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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프놈펜에서 북서쪽으로 180km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
▲ 캄보디아 220km 정글레이스 출발장면 출발은 프놈펜에서 북서쪽으로 180km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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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술씨의 손을 다시 잡았다. 캄보디아 북서부 정글 속 쁘레아 칸(Preah Khan)사원과 <인디아나 존스> 영화 촬영지인 벵 메알레아(Beng Mealea) 사원을 거쳐 앙코르 돔(Angkor Thom)과 앙코르 와트(Angkor Wat)까지 5박 6일 동안 220km를 달리기 위해서였다.

아타카마사막 레이스 이후 7년만의 재회다. 그동안 몇몇 경기에 신청을 했지만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를 당했다. 어렵게 출전한 만큼 용술씨의 의욕은 남달랐다.

의욕적인 출발, 처음은 나쁘지 않았는데...

캄보디아는 국민 대부분이 소승불교의 신자이다.
▲ 캄보디아 스님들 캄보디아는 국민 대부분이 소승불교의 신자이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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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1월 29일 밤 11시,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다. 기성세대에게는 폴 포트(Pol Pot) 정권의 대학살 킬링 필드(Killing Fields)의 잔상이 남아있는 나라. 하지만 요즘은 세계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로 12세기 크메르 제국이 건설한 앙코르 와트 사원으로 더 유명한 캄보디아. 전 국토의 3/4이 정글로 뒤덮인 나라답게 30도를 웃도는 후덥지근한 날씨가 우리를 반겼다.

다음날, 프놈펜에 합류한 16개국 31명의 선수들은 북서쪽으로 180km 떨어진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차안까지 자욱한 흙먼지 속에 용술씨가 곤한 잠에 빠졌다. 그의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50대에 들어선 우리가 의기투합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식지 않는 열정과 긴 세월 변치 않는 서로에 대한 이끌림이었다.

곳곳에 패인 웅덩이로 온몸은 흙탕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 레이스 첫째 날의 몰골 곳곳에 패인 웅덩이로 온몸은 흙탕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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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농사를 위해 200만 마리의 소가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
▲ 강을 건너는 물소 떼 캄보디아는 농사를 위해 200만 마리의 소가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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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레이스(The Ancient Khmer Path)의 서막은 한 작은 농촌 마을의 사원 입구에서 시작됐다. 비포장도로와 아스팔트를 따라 달리는 30.8km 첫 레이스는 순조로웠다. 약간의 근육 경련과 발가락 물집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경기 마지막 날 앙코르와트에서 멋진 세리머니를 상상하면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웠다.

비단목화나무들이 괴물 문어처럼 유적지를 통째로 휘감고 있다.
▲ 사원을 옥죈 나무뿌리들 비단목화나무들이 괴물 문어처럼 유적지를 통째로 휘감고 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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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패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레이스 둘째 날, 무성한 대나무 숲과 밀림을 헤집고 36.4km를 달려 쁘레아칸 사원을 향했다. 주로에 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어질하고 구역질이 났다. 밀림 속은 온통 나무뿌리들이 땅 위로 드러나 뒤엉켜있었다. 거대한 뿌리에 옥죄인 수많은 돌무더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꿈쩍 않고 널브러져 있었다. 용술씨의 몸이 좌우로 쏠리며 휘청거렸다. 곳곳에 패인 웅덩이를 피해가느라 흙탕물로 뒤범벅이 된 채 캠프로 다가섰다.

레이스 둘째 날 저녁, 용술이의 발바닥은 이 모양이 되었다.
▲ 물집으로 뒤덮인 용술이의 발 레이스 둘째 날 저녁, 용술이의 발바닥은 이 모양이 되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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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검'의 뜻을 지닌 쁘레아 칸 사원은 패전의 상흔을 보듯 대부분 무너져있었다. 비록 밀림에 묻혀 폐허가 되었지만 장엄한 위엄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그런데 용술씨 발가락의 물집이 12km의 밀림을 헤집고 오면서 발바닥 전체로 퍼져 만신창이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상태로 여기까지 참고 왔는지 가슴이 미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레이스 셋째 날, 새벽 6시 캠프를 벗어난 선수들이 어둠을 가르며 다시 밀림 속으로 뛰어들었다. 30km의 밀림과 32.2km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벵메알레아 사원까지 가야했다. 밀림 속 비단목화나무들은 거대한 괴물 문어처럼 무너진 유적지를 통째로 휘감고 있었다. 정체를 숨기고 풀숲에 몸을 은신한 녹색 전갈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 그 이상이었다.

이 녀석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 그 이상이었다.
▲ 풀숲에 몸을 은신한 녹색 전갈 이 녀석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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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술씨의 부상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전기충격기에 감전되듯 수시로 몸을 떨며 비틀거렸다. 12시간 넘게 62.2km를 달려 도착한 벵 메알레아 사원 입구에는 코브라 형상의 나가(Naga : 뱀의 신, 蛇神)가 경계의 눈초리로 우리를 주시했다. 주변의 연꽃 군락과 밀림에 묻힌 사원은 마법에 걸린 듯 신비로움을 더했다.

멕시코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조각상이 있다고 한다. 그 조각상을 만들던 조각가는 작업 중 사고로 오른손을 잃게 되었다. 그러자 누구도 이 작품이 완성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각가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고 왼손으로 다시 조각을 시작해 더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그의 불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각상의 이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지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 우리는 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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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넷째 날, 크메르 제국의 숨결을 느낄 새도 없이 망가진 몸을 추슬러 가파른 능선의 밀림을 헤치며 크메르 왕조의 성지인 꿀렌(Kulen)산을 넘어 프놈 꿀렌(Phnom Kulen) 폭포를 향해 29.7km를 달렸다. 나무가시에 종아리와 팔뚝이 긁혀 나갔다. 불개미 떼는 시도 때도 없이 머리와 목덜미를 파고들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대자연을 벗 삼아 연일 종횡무진 했지만 하찮은 미물에게는 너무 무기력했다. 용술씨의 주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주저앉는 횟수가 늘어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뿐이었다.

캄보디아는 불교국가답게 어딜 가나 불교문화가 국민생활 깊숙이 차지했다.
▲ 불교 사원 캄보디아는 불교국가답게 어딜 가나 불교문화가 국민생활 깊숙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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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술이와 나는 피니쉬 라인이 있는 앙코르와트로 사력을 다해 달렸다.
▲ 바욘 사원을 지나 용술이와 나는 피니쉬 라인이 있는 앙코르와트로 사력을 다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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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지막 투혼을 태웠다. 44.2km의 길도 없는 급경사의 밀림 속을 네 발로 기다시피 타 애크(Ta-Aek) 사원이 있는 산 정상을 넘었다. 그리고 시엠 립(Siem Reap)에서 당당히 레이스의 마지막 날을 맞았다. 선수들은 그간의 노고에 보상을 받으려는 듯 앙코르 돔을 향해 16.7km를 달렸다. 동문으로 들어선 우리는 코끼리 테라스와 바욘(Bayon) 사원을 거쳐 피니쉬 라인이 있는 앙코르와트로 사력을 다해 내달렸다.

우리는 6일 동안 200km를 넘게 달려 다시 시엠립에 입성했다.
▲ 당당히 맞은 앙코르와트 우리는 6일 동안 200km를 넘게 달려 다시 시엠립에 입성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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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술씨에게 끝을 알 수 없는 수십 km의 밀림과 산악은 지옥의 길이었다. 미련하다고 비난해도 상관없다. 5년 동안 품고 다닌 항생제 덕에 세균 감염은 막았지만 생살을 가르는 그의 고통이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혼자라면 외로웠을 이 여정은 둘이어서 가능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한계를 가늠해 보기도 전에 쉽게 포기한다. 능력이 부족해서 포기하고, 자신이 없다고 포기한다. 앞이 안 보이는 용술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 눈물 나는 고통을 감내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용술씨를 통해 내 신체가 건강하다는 것을 넘어 긍정의 힘과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배웠다.

피니시 라인에서 경기 운영자 스테판(독일)과 뜨거운 포옹
▲ 아! 앙코르와트 피니시 라인에서 경기 운영자 스테판(독일)과 뜨거운 포옹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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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캄보디아 정글레이스 http://www.global-limits.com



태그:#직장인모험가 , #김경수 , #캄보디아 , #오지레이스 ,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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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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