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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수필집 <미뢰>
 김은주 수필집 <미뢰>
ⓒ 학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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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의 수필집 <미뢰>가 나왔다. 저자의 세 번째 수필집이다. <부산일보>와 <전북일보> 신춘문예, 그리고 평사리 수필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경력의 작가는 그동안 <분첩> <다만, 오직, 그냥> 두 권의 수필집을 상재한 바 있다.

저자는 아주 예쁘기는 하지만 매우 평범한 '은주'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렇게 흔한 이름을 가진 저자가 자신의 수필집에는 '미뢰'라는 아주 특이한 제목을 붙이고 있다. 미뢰(味蕾)는 혀 중에서 맛을 느끼는 꽃봉오리 모양의 기관을 가리킨다고 한다. 저자 자신이 각주를 붙여 뜻풀이까지 달아놓은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어휘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책 제목을 정할 때 저자가 특별히 정성을 쏟는 듯이 보이는 것은 <미뢰>에서만 받는 느낌이 아니다. '분'도 '첩'도 요즘 세상에 그리 일반적인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첫 번째 수필집의 제목 <분첩>은 상대적으로 평범하다. 압권은 두 번째 수필집 <다만, 오직, 그냥>이다. <다만, 오직, 그냥>은 책명으로가 아니라 작품명으로도 지구상에 유일한 독창적 이름일 것이다. 그만큼 김은주 수필가는 작품집에 제목을 붙이느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김은주 수필가가 책의 이름을 정할 때만 그렇게 고심을 하고 정작 작품의 문장을 쓸 때에는 그렇지 않다면 그저 외화내빈이 될 뿐이다. 제목을 보고 솔깃하여 책을 펼친 독자는 크게 실망할 것이다. 김은주 수필가는 한 줄의 문장,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는 일에도 최선의 표현을 성취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는 것을 결과로 보여준다. 김은주 문장의 특별한 맛을 예문을 들어 감상해 보자.

(시장 난전에서 회를 썰어 파는 할머니가 그 앞에 내가 쪼그리고 앉자) 큰 고무통에 도마를 걸치고 손은 부지런히 웅어를 썰며 앞에 앉은 나를 쳐다본다. 눈은 이미 도마를 떠났는데도 칼질은 여전히 맞춤하게 움직인다. 착착 칼 너머 국수가닥 같은 웅어가 쌓인다. 호객행위는 없다. 그저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써는 일에 집중할 뿐이다. 한참을 지나도 가지 않고 있는 나에게 할머니(는) 낡은 나무상자를 발로 밀어준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나무상자를 밀어주는 발은 맨발이다. 양말 없이도 난전에서 견딜 만하니 봄이 그예 다 갔나 보다. 차양 사이로 들어온 볕에 나무상자가 사뭇 따뜻하다. 쉬어 가도 좋다는 할머니 마음이다.

책의 권두 작품 <미뢰> 중에서도 맨앞 문단의 일부을 인용했다. 글감은 웅어인데 실제로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웅어에서 사람으로 넘어가는 연결이 너무나 매끄러워 독자들은 글이 웅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따져볼 겨를도 없다. 도마에서 나무상자, 다시 맨발을 거치는 동안 봄이 후딱 지나가는 것과 같다. 나무상자가 '낡은' 것이라는 데까지 독자가 주목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글감들이 '할머니(의) 마음'과 혼연일치 되듯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가 입은 적삼과 아래 속곳을 보니 봄과 여름이 함께 있다. 봄이 오나 싶더니 그새 갔다. 봄과 여름 사이 딱 요맘때가 아니면 결코 먹을 수 없는 것이 웅어다. 얼추 봄꽃이 지고 막 숲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보리누름 즈음이 낙동강 웅어가 한창인 때다.

<미뢰> 둘째 문단의 일부를 인용했다. 역시 웅어철이 봄과 여름 사이라는 시간에 대한 언급과 할머니의 옷차림이 보여주는 뒤섞인 계절 감각이 혼연일체를 이룬다. 웅어 이야기인가, 사람 이야기인가. 첫 번째 문단이 보여준 표현 방식이 그대로 절묘하게 되풀이되고 있다. 

국밥집 뒷골목에 좌판 하나 두고 앉아 할머니(는) 봄과 여름 사이를 곡진하게 썰고 있다. 움푹하게 볼우물이 패인 도마를 보니 세월이 그곳에 소복하다. 우럭도 할머니가 썰면 그 맛이 다르다. 고기의 두께와 써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나기 때문이다. 도톰하게 썰어야 제 맛인 회도 있지만 뼈째 먹는 웅어는 가로로 놓인 뼈를 살짝 비틀어 써는 재주가 있어야만 씹는 내내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뼛속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미뢰> 셋째 문단의 일부다. 뼛속 사정을 훤히 알아야 웅어를 제대로 썰 수 있다는 표현도 함부로 발휘할 수 있는 문장력이 아니지만, '할머니(는) 봄과 여름 사이를 곡진하게 썰고 있다'는 데 이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서 웅어는 봄과 여름 사이가 되었다. 웅어 한 마리가 우주가 되었고, 할머니는 우주의 섭리를 곡진하게 항해하고 있는 중이다. 뻣속 사정을 아는 것이 곧 우주의 섭리를 아는 경지다.

책 권두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세 문단을 읽었다. 역시 김은주 수필가는 제목만이 아니라 낱낱의 문장을 쓰는 데에도 특별히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결과로 보여준다. 물론 어휘 선택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어휘 선택은 본인이 자연요리연구가라는 사실에 기반한다.

(농장에서 재배한 유자는) 썰어보면 육즙도 풍부하고 껍질도 한결 보드랍다. 하지만 바닷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견디며 자란 강진의 유자와 비길 바가 아니다. 제 몸에 가시가 있는 유자나무는 비바람 속에서 흔들리다 자신의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 상처들이 아물며 몸 안에 묘한 향기를 품는가 보다.

<유자>에 나오는 표현이다. 일반의 수필가가 선택할 수 있는 어휘가 아니다. 유자의 육즙 이야기 중에 문득 유자나무의 가시가 등장하는 것은 그들이 작가의 삶 속에 일부로 자리를 잡고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통의 도시 거주 수필가라면 결코 바닷바람을 맞아 제 몸에 상처를 낸 유자나무가 품은 묘한 향기를 언급할 수가 없다. 자연요리연구가인 탓에 늘 관심이 그곳에 가 있고, 그래서 수필집의 내용과 어휘 또한 그런 쪽으로 닿는 것이다. 

작가는 "어릴 때 엄마가 산과 들에서 따온 재료로 만들어 주시던 음식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잊고 지냈는데 세월이 가고 엄마 나이쯤 되니 저절로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연요리전문가가 되겠노라 작심한 바 없지만 지금 그렇게 된 것처럼, 글 속에 자연요리전문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의도한 바 없지만 자연스레 그런 작품을 쓰게 되었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실제로도 작가는 <헐티로 568>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매일 산을 오르고 들길을 걸으며 생산해내는 나의 글과 음식은 아마도 따로 애쓰지 않아도 초록을 띠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김은주 수필집 <<미뢰>>(학이사, 신국판 224쪽, 1만2천 원)



미뢰

김은주 지음, 학이사(이상사)(2015)


태그:#미뢰,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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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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