 정보의 빠른 확산을 예방하고 반론권을 보장한다는 게 다음 측 설명이다. 이에 <KBS>는 "요즘 아니면 말고 식의 엉터리 기사가 퍼지는 경우가 많"다며, "헛소문이 포털에 기사로 올라와 곤욕"을 치렀다는 한 대기업 홍보팀원의 주장을 내보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부정확했는지 밝히진 않으면서도, 오피셜 댓글이 이런 사례에 "반론권을 보장하는 서비스"라고 전했다.

문제제기도 잇따르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오피셜 댓글은 정말 멍청한 아이디어"라는 직설적인 제목의 기고를 실었다. 정부·기업은 이미 입장을 충실히 전하는 채널들이 있는데, 과도한 반론권을 준다는 취지였다. <JTBC>도 23일 "(오피셜 댓글이) 사용자들의 시선을 끌어 일반 댓글보다 더 큰 동조 효과를 내고, 또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를 전했다.

이에 다음 측은 언론도 재반박 댓글을 달 수 있게 하겠다며 의지를 보였고, '네이버'는 언론자유 침해 우려 등을 고려해 검토중이라 밝혀 조금은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도 반론권과 언론자유 문제로 갑론을박이 오갈 것으로 전망되지만, 오피셜 댓글이 '시민'의 입장에서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정밀 진단이 필요해 보인다. '오피셜 댓글' 정말 괜찮은가?

[진단1] 정부·기업 vs. 언론... 시민은 '들러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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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누리꾼들은 자유로이 기사를 읽고 댓글을 쓴다. 추천을 높게 받으면 '베스트 댓글'에 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단지 기사와 관계 된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와 '기업'은 반박하고 싶은 기사에 댓글을 달고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하게 된다. 공식홈페이지, 출입기자, 대변인실, 친화적 매체 등 수많은 채널 외에 무기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정부의 반박조차 틀릴 수 있고 실시간으로 누리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은 둘째치더라도(관련 기사: [팩트체크] 포털, 정부 '공식 댓글' 추진..문제없나?), 기자가 재반박 댓글을 달면 마치 서로 '키보드 배틀'하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다. 누리꾼들 입장에서는 서로의 소통을 확인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지만,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가령 '첫 댓글의 중요성' 같은 말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댓글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댓글창 분위기와 논점이 흘러갈 수 있다. 이는 이론적으로도 뒷받침 된다. 미디어 이론가 맥루한에 의하면, 어떤 미디어가 '권위' 있는 전문적 내용을 많이 전달하고 논의 방향을 선도(?)할수록, 시민이 참여해 보충할 정보량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정보 밀도가 높은 미디어를 '핫미디어(hot media)'라고 한다.

반면 미디어에 '비어있는' 공간이 적당히 있을수록, 이를 보충하려는 '아마추어적 노력'이 발생하는데, 거기서 자본·관료주의나 저널리즘에서 생각할 수 없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민적 관점'들이 이끌려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런 정보 밀도가 낮은 미디어를 '쿨미디어(cool media)'라고 한다. 결국 '오피셜 댓글'은 피상적으론 소통 증대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시민참여를 한 방향으로 '여론 몰이'하게 될 가능성이 짙은 셈이다.

또한 언론에 재반박 권한을 준들, 이는 '기울어진 축구장'이다. 한 주간 취재부터 다수의 기사 작성까지 살인적 업무에 시달리는 기자가, 훌륭한 자본행정력과 복지수준을 갖춘 기업홍보팀과 정부의 '댓글 요원'들의 원포인트 반박에 응대하기엔, 들춰낼 문제들이 한국엔 너무 산적해 있고 또 매일 발생하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들의 '디지털뉴스팀' 식 행태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책임을 지고 실명 '바이라인'을 단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오피셜 댓글에 바이라인을 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나 '보건복지부'라는 기관명 뒤에 숨은 실무자가 댓글을 달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경우가 있다면, 누리꾼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은 누가질까? 댓글창 가장 높은 자리는 '시민'의 자리로 남겨두어야 한다.

[진단2] 상단고정 댓글로 '권위' 형성

고려대학교 졸업생이 운영하는 고파스(koreapas) 커뮤니티와 중앙대학교 홍보팀에서 운영하는 중앙인(cauin) 커뮤니티. 전자는 대학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검토를 통해 상단고정 게시물을 등록할 수 있지만. 후자는 학내 논란이 있는 이슈마다 번번이 대학당국의 입장이 '상단고정'게시물로 홍보돼 여론이 조성되기 일쑤였다.
 고려대학교 졸업생이 운영하는 고파스(koreapas) 커뮤니티와 중앙대학교 홍보팀에서 운영하는 중앙인(cauin) 커뮤니티. 전자는 대학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검토를 통해 상단고정 게시물을 등록할 수 있지만. 후자는 학내 논란이 있는 이슈마다 번번이 대학당국의 입장이 '상단고정'게시물로 홍보돼 여론이 조성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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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진단은 훨씬 심각하다. 인지과학적 상식에서, 인간은 외부자극과 이에 대한 자기구성을 통해 뇌신경 체계를 확립한다. 쉽게 말해, 자주 접하는 미디어를 '밑천'으로 사고방식을 학습해 '머리가 굳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사랑, 철학, 예술, 기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발휘될 수 있는데, '자본주의'와 '관료주의' 마인드는 사실 그 일부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마인드들을 사회 전반의 풍조로 확산시켰고, 우리 정부와 기업도 이런 성향이 강한 편이다. 댓글을 달 때 이런 사고방식에서 쓸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는 '돈'으로 말하고 관료주의는 '효율'로 말하지만, 인간의 삶이 이 두 가지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므로 이렇게 사고가 굳어지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오피셜 댓글'을 실시하면, 시민은 좋든 싫든 안방 모니터에서까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자연스럽게' 빼앗긴다. 즉 옛날 독재권력은 보도지침이라는 노골적인 비합리성을 통해로 여론을 장악했지만, 오늘날 신자유주의 권력은 합리성을 가장해 여론을 장악할 수 있는 셈이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의 저자 위르겐 하버마스라면, 이를 '생활세계의 식민화'라고 진단할 것이다.

물론 이미 비판적 사고체계를 충분히 갖춘 누리꾼들이라면 정보를 능동적으로 가려낼 것이며, 포털의 상황이 심각해져도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대사처럼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러나 꾸준히 새로 유입되는 누리꾼들의 경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 사례도 대학 커뮤니티의 '상단고정' 게시물의 위험성을 통해서도 보고되고 있다.(관련 기사: "'두느님'은 무조건 옳다"...박용성 붙잡는 중대생들)

갑작스런 추진 배경 놓고, '뒷말'도 무성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5월 16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국세청의 다음카카오 세무조사 시점에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5월 16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국세청의 다음카카오 세무조사 시점에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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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다음과 네이버는 '오피셜 댓글' 서비스 같은 중대한 미디어 환경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다각도에서 이를 재고해야 한다. 그러나 포털이 이를 갑작스럽게 추진하고 있어서, 언론계의 뒷말이 무성한 것도 사실이다.

가령, <JTBC> '5시 정치부회의'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다음 창업자 이재웅씨의 지난달 트윗을 소개하며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관련 기사: 다음 창업자 "다음카카오 세무조사, 메르스 탓?")

물론, 음모론은 좋지 않다. 어디까지나 오비이락일 수 있다. 그러나 이재웅씨 스스로의 말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절묘하게 반복되면 속 상할 수 있는 게 인지상정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기 전, 주변인들에게 미래의 낌새를 비칠 경우를 심리학 용어로 '징후(signs)'라고 한단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그런 징후가 감지되진 않는지 시민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포털 사이트, #포탈 사이트, #다음, #네이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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