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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당신을 위한 책갈피'는 매주 독자를 선정하여 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거나 이 책이 꼭 필요하다 싶은 당신에게 권합니다. - 기자 말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신도림에서 사당까지는 몸이 끼이다 못해 쇄골이 다 아플 지경이야. 사람들에 눌려서. 그렇게 2호선을 탈 때마다 생각하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고. 나라를 팔아먹었나? 보험사기라도 저질렀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도 생각해. 너희들은 무슨 죄를 지었니? (본문 16쪽 중에서)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을 살아가는 20대 여성 '계나'가 주인공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 실업이 늘어나는 현실에서도 운 좋게 금융회사에 취직한다. 오래 연애하며 지낸 남자친구도 있다. 이쯤 되면 나쁘지 않은 인생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날 거라고.

그녀가 고백한 한국을 떠난 이유,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표지 사진.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표지 사진.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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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더러 아이 많이 낳으라는 사람들은 출근 시간에 지하철 2호선 한번 타 봐야 해. 신도림에서 사당까지 몇 번 다녀보면 그놈의 저출산 이야기가 아주 쏙 들어갈텐데"라는 계나.

자격증도 없이 금융회사에 입사한 그녀는 다행히 콜센터 근무를 면하지만 "큰 수레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어떤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서 톱니바퀴가 된" 신세로 살아간다. 자신이 속한 회사에서 엉터리 같은 카드 결제 시스템을 보면서 경악하기도 한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리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본문 10쪽 중에서)

주야간 교대근무에 지쳐가던 어느날, 계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다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아프리카 톰슨 가젤'을 떠올린다.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라면서, 무리에 섞이지 못하다가 표적이 되는 불쌍한 존재에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라면서 계나는 자조한다. 치열하게 목숨 걸고 무언가를 하는 인간도 아니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신세라고 한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본문 44쪽 중에서)

계나는 자신이 한국에서 '2등 시민'과 같았다고 말한다. 그녀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2천만 원을 집의 재개발 이주비용에 보태라는 아버지, 강남 출신인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그녀의 집안 형편을 알자 대놓고 무시하는 상황까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계나는 한국이 싫어졌다고 고백한다.

'정글' 같았던 한국 벗어났지만 '축사' 같은 생활

결국 그녀는 호주로 훌쩍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학생 비자로 어학연수를 떠나서, 가능하면 호주에서 오래 지내면서 이민까지 계획한다. 그러나 '정글'과 같은 한국이 싫다며 떠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기대와 다르게 '축사' 같은 생활이었다. 처음 호주에 도착한 그녀는 한 건물에서 열댓 명이 잠을 자는 '셰어하우스'에서 살아간다. 계나는 돈을 아끼려고 거실에서 커튼을 칸막이처럼 쳐놓고 잠을 자면서 두려움과 소음에 시달린다. 방세를 아끼려고 '닭장 셰어'를 골랐다가, 안전과 안락한 공간과는 멀어진 것이다.

극 중 계나는 호주의 법을 잘 몰랐다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돈을 벌려고 '셰어하우스' 운영을 맡았다가 입주자가 입금한 위조수표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는 일을 겪는다. 심지어 아파트에 데려온 친구가 갑자기 낙하산을 메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려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나기도 한다.

한국을 떠난다는 것으로 인한 갈등과 고민 끝에 계나는 어렵사리 호주 시민권을 얻는다. 한국 사회가 낳는 경쟁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정한 선택이었다. 1년에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지는 근무조건은 호주가 아닌 한국에서는 흔히 꿈꾸기 힘든 일 아닌가. 이런 차이는 '애국가'의 가사에서도 드러난다고, 시민권 취득 시험을 본 뒤 주인공은 말한다.

애국가 가사 알지? 거기서 뭐라고 해? 하느님이 보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 만세를 누리는 것도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나는 그 나라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야. 호주 국가는 안 그래.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라고 시작해. 그리고 "우리는 남십자성 아래서 마음과 손을 모아 일한다"고, "끝없는 땅을 나눠 가진다"고 해. 가사가 비교가 안 돼. (본문 171쪽 중에서)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소설

소설 <한국이 싫어서> 속 글은 구어체에 가깝다. 줄거리는 작가의 시점이 아닌, 주인공 계나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20대 여성으로 설정된 인물인 계나가 마치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친근하게 반말로 "~하더라"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읽는 동안, 독자는 계나가 겪는 일과 그녀의 수다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이 타향살이를 하면서 호주가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도 묘사된다. 한국의 답답함이 싫다고 해서, 마냥 다른 나라가 아름답고 완벽한 곳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계나가 한국과 호주에서의 삶을 두고,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고심하는 부분에서 이야기의 핵심이 드러난다.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중략)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본문 184~185쪽 중에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행복'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순간의 기쁨을 중시하는 '현금흐름성' 행복을 바라볼지, 아니면 미래를 위해 쌓아가는 '자산성 행복'을 위해 살아갈지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주인공 계나는 전자일까, 아니면 후자일까? 소설을 읽으며 독자가 직접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는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두고"서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 버티는" 한국 사회의 서글픈 현실에 생생하게 담았다. 작가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한국의 청년들이 겪는 일 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서 호주 현지의 상황도 실감나게 표현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사자 앞의 톰슨 가젤'처럼 느껴진다면, 한국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당신도 '스스로의 행복'을 깊이 고민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지음/ 민음사/ 2015. 5. 8./ 1만 3000원)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민음사(2015)


태그:#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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