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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수식하는 많은 단어 중 하나는 '성형 왕국'이다. 지난 2013년 국제미용성형협회 발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1년 기준 '인구 대비 성형 건수' 부문에서 세계 1위에 올랐고, 성형 수술 시장 분야에서도 전 세계 1/4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성형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매년 대폭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홍콩과 중국에서 수술을 위해 입국한 사람만 무려 5만 명을 웃돈다. 앞선 2013년 기준으로 약 2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한 해에 배로 늘어난 셈이다.

또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부 여고생들은 수능 시험이 끝난 겨울방학을 성형을 위한 최적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몇몇 직장인이나 취업준비생들은 긴 연휴가 다가오면 평소 점찍어 둔 부위를 수술하고 회복을 위해 칩거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 중에는 자기 만족을 위한 수술도 있겠지만, 외모마저도 구직·사회생활을 위한 스펙 중 하나로 인식되는 세태도 성형 유행의 요인으로 꼽힌다.

사회적 압력이 낳은 한국의 성형 열풍

지난 5일, 상암 CJ E&M 사옥앞에서 열린 <렛미인> 방송중단 촉구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서울YWCA, 언니네트워크, 여성환경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러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지난 5일, 상암 CJ E&M 사옥앞에서 열린 <렛미인> 방송중단 촉구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서울YWCA, 언니네트워크, 여성환경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러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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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성형 수술을 받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유독 특정 국가에서만 성형 건수가 압도적으로 높다면, 다른 특수한 배경이 있는지 유추해봄 직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타인의 간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또 눈치를 주는 상호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돋보이는 옷차림이나 외모를 가진 사람은 길거리에서도 쉽게 눈길을 끌고, 누군가는 타인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자신의 외모를 뽐낼 SNS도 한층 다양해진 요즘이다.

TV(혹은 라디오)의 상담 프로그램에서는 "OO한 나, 비정상인가요?"라고 묻는 사연이 소개되거나,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점수를 얻는 코너를 방송하기도 한다. 이 같은 TV쇼의 공통점은 저마다 타인의 기준에 무게를 두고 인정받길 원한다는 점이다. '정상'이라는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선을 넘어선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다'는 힐난이 쏟아질 때도 있다.

개그 프로그램에선 뚱뚱하거나 못생긴 사람을 등장시켜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타인의 외모와 체형은 저마다 제각각이기 마련이건만, '표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조롱해도 상관없다는 듯하다.

한국에서 보편화된 사고방식이 방송으로 만들어진 온갖 '쇼'를 통해 윤곽을 드러낸다. '예쁘고 잘생긴 누군가를 좋아하는' 취향의 단계를 넘어, '모두가 반드시 예쁘고 잘생겨야 한다'는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만, 후자는 사회적으로 번지는 '압력'에 가깝다. 방송가를 넘어 한국의 성형 열풍도 이런 분위기가 낳은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외모 차별이 아닌 외모를 바꾸라는 TV 프로그램

tvN 프로그램 <렛미인> 시즌5 포스터.
 tvN 프로그램 <렛미인> 시즌5 포스터.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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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성형 수술이 국내외 많은 사람을 소비자로 끌어들이는 '시장'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인과 관계를 선명하게 분별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변수가 서로 얽혀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 특유의 '눈치 문화'도 그 중 하나다.

다른 예로, 대중의 불안함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쏟아지는 광고의 물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참(거나 기다리)지 말고 예뻐져라"는 식의 문구와 '비포-애프터' 사진이 함께 실린 홍보물은 이제 지하철 객차 내부에서 익숙한 풍경이 됐다. 대형 영화관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나오는 광고에서도 성형외과 홍보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성형이 일상에 스며든 셈이다.

이런 광고들이 성형을 하려는 사람들을 더 부추겨 그 수요를 늘리는 것은 아닐까? 그 논란의 사례로 케이블 프로그램 <렛미인>이 거론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물음의 결과로 보인다.

2011년 첫방송을 시작한 <렛미인>은 올해 다섯 번째 시즌 제작을 예고했고, 끊임 없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기형에 가까운 신체 구조와 이 때문에 추락한 자존감을 극복하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게 하기 위한 '메이크오버'를 소재로 하고 있다. 고민이 많은 여성 출연자가 성형 수술을 통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부분이 문제로 지적된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고 폭행을 당한 경우까지도 '출연자의 성형으로 해결'하려던 방송분은 특히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외모 차별을 인식하고 짚어내는 것이 아니라,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으로 하여금 외모를 바꾸도록 유도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결국 민·형사적 방안을 통해 피해자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할 사안까지 성형 수술의 '필요'로 삼아 어설프게 갈등을 봉합하려고 한다는 비판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바뀌어야 할 것은 외모가 아닌 차별

지난 5일 상암 CJ E&M 사옥 앞에서 열린 <렛미인> 방송중단 촉구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등 8개 시민단체는 이 날 '렛미인'이 적힌 피켓을 뒤집어 '렛 미 아웃(Out)'의 메시지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지난 5일 상암 CJ E&M 사옥 앞에서 열린 <렛미인> 방송중단 촉구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등 8개 시민단체는 이 날 '렛미인'이 적힌 피켓을 뒤집어 '렛 미 아웃(Out)'의 메시지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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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상암 CJ E&M 사옥 앞에서는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여러 여성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울YWCA, 언니네트워크, 여성환경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총 8개 시민단체는 이날 <렛미인>의 방송 중단을 촉구했다. 프로그램의 이름이 적힌 피켓 '렛미인'의 마지막 글자를 뒤집어 '렛 미 아웃(Out)'의 메시지를 만드는 퍼포먼스도 이어졌다.

방송 제작진 측은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출연진에 포함할 뜻을 내비쳤다. <렛미인> 시즌5의 '논란을 넘어 감동으로'라는 표어와 함께 놓고 보자면, 비판에 맞서 여성 출연자의 정신적 회복을 돕는 방식으로 순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진정 넘어서야 할 것은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외모 차별과 편견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는 '모태 거구녀' 혹은 '오징어녀'가 '걸그룹 비주얼'이나 '여신 미모'로 탈바꿈하는 장면을 자막과 함께 방송하는 프로그램의 자성이 먼저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과거 <렛미인4>는 지난해 8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21조(인권 보호) 3항'에 해당하는 "방송은 정신적·신체적 차이 또는 학력·재력 등을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서는 안 되며, 부정적이거나 열등한 대상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규정에 근거한 징계였다.

지난달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자사 블로그를 통해 "서울은 성형 수술의 수도"라고 한국의 성형 광풍을 꼬집었다. 부정하기 힘든 이 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면, 이제는 TV 프로그램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따지고 보면 한국의 '외모 역전 판타지'는 타인을 향한 압박과 '내 외모가 기준에 못 미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얽혀서 만들어진 꼴사나운 현실일 수도 있다. 이는 동시에 '미인이 되자(Let美人)'는 행렬에서 '나는 빠지겠다(Let me out)'고 외친 시민단체의 피켓이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오는 이유다.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차별에 동참한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라도 발걸음을 옮겨야 할 때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렛미인, #성형,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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